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서산 부석사에서 소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by 레드산


얼마 전, 최인호의 소설 ‘길 없는 길’을 읽었다. 1989년부터 3년간 중앙일보에 연재되었던 소설이 4권의 책으로 나온 것이었다. 길 없는 길은 경허 스님의 삶을 인간적인 면에서 재해석한 구도 소설이다. 경허 스님은 우리나라 근대 선불교의 중흥을 이끌었던 분으로 혜월과 수월, 그리고 많이 알려진 만공스님을 제자로 두었다. 소설에도 나오지만, 실제 경허 스님과 만공스님이 머물면서 크게 선풍을 일으켰던 사찰이 서산 부석사(浮石寺)다.


부석사 하면 많은 사람이 영주 부석사를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서산에도 같은 이름의 부석사가 있다. 이름만 같은 게 아니라 창건 설화도 닮았고, 두 군데 모두 의상 대사가 창건한 것을 보면 기이한 인연이다. 재밌게 읽었던 소설 덕분에 그것이 인연이 되어 서산 부석사를 찾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잔뜩 흐렸던 날씨는 서산에 들어서자 기어코 비를 뿌렸다. 처음에는 빗줄기가 굵지 않아 어지간히 내리다 그치겠지 했는데, 점점 더 세차게 변했다.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여행 멋과 운치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날이 좋을 때와 달리 아무래도 여러 면에서 불편하기 마련이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로 좀처럼 여행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이렇게 오랜만에 집을 나섰는데 비가 내리니까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하필이면 오늘 왜?’


부석사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우산으로 겨우 상체를 가리기는 했지만,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부석사로 가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울창한 숲 사이로 나 있는 임도를 따라가는 길이라 비만 아니면 걷기에 아주 좋은 길인데 어쩔 수가 없었다. 길이 어디까지 나 있는지 모르지만,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다시 차에 탔다.


포장된 길은 폭이 좁아 내려오는 차와 마주치면 난감할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그러면서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멋진 숲에 자꾸 눈길을 빼앗겼다. 마침 도비산 다원 밑에 널찍한 공터가 있어 그곳에 차를 세웠다. 도비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 주변에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은 커다란 나무들이 많이 보였다.


한눈에 보아도 품은 세월의 무게가 만만치 않게 보였다. 굵은 줄기와 초록이 가득한 가지가 뻗어나간 나무들은 보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냥 보아도 멋진 숲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다. 그 때문에 울창한 숲은 신비스러운 경치와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안 그래도 도비산은 안개가 많이 낀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은 비까지 내려 그런지 안개가 더 많이 내려앉은 것 같았다.


그 경치에 매료되어 조금 전까지 비 때문에 불편했던 마음이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그 빈자리에는 부풀 대로 부푼 기대감과 설렘이 가득 들어찼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우산으로 막으면서 금강문으로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발걸음은 금강문을 향하고 있지만, 눈길은 왼편에 보이는 누각에 빼앗겼다. 정자와 누각을 좋아하다 보니까 누각을 보자마자 당연하게 관심이 갔다.


누각은 마치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규모가 크고 당당한 모습이라 아주 매력적이었다. 도비산 자연 경치와 어우러져 멋스러움이 한층 더해졌다. 누각에서는 부석사 앞으로 저 멀리 펼쳐진 넓은 평야와 그 뒤로 천수만이 보인다고 한다. 오늘은 비와 안개에 가려 그 경치가 보이지 않는다.



오르막길 저쪽으로 금강문이 보였다. 단청을 입히지 않은 금강문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놓았다. 잿빛의 금강문은 초록이 가득한 나무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산사의 운치를 더해놓았다. 산사를 들어갈 때 거치는 문들이 있다. 일주문과 천왕문 그리고 불이문이다. 더러 금강문까지 있는 사찰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찰은 금강문을 세우지 않는다. 많은 사찰에서는 천왕문이 금강문을 대신하고 있다.


