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아직도 여행하면 이것저것 준비해서 먼 곳으로 가야 한다는 편견이 남아있는 걸까? 차를 타면 집에서 10여 분만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 길동생태공원이다.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길동생태공원을 가본다 가본다고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간다. 길동생태공원은 하남에서 천호동 방향으로 쭉 뻗은 천호대로와 고덕동에서 둔촌동 중앙보훈병원 방향으로 이어지는 동남로가 교차하는 큰 사거리에 있다.
잠시 하남에서 살 때는 물론 30여 년을 살은 고덕동을 드나들 때마다 이 사거리를 지나다녔다. 그때마다 글자로 만든 커다란 길동생태공원 간판을 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는 아니? 생태공원이 여기에 왜 있나 싶어 고개가 갸우뚱했다. 그걸 한두 번이 아니라 수없이 보다 보니까 언제인가부터 어떤 곳인지 한번 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 호기심은 잠시 멈추어 있던 여행 욕구에 불을 지폈다. 그러면서도 그 다짐은 집으로 달려가는 퇴근길의 자동차만큼 빠르게 기억에서 지워졌다.
지워진 기억 탓도 있지만, 가까운 곳에 있어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에 여름날 엿가락 늘어지듯이 늦어졌다. 사실 이것 말고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도심에 있는 생태공원이라 호기심을 자극하기는 했지만, 시끌벅적한 도심에 있어 뭐 볼 게 있을까 싶은 선입견이 있었다. 생태공원 하면 사람 발길이 뜸한 청정한 자연부터 떠올리기 쉽다. 길동생태공원이 있는 강동구는 45만 명이 뒤엉켜 살아가는 곳이다. 서울의 동쪽 끝이라고는 하지만 생태공원이 자리하기에는 뭔가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절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봄꽃들이 떨어진 지도 제법 되었다. 이제는 그 빈자리를 눈부신 연둣빛 잎사귀들이 채우고 있다. 솜털이 뽀송뽀송한 연둣빛 어린잎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색이 짙어진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봄이 절정의 멋을 보여주기도 전에 벌써 여름 체취를 풍긴다. 한낮 기온이 20도를 웃돈다. 반소매 옷차림에 선글라스까지 꺼내 써도 어색하게 보이지 않는다. 봄과 가을이 하도 짧아져 없어졌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짧은 기간 자태를 뽐내다 지고 마는 꽃보다 오래도록 싱그러움을 보여주는 초록 잎사귀를 더 좋아한다. 자랄 대로 자라 한껏 성숙미를 보이는 여름날 잎사귀도 좋지만, 맑고 깨끗한 생명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연둣빛 어린잎을 정말 좋아한다. 밝은 햇살을 받아 실핏줄 같은 잎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어린잎을 보면 어쩔 줄을 모른다.
5월의 어린잎은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이처럼 귀엽고 예쁘다. 개중에는 벌써 연둣빛을 벗어던지고 초록으로 변한 것들도 있다. 어렸을 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아이처럼 어린잎들도 그런 바람이 있는가 보다.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잎은 이제 연두와 초록의 경계에서 눈에 띄지 않게 변신하고 있다. 나뭇잎도 지금이 딱 보기 좋은 때다. 어린잎이 초록으로 더 짙어지기 전에 한 번 더 보자는 생각으로 길동생태공원을 간다.
길동생태공원은 하루 입장객을 400명으로 엄격히 제안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고 인터넷으로 방문 날짜와 시간을 사전에 예약해야 한다. 예약제로 정해진 인원이 시간대별로 분산되어 생태공원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한산하다. 출입구 안내센터에서 예약확인 문자를 보여주고 나서 생태공원을 둘러본다.
길동생태공원은 5개 지구로 나누어져 있다. 입구에 있는 탐방객 안내센터와 반딧불이 체험관이 있는 광장지구를 시작해서 저수지 지구, 농촌&초지지구, 산림지구, 습지 지구가 조성되어 있다. 오가는 사람들 모습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생태공원을 독차지한 것 같아 기분이 한껏 설렌다. 어디로 갈까 잠시 망설이다 나무숲이 우거진 비포장 길로 방향을 잡는다.
딱딱한 콘크리트나 보도블록 위를 걷는 것과는 다른 폭신함이 기분 좋게 발바닥으로 전해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도시에서 흙을 밟는 일이 많지 않다. 여태 그러려니 했던 것이 새삼스럽고 놀랍게 다가온다. 초록이 가득한 길에 이름 모르는 꽃들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긴다. 서두를 것이 없어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느릿느릿 걷는다. 얼마 가지 않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연두와 초록의 경계에서 나무들은 계절의 싱그러움을 마음껏 뽐낸다.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고. 부담스러운 관심도 받지 않고 있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답고 건강한 모습이다. 걷는 길 오른편으로는 조금 떨어져 널찍한 천호대로가 뻗어있다. 대로를 질주하는 차들의 소음이 들려도 쾌적한 길을 걷는 즐거움은 방해하지 못한다.
