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봉사에 가면 부처님 진신 치아 사리를 볼 수 있다

by 레드산

까치 까치설날은 진즉에 보냈고, 이제 막 우리 설날이 지났다. 설날이 지나고 곧이어 찾아온 입춘이다. 아직 봄을 말하기엔 이르지만, 봄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따스해진다. 가슴만 따스해지는 게 아니라 겨우내 무거워진 엉덩이도 덩달아 들썩인다. 들썩이는 엉덩이를 가라앉힐 요량으로 입춘 여행을 떠난다.

요즘은 여행지를 정하는 데 애를 먹는다. 우리 땅 구석구석에 있는 구경거리를 다 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다 보는 것과 상관없이 여행을 목적으로 우리 땅의 군 단위까지는 다 가보았다. 딱 한군데 가보지 못한 곳이 울릉군이다. 여행의 목적지는 누구나 다 똑같이 좋아하고 보고 싶은 곳을 정하기 마련이다. 그렇다 보니 안 가본 곳 빼고는 다 가봤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보고 싶어 한 여행지는 어느 정도 다 보아서 그런지 여행지 고르기가 쉽지 않다. 강원도 동해 쪽으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갈 곳을 선뜻 정하지 못한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머릿속을 퍼뜩 스쳐 간 곳이 고성 건봉사였다.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건봉사는 두 번 다녀온 곳이다. 어디를 갈까 더 생각하기도 싫고, 입춘이니까 사찰에 가는 것도 좋겠다는 즉흥적인 이유까지 갖다 붙이면서 그제야 목적지를 정한다.

잠잠하던 날씨가 2월에 들어서면서 연일 가당치 않게 춥다. 건봉사를 휘감고 있는 추위도 역시 만만치 않다. 그 차가움 때문인지는 몰라도 불이문 앞에 섰을 때, 알 수 없는 청량한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오늘 건봉사를 잘 왔구먼’ 하는 마음의 소리가 절로 나온다.


DSC06885.JPG


건봉사는 고성 8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곳이다. 전국 4대 사찰 중의 한 곳으로 신라 법흥왕 때 지었는데, 아도화상이 원각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건봉사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설악산 신흥사, 백담사 등 9개의 말사를 거느렸으니 그 절의 규모나 사찰의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의 옛 건축물은 대부분 목재여서 화재에 취약하다. 조선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번창했던 건봉사는 1878년에 발생한 산불로 대웅전을 비롯해 3,183칸의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만약 그때의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서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장관도 그런 장관이 없었을 것이다.

잿더미로 변한 건봉사는 범 불교계 차원의 중건작업과 왕실의 지원으로 어느 정도 옛 모습을 되찾았다. 그 모습이라도 온전히 지켜졌으면 좋았을 텐데, 한국전쟁 때 766칸의 사찰이 다시 또 불타 폐허로 변해버렸다. 그 많은 건물 중의 불이문만이 겨우 제 모습을 지켰다.

건봉사는 계곡을 가운데에 두고 양편으로 전각이 나누어져 있다. 왼편에는 단청을 입히지 않는 극락전과 범종각 외에 다른 전각이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곳은 적멸보궁이다. 오른편에는 능파교 너머로 봉서루와 대웅전이 자리 잡고 있다. 건봉사에서 무엇보다 가장 기대되고 흥미로운 곳은 대웅전 왼편에 있는 사리친견장이다. 이곳에서는 귀하디귀한 부처님의 진신 치아 사리를 볼 수 있다.

건봉사는 화마와 전쟁의 상흔으로 전국 4대 사찰의 옛 위엄과 위용이 쇠퇴한 게 못내 아쉽다.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건봉사의 참모습을 눈에 보이는 전각의 규모로만 따질 수는 없지만 대단했던 옛 모습을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감출 수 없다. 지난 역사의 장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 안타까움은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


DSC06884.JPG


불이문을 지나 눈에 들어오는 계곡과 능파교의 아름다운 경치가 그 안타까움을 잠시 잊게 한다.

적멸보궁으로 먼저 갈까? 아니면 부처님 치아 사리를 먼저 보러 갈까? 잠시 망설인다. 학창 시절, 어머니가 도시락 밑에 깔아준 계란프라이를 늘 남겼다가 마지막에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게 습관이 되어 좋은 것은 늘 마지막으로 돌려둔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길에서 오랫동안 지켜온 나의 습관을 깨뜨리고 사리친견장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긴다.