부석사에는 천왕문이 없고, 금강문이 있다. 금강문은 천왕문의 사천왕처럼 불법을 수호하고 사악한 기운을 막는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다. 금강역사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부석사를 찾는 이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천왕이나 금강역사가 버티고 있는 문을 지날 때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움츠러든다. 어렸을 때는 그게 무서워 어머니가 절에 가자고 하면 꽁무니를 뺐다. 어쩌다 따라가면 어머니 치마폭에 얼굴을 파묻고 그 문을 지나갔다. 조심스럽게 금강문을 지나면 들어설 때와 달리 마음이 차분해지고 경건해진다.



부석사는 산의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건물을 앉혔다. 그로 인해 훨씬 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산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부석사는 여느 절과 달리 대웅전이 없다.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이 대웅전 역할을 하고 있고, 그 옆에 붙어서 심검당 있다. 극락전 맞은편에는 강당인 안양루가 자리하고 있다.


그 밖에 산신각과 요사채 건물들이 부석사를 이루었다. 이름깨나 알려진 여는 산사보다 건물이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산사가 내어주는 고즈넉함만큼은 훨씬 더 넉넉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속에 함께 어우러져 있어 돌아보는 재미와 즐거움은 한결 더 좋았다.

부석사에는 바위들이 많다. 그 때문에 사찰 이름이 왜 부석사인지 궁금해진다. 부석사는 뜰 부(浮)와 돌 석(石) 자를 쓴다. 사찰의 이름치고는 조금 특이하다. 뜻대로 해석하면 떠 있는 바위이다. 떠 있는 바위라고? 바위가 허공에 떠 있다는 뜻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데, 그게 또 왜 절 이름이 되었는지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 궁금증의 해답은 부석사 창건 설화에서 찾을 수 있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 대사가 당나라에서 수행할 때 선묘라는 낭자가 대사를 흠모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대사는 수행에만 열중하다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 사실을 안 선묘 낭자는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되어 의상이 돌아가는 뱃길을 수호했다고 한다. 고국으로 돌아온 대사는 선묘 낭자를 위해 절을 짓고자 했지만, 일부 백성들이 반대했다. 그러자 선묘 낭자가 커다란 바위를 하늘에 띄워 반대하는 이들을 물리쳐 절을 짓게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논리와 과학이 발전한 요즘 세상에 이런 설화는 믿거나 말 거 나다. 그렇지만 설화의 내용과 부석사라는 절 이름 사이에 이어지는 맥락이 있는 걸 보면 나름 신기하고 또 관심이 간다. 이런 설화가 있기에 부석사를 오래 기억할 수 있고, 한 번이라도 더 찾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설화의 존재가치는 분명하다.


시간이 지나도 비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세차게 내렸다. 그 때문인지 부석사를 휘감은 안개가 더 짙어졌다. 안개가 자욱한 부석사의 경치는 신비스럽고 환상적이었다. 지금까지 전국에 있는 많은 사찰을 보았다. 비 내릴 때 보았던 사찰이 더러 있었지만, 지금의 부석사처럼 신비스럽게 보이지는 않았다.


부석사에는 거대한 바위에 최근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마애여래입상이 있고, 만공스님이 수행했던 토굴도 그대로 있다. 그 작은 토굴에서 오랜 시간 홀로 수행하는 게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얼마나 간절하고 또 얼마나 굳은 의지가 있어야 할까?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겠느냐고 하는 말이 떠올랐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부석사 구석구석을 다 둘러보았다. 비 오는 날에 특별한 경치를 보아서 그런지 부석사의 모든 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곳은 산신각 앞에 있는 작은 마당이다. 산신각은 부석사 건물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전망이 툭 터져 있다. 날씨 때문에 저 멀리 보이는 경치는 없지만, 부석사를 지그시 내려볼 수 있다. 그 작은 마당에 길쭉한 나무 의자가 두 개 나란히 놓여있다.


그곳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수행자라도 된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굳이 수행자의 느낌이 아니더라도 마음의 평화와 여유는 분명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것을 느껴보지 못한 채 부석사를 나오는 게 무척 아쉬웠다.


그 아쉬움이 언젠가 다시 부석사를 찾게 할 것이다. 어찌 보면 그런 아쉬움 하나쯤 품고 떠나야 오히려 여행의 만족감이 더해질 수 있다. 올 때보다 더 짙은 안개 속에 갇힌 부석사를 빠져나온다. 소설 길 없는 길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경허 스님의 발자취를 찾아 또 다른 곳으로 떠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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