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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티아 Nov 21. 2021

채식으로 가는 길

홍시와 망고에게 채식이란.

<나는  망고와 함께 하며 어떻게 채식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는가>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지글지글 냄새가 피어오르는 고깃집 또는 치킨집 앞을 지나갈 때 걸음이 빨라지거나, 마트에서 빨간 고깃 덩어리를 보면 얼른 고개를 돌리게 된 시점은 아마도 3,4년 전쯤부터인 듯하다.


국에서 <I Love Salad>라는 작은 샐러드 바를 운영했던 적이 있다. 샐러드 가게였지만 비건 식당은 아니었다. 샐러드와 함께할 베이컨이나 햄은 물론 닭가슴살이나 스테이크도 취급했다.  한 번은 예쁘고 늘씬한 여자 손님이 들어왔는데, 자신이   'Vegan'이라고 소개를 하며 샐러드와  샐러드드레싱의 성분을 물어보고,  스무디에 우유나 요거트 대신 코코넛 밀크를 넣어줄  것을 요구했다. 당시 우리 가게에는 코코넛 밀크까지 취급하지 않았고, 그래서 해줄 수 없다 하니, 'Vegan' 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샐러드 가게라면  당연히  앞으로는 코코넛이나 아몬드 밀크, 두유를 갖추고 있어야 할 거라 충고했다. 안 그래도 재료 준비할 게 넘쳐 나는데 뭘 또 더하라구?! 나는 알았다고 대답만 했지 실제로는 그 말을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 후로 그 여자 손님은 한 번 인가 더 오고 발길을 끊었다. 아마 난 그때 많은 비건 손님들을 실망시킨 샐러드 가게 주인이 되어  한동안 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아들 딸은 고기를 먹은 후에 고기 맛이 입에서 사라지는 게 싫어 디저트는 과감히 패스하겠다는 정통 육식 파이다. 게다가 고기는 늘 '미디엄 래어'로 구워 먹어서 커다란 접시에는 핏물이 비치곤 했다. 엄마로서 나는 그들의 욕구를 저버릴 수 없었고, 그래서 한 때 나는 부지런히 고기를 사다 냉장고에 쟁여놔야 맘이 편해졌었다. 망고에게도 고기를 나누어 주며 우리 가족은 열심히 육류를 소비했다.



그들이 장성하여 제 갈 길로 떠나고 온전한 나로서의 삶을 찾아가기 시작할 무렵, 그러니까 내가 망고와 한국에 돌아온 후, 망고와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망고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던 때에서야 '채식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강형욱 열풍>이 일고 있었고,  단순히 망고를 먹이고, 뉘이고, 산책시키는 일 외엔 무지한 망고 보호자였던 나는 그를 통해 '개 훈련의 중요성'이라든지  '개 물림 사고의 위험성' 또는 '잔인한 도살' 등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아는 동물은 <개>가 다였으나, 저 험난한 세상에는 개뿐 아니라, 고양이, 소, 말, 돼지, 양, 닭, 오리 등이 같은 시간에 존재하고 있었다. 영종도 어디쯤 드라이브 중에 <흑염소 농장>을 보고 저 흑염소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상상하며 혼자 분노에 휩싸였던 적도 있다. 나와 망고는 안전지대에서 서로 사랑과 신뢰를 쌓아가며 잘 살고 있을 때, 세상 한편에서는 하루에 30만 마리 이상의 동물이 잔인한 방법으로 죽어가고 있었다.(2020년 도축 통계)  아무리 감정의 교류가 없는 축산 동물이라 해도  나는 그 동물들을 더는 편한 마음으로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즈음 어느 날, 마트에 갔을 때, 소고기가 예쁘게 진열되어 있는 유리문 앞에서 그들이 살아 돌아옴을 느꼈고,  슬픈 눈망울이 어른거려 난 그 자리를 얼른 빠져나와야 했다.  이후 나는 적어도 나 자신을 위해서는 고기를 사지 않았고,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육식을 하는 <플렉시테리언 Flexitarian > 또는 <채식 선호 주의자>가 되었다.  실제 3년 정도 채식 위주의 식단을 지켜 온  나는 군살이 - 특히 뱃살 -  빠졌고, 정기검진 결과 약을 먹느냐 마느냐 수준에 있던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졌다.

그런데 이렇게  감정적이고 감상적인 발로에서 시작된 나의 채식 선호주의는, 완벽한 채식주의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육식 위주의 파티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유죄 의식 없이 버티기가 힘들었다.  상황에 따라 고기를 한 점씩이라도 먹어야 했고, 마음은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했다.


 



 내가 해결하지 못한 또 하나의 모순은, 나의 식탁은 온통 나물과 야채로 채우면서, 망고에게는 금방 삶은 닭가슴살을  맛있게 먹으라고 내미는 '개바보엄마'라는 사실이다. 망고가 닭가슴살 삶은 걸 아주 흡족해하며 첩첩 먹는 걸 보면 그렇게 마음이 뿌듯할 수 없다. 이런 모순을 나만 느끼는 게 아니어서 완벽한 비거니즘을 추구하는 어떤 이들은 개에게 조차 비건 사료를 주는 예도 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칼 같은 잣대로  인생을 살 수 없다는 온건주의 성향이므로 한겨레 신문의 곽노필 기자가 쓴 칼럼(2016.12.26)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채식이냐, 육식이냐는 식의  양자택일'을 종용하기보다, 어떤 식으로든 고기 소비를 줄여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 일주일에 7일을 고기를 먹어야 만족하는 사람이 하루 정도 고기를 먹지 않고 지내는 정도의 변화면 충분하다. 과격할 필요는 없다.


아이들이 집에 왔을 때, 아마도 난 그들을 위해 갈비나 스테이크를 구워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루쯤은 홍대 앞이나 망원동 어디에 있는 맛있는 베지테리언 식당에 데려가서 채식요리의 신세계를 맛보게 해 줄 것이다. 좋은 채식 요리를 맛 본 그들이 그들의 식단에서 하루쯤 고기를 뺄 수 있게 된다면, 그것으로도 일보 전진 한 셈이다. 나의 이 순진한 '죽어가는 동물들이 불쌍해요'에서 시작된 채식 선호주의는 '비거니즘 Veganism'이라는 거센  파도 속에 흐르는 조용한 속물결과도 같은 일렁임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상적으로는 나도 비건을 꿈꾼다. 고기뿐만 아니라 우유나 계란도 먹지 않고, 가죽, 모피,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도 사용하지 않는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한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하며 살아갈 예정이다. 먼 훗날 나의 노력이  넘칠랑 말랑한 컵의 마지막 물방울이 되어 모든 동물들이 해방될 날이 올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를 비건 지향의 길로 들어서게 한 훌륭한 인도자, 망고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공교롭게도 내가 이 글을 쓰는  11월 1일은 <세계 비건의 날>이다.

"Choose with your heart, choose for the planet, choose for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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