고해의 바다를 헤치고 부처님의 세계로 간다는 의미가 있는 능파교를 건넌다. 능파교를 건너 봉서루에 들어서면 계단 위로 대웅전 현판이 유난히 또렷하게 보인다. 해가 바뀌고 처음으로 찾은 사찰이다. 우매한 중생이라 마음을 갈고 닦는 공부보다 이것저것 잘되게 해주십사 간청드릴 것만 생각한다. 또 그 바람이 잘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와 불사와 함께 촛불까지 밝힌다.

대웅전에 들르기 전에 부처님 진신 치아 사리부터 보러 간다. 건봉사에 부처님 진신 치아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치아 사리가 적멸보궁 불사리 탑에 봉안된 것으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직접 볼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랍고 반갑다. 복권이라도 당첨된 것처럼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조심스럽게 사리친견장의 문을 여는 순간까지도 믿어지지 않았다. 있다! 정말 있다! 그것도 사리 친견대에 올라서면 손에 잡힐 듯 코앞에서 또렷하게 볼 수 있다. 황금 사리함에 5과의 진신 치아 사리가 놓여 있다. 가운데에 1과가 있고, 사방에 4과가 놓여 있다. 사정없이 떨리는 놀라운 마음을 쉽게 진정하지 못한다. 여행하면서 수많은 사찰을 다녔지만, 이런 행운이 있을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DSC06888.JPG


그 감동을 보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못한다. 그 귀한 치아 사리를 사진으로 담아 두고 싶은 마음이 정말 굴뚝 같다. CCTV가 지켜보겠지만, 당장 건물 안에는 아무도 없다. 심하게 갈등하는 머리의 지시를 기다리는 사진기 든 손이 어쩔 줄을 모른다. 갈등과 고민 끝에 결국 사진을 담지 않고 물러났다. 치아 사리가 놓여 있는 커다란 금고 문에 사진 촬영을 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렇듯 귀한 부처님 치아 사리를 보면서 그것을 어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여기서 건봉사 부처님 진신 치아 사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넘어 가보자. 건봉사의 부처님 진신 치아 사리는 신라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가져온 진신사리 100과 중의 일부이다. 가져온 진신사리는 5대 적멸보궁인 통도사, 월정사, 법흥사, 정암사, 봉정암에 나누어 봉안했다.

그중에서 통도사에 봉안된 진신사리를 임진왜란 때, 왜군이 탈취해갔다. 그것을 사명대사가 되찾아 와서 통도사에 다시 봉안하고, 그중의 12과를 이곳 건봉사에 봉안했다. 우여곡절 끝에 건봉사에 봉안된 진신 치아 사리는 1986년 전문도굴범들이 사리탑을 도굴해 사리와 사리함을 훔쳐 갔다. 훔쳐 간 사리를 도굴범들이 다시 돌려보냈는데, 돌려보내는 과정이 이 또한 흥미롭다.

사리를 훔쳐 간 일당들은 며칠간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한다. 꿈속에서 부처님이 사리를 다시 절로 돌려보내라고 꾸짖었다고 한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12과 중의 8과만 돌아왔고, 나머지 4과는 아직 행방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1996년 건봉사는 3과를 사리탑에 다시 봉안했고, 5과는 일반 신도들이 볼 수 있도록 모셔놓았다. 이렇게 부처님 진신 치아 사리를 볼 수 있기까지 참 많은 사연이 있었다.

DSC06910.JPG


입춘날에 이렇게 귀한 것을 보아 아무래도 올해는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다. 건봉사에서 맞이한 올해 입춘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날이 되었다. 대웅전을 들르고 나서 다시 능파교를 건너 적멸보궁으로 간다. 적멸보궁 사리탑에 봉안된 부처님의 진신 치아 사리를 다시 만난다. 사리탑 안에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방금 보았던 치아 사리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있어 직접 보는 듯하다.

그동안 전국을 여행하면서 많은 산사를 갔다. 여행지로 산사는 어느 계절에 어디를 가든 실패하지 않는다. 산사를 품은 산이 있어 산사는 언제 가도 넉넉하고 푸근하다. 산사만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산사를 찾는 이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준다. 그 때문에 산사에 안겨만 있어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갈해진다.

산사는 언뜻 보면 다 같아 보이지만, 같은 듯 다른 저마다의 크고 작은 특징이 있다. 그것이 산사를 찾는 즐거움이 되고, 또 그 산사를 기억하게 된다. 이전에 왔던 건봉사의 기억은 깨끗하게 지워졌다. 지우개로 깨끗하게 지운 하얀 도화지에 오늘 만난 건봉사를 또렷하게 그려 넣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