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군에 있는 도동서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아홉 군데 서원 중의 한 곳이다. 작년 돈암서원에서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 뒤늦게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긴 했지만,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게 조금은 창피했다. 오랜만에 가는 대구 여행에서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인 도동서원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도동서원은 대니산 서북쪽 끝자락에서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다. 풍수지리에 관해 딱히 아는 게 없지만, 그래도 배산임수(背山臨水) 정도는 알고 있다. 뒤로는 산이 감싸고, 앞으로 물이 흐르는 터가 명당 중에 하나로 꼽히는 배산임수의 지형이다. 도동서원은 뒤로 대니산 있고, 앞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어 명당자리가 분명하다.
도동서원에서 서원보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건 예사롭게 보이는 않는 거대한 은행나무였다. 수령이 400년을 넘긴 은행나무는 도동서원의 랜드마크다. 은행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얼마나 큰지 나무 밑동은 어른 여섯 명이 두 팔을 벌려야 겨우 안을 수 있을 만큼 굵다.
사방으로 늘어진 가지들은 어지간한 나무의 줄기보다 굵었다. 제아무리 굵은 줄기라도 그 무거운 가지를 제대로 건사할 수 없다. 옆으로 뻗어나가 늘어진 가지들은 세월을 이기지 못해 지지대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꼬부랑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있는 것 같았다. 서원을 향해 뻗어나간 가지는 아예 땅바닥에 닿아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생긴 가지는 보지 못했다.
지난 세월의 숱한 이야기를 품은 은행나무는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부족한 나의 어휘력 때문에 멋있다는 표현 말고는 다른 말을 보태기가 어려웠다. 지금은 잎사귀를 다 떨구고 속살을 그대로 내놓고 있지만, 초록 잎사귀가 가득한 계절이나 노랗게 물든 가을의 은행나무는 정말이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멋스러움을 보여줄 게 틀림없을 것 같았다.
서원이나 향교에 가면 은행나무가 꼭 있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 행단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선조들은 서원이나 향교에 은행나무를 꼭 심었다. 그렇게 심은 은행나무가 서원과 함께 역사가 되어 서원이나 향교를 찾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은행나무에 빠져있던 눈길을 거두고 서원으로 몸을 돌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수월루(水月樓)가 도동서원을 찾은 여행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서원 건물들은 대부분 단청을 입히지 않아 나무의 질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예외적으로 단청을 입히는 건물이 제향 공간의 건물과 서원 앞에 있는 누각이다. 그 때문에 누각은 서원에서 유난히 존재감을 드러낸다.
오색단청의 수월루는 돌담과 이어져 있다. 누각의 아랫부분은 사람이 드나드는 문으로 되어 있어 누각의 기능과 함께 대문의 역할도 하고 있다. 수월루는 적잖이 크고 화려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도동서원을 처음 지었을 때는 수월루가 없었다고 한다. 그 후 1849년에 지어졌는데, 불이 나서 터만 남은 것을 1974년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복원할 때,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과 의욕이 넘쳤던지 원래의 것과 달리 지나치게 크고 높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도동서원의 전체 균형과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중정당에서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시야를 가렸다고 한다. 지나친 욕심과 과잉 의욕이 선조들의 안목과 균형의 미를 헤아리지 못해 아쉬웠다.
도동서원은 건물 배치가 일렬로 되어 있다. 이것이 도동서원의 특징이다. 이렇게 배치한 건 평지가 아닌 경사지의 특성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선조들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건물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는 건 계단을 오르다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수월루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강학 공간으로 들어가는 환주문이 나온다. 환주문과 유생들이 공부하던 서원의 핵심 건물인 중정당 그리고 그 뒤로 제향 공간의 내삼문과 사우 건물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환주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뜻밖에 좁았다. 그 계단과 균형이 어긋나지 않게 환주문 역시 좁았다. 기왕 만드는 거 드나들기 편하게 크게 만들지 왜 이리 좁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혜롭고 현명했던 우리 조상들이 아무 생각 없이 좁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기엔 분명 그럴만한 이유와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서원은 공부하는 곳이기 때문에 보여주기식의 과시보다는 내실과 함께 절제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환주문에서 특이한 게 보였다. 문에 문지방이 없는 대신에 땅바닥 가운데에 작은 돌이 봉긋하게 솟아 있었다. 안 그래도 좁은 문에 거추장스럽게 왜 이런 돌이 있는 거지? 둥그스름한 모양의 돌은 활짝 꽃을 피우기 전의 꽃봉오리 같았다. 그 돌이 정지석이었다. 문을 닫을 때 양쪽 문을 가운데에서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걸 보니까 어렸을 때, 우리 집 대문이 생각났다. 예전에는 우리의 주거 형태가 크든 작든 간의 단독주택이었다, 그때 집 대문 가운데에도 이런 정지석이 있었다. 벽돌을 세로로 세워서 만들기도 했고, 시멘트로도 만들었다. 선조들의 생활 지혜가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왔지만, 주거 형태가 바뀌면서 사라져 버렸다.
