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에 금강산 관광을 다녀왔다. 금강산 육로관광이 시작되었을 때다. 강원도 고성에서 집결해 영원히 넘을 수 없을 것으로 알았던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금단의 구역이었던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의 그 쫄깃한 긴장감과 설렘이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생생하다. 철옹성처럼 굳게 닫혀 있던 북한 땅 금강산에 간다는 기대와 흥분으로 관광객을 실은 버스 안은 왁자지껄했다.
북한 땅에 들어서자 점검을 위해 북한군이 버스에 올랐다. 그 순간, 버스 안은 싸한 정적이 흘렀다. 북한 땅에서 처음으로 본 사람이 북한 군인이었으니 왜 안 그랬겠는가. 그 와중에도 놀라웠던 건 북한 군인의 작은 체격이었다. 암만 봐도 우리나라 중고등학생 정도의 체격밖에 되지 않았다. 다만 눈매만큼은 예리한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우리나라 검문소에 헌병을 보면 다들 늘씬하게 크고, 군더더기 없는 탄탄한 몸매를 가지고 있다. 검문소의 군인이면 우리의 헌병 같지 않을까 했는데 예상과 너무 달랐다. 금강산 관광은 2박 3일 일정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일정 동안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했다.
둘째 날, 아침에 일어나니까 몸이 영 안 좋았다. 그날은 구룡폭포와 또 다른 곳을 보고 해금강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구룡폭포까지는 그럭저럭 쫓아갔는데, 다시 또 산을 오르기가 힘들었다. 안타까웠지만 가이드에게 몸 상태를 알리고, 관광버스가 있는 주차장으로 먼저 내려가기로 했다. 누가 데려다 줄 사람이 없어 혼자 내려가야 했다.
올라 올 때는 몇십 미터 간격으로 북한의 젊은 남녀가 두 명씩 짝지어 서 있었다. 관광객들이 산을 오르고 난 다음에 다들 철수했는지 내려가는 길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했던 산길은 적막강산으로 변했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여기가 북한 땅이라는 생각이 들자 머리가 쭈뼛해졌다.
올라갈 때는 계곡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통제했는데, 아무도 없어 맑고 깨끗한 계곡물에 손을 담가보면서 나름 금강산을 즐기며 내려왔다. 관광버스가 가득 들어차 있는 주차장도 시간이 멈춘 듯 조용했다. 오가는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주차장 한쪽에 간이매점 하나가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 한쪽에 서 있는 검은색 벤츠 차량 두 대가 보였다. 누가 타고 온 차지? 남한에서 온 관광객 차는 아닐 게 분명했기에 궁금했다. 마땅히 할 일도 없던 터라 구경이나 하자는 생각에 차 있는 곳으로 갔다. 북한 땅에서 벤츠를 타고 올 정도면 지위가 높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에 궁금증이 더해졌다.
가까이 가서 차를 보고 깜짝 놀랐다. 차의 외관은 괜찮은데, 타이어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얼마나 오래 탔는지 타이어 접지면은 닳고 닳아 무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냥 반질반질한 상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사고 날까 무서워 그렇게까지 오래 타이어를 쓰는 사람은 없다. 차는 고급 찬데, 타이어가 왜 이 모양일까? 고개가 갸우뚱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차량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 그늘에서 북한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똑같은 반소매 옷을 입은 두 사람이었다. 얼핏 보아도 그들이 차량 기사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심심한데 말이나 걸어볼까 하다가 행여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생길까 싶어 그만두었다. 멀찍이 떨어져 그들을 힐끔힐끔 보면서 멍하니 시간을 죽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것도 할 게 없어 정말 따분했다. 그 따분함을 이기지 못해 북한 운전기사들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조심하면 특별히 문제 생길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또 그들이 거부해도 시도해본 것만으로도 소소한 재미가 될 것 같았다. 웃는 얼굴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나를 보는 그들의 표정에서 경계심이 느껴졌다. 오해가 생기지 않게 금강산 여행을 왔는데, 몸이 안 좋아서 먼저 내려와 쉬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제야 그들의 얼굴에서 경계심이 풀어졌다. 그때부터 셋이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야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우린 금방 친해졌다. 기분이 한껏 좋아져 매점에서 막걸리까지 사다 나누어 마시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역시 우린 같은 민족이었다. 우리는 나이를 밝히고, 그 자리에서 형님, 동생으로 호칭했다.
