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사랑1
너는 내가 가장 사랑한 사람은 아니었다.
나와 교제했던 사람 중에서도 너를 가장 사랑했다고는 할 수 없다.
외로움에 시달리던 그날에 학창 시절 꽤 친했던 네가 떠올랐다. 호기심이 주선한 첫 만남, 나와 닮은 점이 많은 너였다. 부족함 없이 살아온 인생임에도 남아 있는 결핍의 흔적,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굶주림이 그랬다. 이성에게는 늘 낯을 가리던 나였지만 그날만은 달랐다. 네가 선뜻 먼저 꺼내준 속얘기에 나도 신나서 지루한 내 애환을 꺼내 보였다.
가끔은 친한 친구보다 남이 편할 때가 있다. 너와의 만남이 그랬다. 친구들에게는 말 못 했던, 아프고 찝찝한 치부를 너는 들어주었다.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질문했다. 힘들었겠구나 하는 값싼 위로 대신 나와 눈을 맞췄다.
음악부터 취미, 음식까지, 반대되는 취향을 가진 너와 나였지만, 외적인 이상형에는 전혀 부합하지 않았던 너였지만, 두 번째 만남을 제안했다. 단지 연애가 하고 싶어서였는지, 첫 만남에서의 좋았던 기억에 취한건지, 나는 두 번째 만남에서 네게 호감을 표현했다.
매사에 신중을 기하는 내게 이런 식의 성급한 고백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외모부터 성격, 학력, 사는 지역 등 많은 단계를 재고 또 재는 내게 어떤 조건도 부합하지 않았던 너와의 만남은 개연성에 맞지 않았다. 고민해 보겠다던 너는 며칠이 지난 뒤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기쁘지 않았다. 그날 계획한 일을 모두 마쳤을 때 느껴지는 정도의 안도감이 전부였다.
너와의 사랑은 특이했다. 연락에 집착하는 내가 너와는 두세 시간의 텀을 두며 대화를 주고받게 된 것도, 흔한 데이트 코스가 아닌 집 주변의 순댓국집에서 밥만 먹고 헤어지기도 하는 가벼운 만남이 잦아진 것도, 누가 볼까 전전긍긍했던 내 이기적인 성격을 맘껏 발휘한 것도, 그리고 그런 내 모습까지도 보듬어줬던 너도, 특이했다.
너와 싸울 때는 온 힘을 다 해 너를 이기려 들었다. 나지막이 쉬는 한숨, 흐리는 말끝, 싸우는 와중에도 난 네약점을 무기로 삼으려 들었다. 너도 지지 않았다. 온순하던 평소와 달리 마구 소리치기도, 논리적으로 내 모순을 꼬집기도 했다. 한 가지, 아무리 싸움이 격해져도 꼭 지키는 한 가지가 있었다.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래, 사랑하면 져줄 수 있는 거 아니야? 너야말로 날 사랑하긴 해? 하는 식의 사랑을 볼모로 잡아 남을 굴복시키는 기술은 쓰지 않았다. 우리의 싸움은 여느 연인의 싸움이 아니었다. 마치 논객을 초대해 정치적 현안에 대한 공격을 주고받는 시사 프로그램 같았다.
며칠 전부터 배가 아파온다던 네 말을 들었을 때 꽤 걱정했다. 다른 투정은 몰라도 아프다는 말은 입에 올린 적 없던 너였다. 아니나 다를까 너는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같은 병으로 아버지를 일찍 떠나보낸 너였다. 술담배는 입에 대지도 않으며 철저한 식습관 관리를 한 네게도 불운이 찾아왔다. 모르는 새 이곳저곳으로 전이된 암은 네게 2년의 시간만을 부여했다.
기다리지 말라는 너의 말에 발끈했다. 사랑에서 나온 반응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어쩌면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아픈 사람을 무정하게 버리지 못하는 동정에서 온 걸지도 모른다. 나는 제일 화가 나고 혼란스러웠을 네게 온갖 짜증을 냈다. 아직 죽은 것도 아닌데 왜 헤어지자 하는 거야, 그러면 내가 똑 떨어질 줄 알았어? 너 정말 이기적이야, 떠나더라도 내가 떠날 거니까 그런 말 하지 마,라고 했다.
전화를 끝내고 머리가 어느 정도 차가워진 후 너와 나를 생각했다. 너와 결혼을 생각할 정도로 진지하진 않았다. 널 사랑하긴 했다. 항암치료에 지친 너마저도 사랑할 수 있을까, 빠진 머리와 수척해진 네 몸을 난 여전히 사랑할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너와의 2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홧김에 저지른 말로, 모질게 돌아서지 못한 나의 아둔함으로, 네게 남아있던 적당한 사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