환주문을 들어서면 서원의 중심 건물인 중정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생들이 학문을 익히고 토론하던 건물이라 규모는 물론 당당하고 위엄이 넘쳤다. 건물을 받치고 있는 두툼한 기둥과 넓은 대청마루 그리고 힘이 넘치는 글씨체의 현판이 어우러져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 기운이 서원의 분위기를 묵직하게 표현했다.
중정당에는 서원의 편액이 두 개 걸려 있다. 처마 밑의 현판은 퇴계 이황의 글씨를 뽑아서 새긴 것이고, 안쪽에 걸려 있는 검은 판에 흰 글씨로 된 현판은 선조의 사액 현판이다. 현판의 두 글씨체는 크기는 물론 서체가 확연히 달랐다. 앞에 있는 것이 부드럽고 유려하다면, 뒤엣것은 힘이 넘치고 위엄이 있었다. 서예에 대해 딱히 아는 바가 없지만, 눈에 보이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즐기는 게 나만의 방식이다.
고등학교 친구 중에 현대미술을 하는 화가가 있다. 몇 해 전, 그 친구의 개인전에 갔다가 현대미술 작품은 어떻게 보는 거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어쩌다 현대미술 작품을 보면 작품의 의도는 물론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조차 모를 때가 많았다. 그래서 물었는데 친구의 대답은 뜻밖에 간단명료했다. “그냥 네 눈에 보이는 대로 마음에서 느끼는 대로 즐기면 되는 거야!” 그 이후로는 친구의 말대로 내 느낌대로 즐긴다.
중정당에서 눈길을 아래로 낮추면 아주 재밌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처음에는 생각 없이 봐서 몰랐는데, 건물을 앉히기 위해 쌓은 기단의 돌들이 참 재밌다. 기단의 돌들은 하나도 같은 게 없이 크기와 모양이 다 제각각이었다. 제각각인 돌들을 퍼즐 맞추듯이 꿰맞추어 놓았는데 그 모습이 아주 조화롭고 재밌다. 그걸 보면서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페루 쿠스코에 있는 12각 돌의 돌벽이 생각났다.
팔이 안으로 굽는 건 불변의 진리이다. 기단의 돌들이 쿠스코의 12각 돌보다 크기와 규모는 작아도 예술성에서는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 돌들은 전국에 있는 제자들이 스승을 추모하기 위해 저마다 마음에 드는 돌을 가져와 쌓았다고 한다. 스승을 생각하고 존경하는 제자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기단에는 그것 말고도 또 다른 볼거리가 있었다. 기단에는 네 개의 용머리가 붙어있었다. 눈이 유난히 큰 용머리는 정교하기 보다는 해학적으로 보였다. 여기에 용머리가 있는 건 건물에 모양을 내려고 한 게 아니라 그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옛사람들은 이 용머리가 낙동강의 범람을 막아 서원을 보호해줄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또 학문을 닦는 선비들이 용이 하늘로 오르듯이 과거에 급제하기를 바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도동서원이 존속하였던 동안, 과거에 급제한 유생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잘 보존되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걸 보면 용머리의 효험이 있지 않았나 싶다. 쉬어갈 겸 중정당 대청마루에 올라앉았다. 경사지에 지어진 덕분에 시야가 제법 시원했다. 사람 없는 도동서원은 사방이 고요했다. 잠깐이라도 깜빡 졸면 그때 그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같이 적막했다.
허연 수염을 길게 기른 스승 앞에서 단정하게 차려입은 유생들이 몸을 가볍게 앞뒤로 흔들며 책을 읽는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분명 장난꾸러기 유생이 있었을 것이다. 다들 글을 읽는데 혼자 조는 유생이 있었을 것이고, 스승 몰래 옆에 있는 유생과 장난치는 유생도 있었을 거다. 그 모습을 상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어쩌면 그 유생들이 과거에 급제하고 더 높은 벼슬에 올랐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