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왜 그렇게 진행되었을까? 우리 오천 년 역사에서 제일 아쉽고 안타까운 부분이 하나 있다. 철기병을 앞세우고 대륙을 휘저었던 막강한 고구려가 후방에 있었던 신라와 백제를 왜 먼저 병합하지 않았을까? 굳이 병법을 들먹이지 않아도 후방을 안전하고 든든하게 해놓은 다음에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야기이다. 중원을 위협할 정도로 국력이 하늘을 찔렀던 시기에 마음만 먹었다면 신라와 백제를 병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파죽지세로 대륙을 정복했던 시기에 고구려가 신라와 백제를 먼저 병합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못한 걸까? 아니면 하지 않은 걸까? 비좁은 한반도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작은 나라여서 언제든지 정복할 수 있을 거라는 자만심에 그대로 놓아둔 것인가. 아니면 한 민족이라는 동질감 때문에 함께 공존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정복하기에는 두 나라가 모두 버거운 상대여서 그랬을까. 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한 다음 한민족이 하나 되어 대륙을 공략했다면 우리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장쾌한 역사는 상상만 해도 두방망이질하듯이 가슴이 떨린다.
역사의 인물 중에서 좋아하는 분 중의 한 분이 고구려 광개토대왕이다. 광개토대왕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한 고구려의 19대 왕이다. 왕위에 있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전쟁터에서 보내며 수많은 정복 전쟁을 벌였다. 비좁은 한반도를 벗어나 대륙에 웅대한 역사와 발자취를 남긴 광개토대왕은 민족의 영웅으로 칭송받아 마땅하다.
오천 년 역사에서 정복의 역사를 써 내려간 왕은 손에 꼽는다. 끝없이 펼쳐진 대륙을 달리던 막강한 고구려 철기병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떨리고 피가 끓는다. 지축을 뒤흔드는 철기병의 말발굽 소리와 먼지바람 앞에 이민족들은 혼비백산해서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 지난날 광개토대왕이 정복했던 그 넓은 땅이 고스란히 후대에 전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호로고루(瓠蘆古壘). 성(城) 이름이 독특하고 재밌다. 호로고루는 연천군 임진강 북쪽 절벽 위에 있는 고구려 성이다. 삼국시대부터 그 일대의 임진강을 호로하(瓠蘆河)로 불렀던 데서 유래되었다. 한강 유역에서 후퇴한 고구려는 임진강을 남쪽 국경으로 삼았다. 호로고루는 임진강을 건너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가는 빠른 길에 있는 군사요충지였다. 고구려는 이곳에 국경방어사령부를 두고 임진강을 방어했다. 남한 지역에 고구려 유적은 많지 않다. 그나마 남아있는 유적도 대부분이 경기도 북부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임진강과 한탄강을 따라 천혜의 자연환경을 이용한 고구려 군사시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천군에는 호로고루와 함께 당포성과 은대리성이 있다. 세 군데 고구려성을 놓고 어디를 갈까 저울질하다가 독특한 이름에 끌려 호로고루로 간다. 하루가 서서히 저물기 시작하는 느지막한 오후의 붉은 햇살이 사방에 드리운다. 지금까지 보았던 성(城)은 성곽이 온전하게 남아 있거나, 성벽의 일부만 남았어도 규모가 큰 것들 이었다.
그렇다 보니까 성(城)하면 먼저 규모부터 생각하게 된다. 호로고루는 규모로만 따지면 지금까지 보았던 성에 비해서는 아주 작은 편이다. 호로고루는 보기 드물게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자연 지형을 그대로 활용한 성이라 규모가 클 필요 없고, 모양은 그만큼 특이하다. 호로고루는 성 둘레가 400여 미터로 남쪽과 북쪽은 천혜의 수직 절벽이 있어 따로 성벽이 없다. 평지와 연결되는 동쪽에만 길이 90m의 성벽을 쌓았다.
호로고루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다. 성벽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이 저무는 오후 햇살을 받아 실루엣으로 보인다. 파란 하늘 아래 검은 형태로 보이는 사람들 모습이 그림자로 보여주는 인형극을 보는 듯하다. 거기에 오후의 황금빛 햇살이 쏟아지면서 그림으로는 절대 그릴 수 없는 기막힌 경치가 완성된다. 또 한편으로는 가을이 깊어가면서 사방에 흩뜨려놓은 쓸쓸함이 있어 패망한 고구려의 안타까움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축 처져있던 몸 안의 세포들이 호로고루 경치를 마주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나둘 빠르게 깨어난다. 사실 호로고루를 오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남한 땅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고구려 유적을 본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늦은 오후의 멋진 경치 앞에서 혼자 어쩔 줄 몰라 한다. 덕분에 호로고루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높아진다.
