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난 꼬였다.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와 혐오스러울 정도로 유약했던 엄마. 영화속 악역이 유년시절 흑화할 수 밖에 없었던 가정환경과 비슷했다. 20살이 되어 가족의 늪에 겨우 빠져나온 나는 육체노동에 매진하며 발만 뻗을 수 있는 집에 살 수 있었다. 그게 1년 전.
막노동 일에 허무함을 느껴 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밤에는 편의점에서 일하며 복습하고 낮에는 고시원에서 공부만 했다. 그리고 일주일 전, 2년 간의 고시 생활을 마쳤다. 시험에 합격했다. 한 시간 정도 벅찬 기분에 흐느끼다 기쁜 마음으로 편의점 마지막 근무를 마친 뒤 먹방 영상에서만 봤던 유명한 치킨 브랜드의 치킨과 맥주를 사고 집으로 향했다. 냉동식품이 아닌 갓 튀긴 치킨은 처음이었다. 집까지 5분 되는 거리를 남기고 난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정신이 들었을 때 앞은 보이지 않았다.
-고생했어.
노래방에 있는 것처럼 목소리가 울렸다. 그것의 목소리는 영화에서 묘사된 신처럼 웅장함이 느껴졌다.
-당신은 누구죠?
-음.. 난 그저 너야. 네 머릿속에 있던 생각들이 뭉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거지. 여긴 네 마음속이고. 하고 싶었던 얘길 해봐.
-난 죽은거야?
-글쎄.
-이렇게 죽는 건 너무 아까워. 신이 정말 있다면 내가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했는지 설명해 줬으면 해. 어려서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학교에서는 집에서 맞고 온다는 이유만으로 따돌림을 당했어. 어른이 되어 새로운 출발을 하려 했을 때는 부모님이 남긴 빚을 갚느라 친구 한 명 만들지 못하고 일만 했지. 고시 준비를 끝내고 이제 첫 출근을 기대하는 나에게 죽음이라고? 조금이라도 내게 희망을 줄 수 있었잖아… 내게 숨 쉴 틈은 줄 수 있었던 거잖아..
-네 말이 맞아. 정말 신이 있다면 세상은 이런 모습일 수 없어. 이제 막 생명의 물꼬를 튼 아이가 낙태로 목숨을 잃는 건 드문 일이 아니지. 부모의 무책임함으로 방치되어 굶어 죽는 아이들은? 전쟁으로 무참히 살해당하는 민간인들은 어떻고? 그 자들은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불행한 결말을 맞는 걸까? 세상은 원래 불합리한 것임을. 사람들의 불행한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우린 남의 불행에 공감해 눈물 흘리지만 채널을 돌려 티비에서 재밌는 예능이 나오면 금방 잊고 웃음을 터트리지. 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거야. 그들의 비합리한 모습에 대비되는 자신의 모습에서 말이야. 이런 이기적인 존재가 바로 인간인 거야. 감정에 휩쓸려 어떤 일이라도 감수할 것 같이 공감하다가도 자고 일어나 아침이 되면 아침 메뉴 정도에 골몰하는 존재. 이제 네 삶을 다시 보자.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노력이 곧 성과로 이어졌던 네가 속한 사회 시스템이, 길을 걷다가 테러범의 폭탄에 죽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 나라가 네게 얼마나 큰 행복을 줬는지 말이야.. 오히려 분에 넘친 행복이었지. 넌 그것들을 너무도 당연히 여겼으니 말이야. 넌 네가 저주했던 지옥 같은 삶을 바라던 대로 끝낼 수 있게 됐어. 근데 오히려 넌 죽게 된 지금을 저주하고 있지.
이제 행복이 너에게는 다르게 느껴지겠지. 더 소박해질 거야. 숨 쉴 수 있는 두 콧구멍이, 두 폐가, 어쩌면 뛰는 심장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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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 마음 속 목소리에 깊이 공감했다. 마치 새로운 삶을 얻은 듯했다. 심장마비에서 깨어난 날 상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난 일어나지 못했다.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난 심장마비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내 존재가 사라져가며 정신조차 희미해져갔다. 지옥같던 내 삶이 그리워진다는 게 참 웃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