우울하고 싶을 때 듣는 노래

by 홍준오

딱히 힘든 일이 없어도 맘껏 우울해지고 싶은 날이 있다. 유일한 걱정이라고는 며칠 후 친구와의 약속이 퇴근시간이기에 겪어야 할 붐비는 지하철의 답답함 정도인 속 편한 인생에서 벗어나 비련의 주인공이 된 양 고뇌에 잠기고 싶은 그런 날. 그럴 때 노래만큼 좋은 게 없다. 비극적 삶에 갇힌 나를 만끽하기 위해 내가 듣는 노래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ONLY - 이하이

어둡고 깊은 밤의 초입에 어울리는 노래다. 가사는 사랑을 구애하는 내용이지만 이하이의 목소리가 주는 무드와 차분한 반주의 조화는 몽환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난 노래의 가사보다 사운드를 중시한다. 가사의 내용은 무시한 채 가수의 목소리와 반주가 주는 여운에만 집중해 나만의 이야기로 노래를 상상하는 과정을 좋아한다. 그런 내게 ONLY는 애절한 이별 후 시간이 지나 담담히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는 노래로 다가온다.


2. 어떤가요 - 박화요비

누군가에게 노래를 추천할 때 유명한 곡은 지양하는 편이다. 내 노래 취향의 깊이를 자랑하고 싶은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이 노래는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는 노래이다. 박화요비의 최고 히트곡이기도 하다. 내 철학과 반대되는 노래지만 내가 실제로 너무나도 좋아하는 노래이기에 꼭 소개하고 싶었다. 도입부에서의 속삭이듯 떨려오는 목소리가 후렴에 다다르면서 흐느끼는 듯한 절규가 된다. 이하이의 노래가 이별 후의 지속적으로 아파오는 공허감과 그리움을 말한다면 이 노래는 결별 직전의 처절한 다툼을 실감케 한다.


3. 눈 - 새소년

인생은 무엇일까? 죽음은 또 무얼까?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하루하루를 절제하면서 사는 게 과연 옳은 걸까? 등의 자기 전 떠오르는 잡생각에 흠뻑 젖고 싶을 때 듣는 노래다. 커버 이미지에서의 느낌처럼 곡은 전체적으로 차갑고 공허하다. 비흡연자이지만 언젠가 사무치게 추운 한겨울에 이 노래를 반복재생하며 담배 한 개비를 물고 싶다. 추위에 굴하지 않고 내 들숨에 타들어가는 담배의 소리에 집중하고 내 몸 아주 깊숙한 곳, 내 걱정과 불안이 자리 잡고 있는 그곳까지 천천히 연기를 들이마실 것이다. 목이 매캐해져 올 때쯤 온 힘을 다 해 내 몸 안의 모든 연기를 천천히 뱉는다. 모든 숨을 일일이 세가며 내뿜는다. 걱정도 담배연기와 함께 날아간 것처럼 회색빛의 날숨을 바라본다. 그러고 나면 꽤 상쾌할 것 같다.


4.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 - 조하문

이 곡을 듣고 옛날 노래를 좋아하게 됐다. 현대의 듣기 좋고 세련된 창법이 아닌 마이크에 대고 지르는 듯한 조하문의 노래가 좋다. 제목에 걸맞는, 실제로 지독한 아픔을 견딘 화자가 말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시적인 가사가 아닌, 투박하고 직설적인 가사지만 기교 없는 담백한 목소리가 어우러져 옛날의 서툴고 진실한 사랑이 떠오른다. 겪어보지도 못한 시간이지만 그의 노래를 듣는 동안은 1980년대로 돌아가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가상의 그녀와 애절한 사랑을 이어 나간다.


나처럼 가끔은 우울에 빠져 긴 밤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노래를 들어보길 바란다. 슬픔에 젖기에는 제격인 노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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