성벽 앞에는 성벽 구조를 알기 쉽게 설명한 안내문이 있지만, 마음이 급해 일단 지나친다. 그것보다는 성벽 뒤편에 무엇이 있는지 또 어떻게 생겼는지가 궁금해 마음이 급하다. 또 빨리 성벽 위에 오르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진다.
기대와 달리 성벽 뒤쪽은 딱히 볼만한 것이 없다. 널찍한 잔디밭만 펼쳐져 있다. 그 옛날 고구려 군사들이 머물렀던 곳이지만, 그때의 흔적을 보여주는 유적은 남아 있지 않다. 안내문이 없었으면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었던 그 당시 집수시설 흔적이 호로고루의 역사를 오롯이 끌어안고 있다.
남한지역에 남아있는 고구려 유적 중의 호로고루에서 가장 많은 기와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 호로고루가 중요한 성이었고, 또 그만큼 지체 높은 건물이 있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때 건물이 하나라도 남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욕심을 부려본다. 욕심을 채워 넣을 수 없는 아쉬움이 가득한 잔디밭에 귀여운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간다. 그 아이 덕분에 아쉬움이 눈 녹듯 사라진다.
S자로 휘어진 돌계단을 밟으며 성벽을 오른다.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성벽 위에 서면 문외한이라도 호로고루가 얼마나 군사적 요충지인지를 대번에 알 수 있다. 깎아지른 절벽 밑으로 임진강이 소리 없이 흐른다. 그 절벽으로는 누구도 올라올 수 없다. 천혜의 자연환경이 그 어떤 성벽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견고함을 보여준다. 호로고루는 크지 않지만, 임진강 턱 밑에 창끝을 겨누고 있는 것처럼 강렬한 느낌을 준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던 지난날의 역사는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공포와 두려움이 비워진 자리에는 평화와 고요만이 가득하다. 흐르는 듯 아니 흐르는 듯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 위로 붉은 햇살이 길게 드리운다. 그 햇살을 받아 영롱한 보석처럼 반짝이는 물비늘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늦은 오후, 그것도 하루가 다르게 가을이 익어가는 계절에 보는 경치여서 그런지 더욱더 운치 있고 멋스럽다. 거기에 지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차분한 분위기가 있어 더욱더 매력적이다.
삼국이 치열하게 다투던 시기에는 호로고루에 언제나 긴장감이 팽배했을 것이다. 그때 경계를 서던 고구려 군사들에게도 이 계절에 지금의 이 경치가 펼쳐졌을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임진강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과 처자식, 장래를 약속한 처자, 아니면 죽느냐 사느냐 생사의 갈림길에서 잠시도 떨쳐낼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혼돈의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성안을 한 바퀴 돌아 들어왔던 동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 찬찬히 성벽을 살펴본다. 성벽 앞에 있는 설명문도 빠트리지 않고 읽는다. 호로고루는 국경을 지키는 중요한 성이라 방어를 위한 구조를 충실히 갖추고 있다. 쳐들어오는 적들을 옆에서 공격할 수 있게 성벽 앞으로 드러내어 쌓은 치(雉)도 보인다. 동벽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성벽 구조가 모두 있다고 한다.
호로고루는 고구려가 쌓았지만, 고구려가 무너지고 신라가 장악하면서 기존 고구려 성벽에 신라가 덧붙여 성벽을 보수했다고 한다. 고구려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무암으로 성벽을 쌓았지만, 신라는 다른 곳에서 가져온 편마암을 사용했다. 설명문을 읽고 나도 어느 것이 고구려 것이고 어느 것이 신라 것인지 제대로 구분되지 않는다. 아무렴 어떤가. 그런 역사의 사실과 현장을 눈으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루를 마감하려는 하늘은 화려한 용트림을 시작한다. 하늘을 가린 구름을 뚫고 붉은 햇살이 사정없이 쏟아진다. 실루엣으로 보이는 성벽 위에 사람이 호로고루에서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는 고구려 장수의 비장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 모습에서 착잡함과 함께 지울 수 없는 회한과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제국을 건설했던 왕국이 멸망하지 않은 곳은 없다. 고구려도 그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비껴가지 못했다. 그래도 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의 위대한 역사가 오늘까지도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