흙길을 걷다 농촌&초지지구로 들어선다. 여기서부터는 울창한 숲속에 나무 데크 길이 만들어져 있다. 흙길을 밟던 감촉과는 또 다른 편안한 느낌이 전해진다. 걸음을 뗄 때마다 나지막한 발소리가 뒤처지지 않으려고 바짝 따라붙는다. 그게 뭐라고 발소리마저도 기분을 좋게 한다. 울창한 나무숲은 하늘을 가리고 있어 어스름하다. 숲속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고요 속에 빠져 있다.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기운이 코끝을 간질인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건강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어디선가 숲속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새소리가 들려온다. 나뭇가지 어딘가에 숨어 지저귀는 새소리는 고요함 덕분에 크고 또렷하게 들린다. 새소리는 이 세상 그 어느 소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한번 상상해보라. 사람 없는 고요한 초록의 숲속에서 들려오는 맑은 새소리를. 아름다운 정도가 아니라 그 순간 행복함이 느껴진다. 이곳이 도심 속 생태공원이 아니라, 깊은 산 숲속 길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아주 가끔 마주치는 사람이 있지만, 생태공원은 여전히 조용하고 아늑하다.
숲속에 있는 나무 의자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의자에 앉아 두 팔과 다리를 쭉 뻗는다. 쭉 뻗은 두 팔과 다리를 통해 삶의 묵은 찌꺼기들이 빠져나간다. 몸이 말할 수 없이 가볍고 개운해진다. 잠시도 쉬지 않는 뇌의 활동을 강제로 정지시키고, 초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초록 숲을 바라본다. 눈길을 따라 빨려 들어온 숲의 초록이 몸과 마음을 물들인다.
초록은 우리 눈을 가장 편하게 해준다. 스트레스와 격한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균형을 잡아준다. 또 몸과 마음을 시원하고 안정되게 해준다. 그 때문에 초록이 가득한 숲에 있으면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마음의 여유와 안정감을 누릴 수 있다. 시간이 가도 일어설 마음은 조금도 생기지 않는다. 다른 것을 보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의 평온과 여유를 즐기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인제 그만 됐다 싶을 때까지 앉아 있으리라 작정한다.
넓게는 같은 초록 과라 할 수 있는 연두색을 유별나게 좋아한다. 연두색을 좋아하는 건 어제오늘이 아니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던 초등학생 때부터 좋아했다. 어렸을 때 크레파스를 열면 늘 연두와 초록색 크레용이 제일 많이 닳아 있었다. 처음 한복을 해 입은 게 20대 중반이었다. 제사가 많은 장손 집안이라 그랬는지 돌아가신 어머니는 남들보다 일찍 한복을 해주셨다. 그때는 개량한복이 없던 때라 격식에 맞게 바지저고리에 조끼와 마고자를 갖춰 맞추었다.
바지저고리는 대부분 무채색이었고, 조끼와 마고자는 색깔이 들어갔다. 그때는 대부분 붉은색 계통으로 했다. 어머니도 붉은색으로 하실 생각이었다. 그때 우기고 우겨 좋아하는 연두색으로 조끼와 마고자를 맞추었다. 아들이 해달라고 조르니 어쩔 수 없이 해주기는 했지만, 연두색 한복을 입은 사람이 없던 때라 어머니는 내심 걱정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그러다 막상 나온 한복이 환하게 보기 좋아 어머니도 흡족해하셨다.
결혼하면서 붉은색으로 다시 한복을 맞추는 바람에 연두색 한복은 큰누이 조카에게 물려주었다. 요즘은 명절이라고 해도 한복을 입지 않는다. 결혼할 때, 맞춘 붉은색 한복은 장롱에서 빛을 보지 못한지가 한참 되었다. 그래도 명절이 되면 연두색 한복은 생각이 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연두색을 좋아한다. 이것을 보면 연두색에 빠지긴 푹 빠졌다. 지금껏 보았던 연두색 중에서 가장 곱고 예쁜 것은 봄날에 돋아나는 어린잎이다. 봄이 오면 많은 이들이 꽃 피기를 기다리지만, 나는 어린잎이 돋아나기를 기다린다.
길동생태공원은 거대한 도시에 허파 역할을 한다. 숲을 이룬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가 있어 같은 하늘 아래 도시에서 맛보는 공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 공기는 무색무취인데, 숲속에서 들이마시는 공기는 상큼 달콤하다. 부드러운 햇살을 받아 한층 더 싱그러운 나뭇잎을 보며 좋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일상에서 벗어난 즐거움은 차고 넘친다. 정적만이 감도는 숲속에서는 흐르는 시간도 게으름을 피운다.
마음이 평온해지다 못해 흐물흐물 녹아버린다. 핸드폰 배터리가 떨어져 충전하면 건전지 모양에 녹색불이 들어온다. 그것처럼 간당간당한 삶의 배터리에 신선하고 건강한 기운을 빵빵하게 채워 넣는다. 왜 이제야 왔을까 하는 후회가 다 든다. 그래도 이 계절이 주는 초록의 파티를 마음껏 즐겼으니 아쉬운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