그들과의 대화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생활상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와 다를 바 없어 신기하고 재밌었다.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래도 문제 소지가 될 수 있는 정치적인 이야기만큼은 서로가 의식적으로 피했다.
그렇게 꽤 시간이 지났을 때, 그들이 태우고 온 사람들이 도착했다. 그들도 금강산을 구경 온 모양으로 남녀 합쳐 여섯 명이었다. 그들 역시 처음에는 나를 살짝 경계했지만, 금강산 관광을 왔냐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간단히 인사말을 주고받았고, 그들이 차 트렁크에서 꺼낸 오미자 단물도 한 병 얻어 마셨다.
목을 축인 그들은 얼마 안 있어 떠났다. 그들이 떠나고 나서 우리 관광객들도 내려왔고, 함께 버스를 타고 다음 코스인 해금강으로 이동했다. 그들과 짧은 만남은 아주 특별하고 비밀스러운 나만의 기억이 되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소중한 물건을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숨겨 놓은 아이 같은 마음이었다. 또 나만이 이런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생각에 우쭐해지기도 했다.
해금강에 도착해 관광객들은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맞은 편에서 아까 주차장에서 만났던 북한 사람들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일행 중에 운전기사들은 다른 곳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반갑긴 한데 인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졌다. 잠깐 만난 그들이 날 기억할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그들이 코앞까지 왔고, 나를 보자마자 또 만났다며 반갑게 먼저 인사를 했다. 그제야 나도 환하게 웃으며 아는 체를 했다.
그들이 지나가고 나자 관광객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다른 곳도 아닌 북한 땅에서 북한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관광객 중의 나와 함께 한 일행이 내게 다가와 잔뜩 궁금한 표정으로 누구냐고 물었다. 궁금해하는 그들의 표정이 재밌어 살짝 뜸을 들이다 아까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그들은 금강산 구경보다 더 특별한 경험을 했다며 다들 부러워했다.
금강산을 다녀온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때 보았던 금강산의 멋진 경치는 세월에 휩쓸려 기억에서 희미해졌지만, 그들과의 만남은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또 그때 만난 운전기사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보다 서너 살이 많았던 사람은 생긴 것처럼 참 착했고, 두어 살 어렸던 친구는 호탕한 성격이었다.
휭하니 흘러간 세월만큼 나와 그들의 간격이 크게 벌어졌다. 그들과의 만남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세월에 닳고 닳아 지워졌다. 다시 만난다고 해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고성 통일전망대로 가는 길에는 금강산 가면서 거쳤던 남북출입국사무소로 가는 큰길이 있다. 남북출입국사무소를 알리는 커다란 글자판을 보는 순간,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금강산에서의 그날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갔다. 금강산 관광이 막힌 지금, 할 일을 잃어버린 큰길은 기약 없이 널브러져 있다.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고성 통일전망대는 가고 싶다고 마음대로 드나드는 곳이 아니다. 먼저 통일 안보 공원에서 출입 신고서를 작성하고, 8분 정도 되는 안보 교육 영상을 본 다음에 갈 수 있다. 연간 백만 명이 찾는 곳이라 그런지 통일전망대로 가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홍보 영상을 볼 때까지는 무덤덤했는데, 막상 통일전망대로 출발하니까 나도 모르게 살짝 긴장감이 밀려왔다.
출발해서 3Km 정도 가면 민통선 검문소가 나온다. 이곳에서 군인들에게 신고서를 제출하면 인원 확인을 한 다음에 민통선 차량 출입증을 내준다. 설렘과 긴장이 살짝 교차하는 마음으로 북쪽으로 달리면 우뚝 솟은 ‘통일 전망 타워’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층으로 된 통일전망대 건물 옆에 현대적 건축미를 한껏 살린 웅장하고 독특한 형태의 통일 전망 타워가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르막길을 올라 통일 전망 타워와 마주했다. 건물은 한글의 “ㄷ”을 반대로 놓은 것처럼 독특하고 세련되었다. 바로 밑에서 보면 멀리서 보던 것과 달리 훨씬 더 크고 웅장했다.
타워의 2층은 건물 형태상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곳이라 무척 높았다. 2층에서도 북한 땅이 잘 보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는 곳으로 가려고 3층 전망대로 갔다.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 곳에 금강산과 해금강이 보인다. 분명 밟아 본 땅인데 이렇게 멀리서 보니까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아무렴 어떤가. 바로 코앞에 갈 수 없는 북한 땅이 있고, 거기에 소중하고 특별한 작은 추억이 박혀 있는 게 중요하다.
차로 가면 금방 닿을 수 있는 곳인데도 이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동해의 짙푸른 바다가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끝없이 펼쳐져 있다. 남쪽의 바다가 틀리지 않고 북쪽의 바다가 다르지 않다. 해안으로 밀려오는 하얀 파도도 남과 북을 가리지 않는데, 오천 년 역사의 같은 민족이 오가지 못하고 갈라져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남과 북으로 길게 이어진 백사장은 기막힌 역사와 현실과는 상관없이 마냥 평화롭게 보였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되돌릴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되돌리고 싶다. 금강산을 다녀온 덕분에 멀리 보이는 산을 보면 어디가 우리 산이고, 어디가 북한의 산인지 구분할 수 있다. 금강산 갈 때 보니까, 우리 쪽의 산은 나무가 울창하고 푸르렀다. 북한 땅에서 보는 산들은 하나같이 바위산이었고, 나무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건 거대한 바위마다 시뻘건 글씨가 새겨져 있어 눈살이 찌푸려졌다. 글씨가 얼마나 큰지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선명하게 보였다. 만약 우리 산 바위에 그렇게 글씨를 새겼으면 난리가 났을 텐데, 거긴 아무렇지도 않게 버젓이 새겨져 있다. 그것도 하나둘이 아니다. 눈에 띄는 큰 바위마다 어김없이 시뻘건 글씨를 새겨놓았다.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고개가 절로 흔들어졌다.
북한 땅을 보고 있으면 너무 가깝게 있어 갈 수 없다는 게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 어디든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이런 세상에 아무리 돈이 있어도 갈 수 없는 곳이 바로 눈앞에 있는 북한 땅이다. 선조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땅에 같은 민족이 살면서도 서로 오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때론 우리 민족이 얼마나 많은 업보를 짊어지고 있기에 이토록 시련을 겪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망원경에 오백 원짜리 동전을 넣고 눈 빠지게 북한 땅을 바라보았다. 이리저리 보아도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나 가슴을 콩닥거리게 하는 건 딱히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전망대 난간에 서서 하염없이 북한 땅을 바라본다. 그들은 북한 땅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그저 호기심만 가득할까? 북한에 있는 고향과 가족 친지를 생각할까? 언제 통일이 될까 하는 생각?
꼬일 대로 꼬여버린 역사 때문에 얽히고설킨 사연과 이유가 있어 통일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같은 뿌리와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 자유롭게 서로 오갈 수만 있어도 얼마나 좋을까 싶다.
북한 땅을 바로 보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호기심, 그리움, 안타까움, 아쉬움 등의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북한 땅에 고향은 물론, 두고 온 가족 친지도 없다. 그래도 북한 땅에 가보고 싶다. 그 땅에 남아있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반쪽을 보고 싶다. 또 그곳에서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도 만나보고 싶다. 될 수만 있다면 금강산에서 만났던 그들도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