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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티아 Nov 26. 2021

사랑이란

망고의 선물


시간이 조금만 더 천천히 갔으면 좋겠어요.

이 귀여운 모습 오래오래 볼 수 있도록!!


젊은 엄마들의 SNS에 흔하게 올라오는 이 문구를 읽었을 때, 나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물론 사진 속의 아가들이나 어린이들은  너무 귀엽고 앙증맞고 꾸밈이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안 봐도 뻔한

저 힘든 시기에, 그 귀여운 순간을 오래오래 즐기고 싶어 시간이 천천히 흐르길 바란다는 저  여유는 어디서 오는 걸까?

분명 그들은 사랑을 아는 자들임에 틀림없다.

"천천히"라든지, "오래오래"라는 단어는   내가 애들을 키우던 시절엔 <금기어>와도 같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빨리빨리 커서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하고, 사회인이 되기를 아이가 초등학생 시절부터 고대했었다.


요즘 티브이에서 하는 육아 버라이어티 중에 나는 <내가 키운다>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있다. 이혼해서 한 부모가 된 엄마나 아빠가 아이들과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특히 김나영의 팬인 나는 그녀가 사랑과 위트를 한 스푼씩 섞은 대화로 여섯 살, 네 살 먹은 남자아이 둘을 대하는 모습에 늘 감동을 받는다. 티브이 밖의 모습에서는 화도 내고 짜증을 내기도 할 테지만, 그녀는 가끔 이런 얘길 한다.

" 두 살 때의 (혹은 네 살 때의) ㅇㅇ가 보고 싶어."

이제 와서 나도 어릴 때의 내 애들이 그립기도 하나, 육아라는 치열한 전쟁의 한가운데 있을 때  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고된 육아 속에서도 순간의 반짝거림을 찾아낼 수 있는 그들이 위대하고 대단하게 느껴진다.


큰 아이가 어린 시절, 이웃 친구 중에 생일이 하루 차이 나던, 같은 성별의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두 아이의 성향이 정반대였다. 우리 애는 정적인 반면, 그 애는 운동 신경이 유난히 발달한 아이였다. 그 아인 10개월 경부터 걷기 시작했고, 우리 애는 14개월이 넘어서야 걸었다.

'이게 뭐라고, 어차피 평생 걷게 될 것을!!' 그런데 그때 나는 그 친구 애가 빨리 걷는걸 그렇게나 부러워했다. 나의 첫 육아 시련이었다.

(나의 애는 자라서 고등학교 시절, 평발을 극복하고 오래 달리기 선수로 지냈다.)

책을 더 좋아하고, 앉아서 하는 블락 놀이, 기차놀이를 더 좋아하던 아이의 모습은 보지 못하고, 왜 빨리 걸을 생각을 안 하나에만 집중해서 애를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모자라고 한심한  엄마였던가.

마음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사랑한다는 게 어떤 건지 알지 못했기에 아이들을 아이들 그 자체의 모습으로 보지 못했다.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 주는 것,

기다려주는 것,

곁에 있어주는 것!




 큰 애는 고2, 작은 애는 중1이 되던 해에 망고가 우리 집에 왔다.

망고가 오자마자 내 마음속 사랑의 신호등에 파란불이 번쩍 켜진 건 절대 아니었다.

귀여웠으나, 배변훈련 및 산책을 시키는 일이 내 업무량에 더해져 피곤한 날들이었다.

아이들이 사춘기 언저리에 있었고, 나는 아이들 라이드며 집안일에 힘들었고, 남편과의 사이도 제일 안 좋은 때였다.

망고는 그 시절에 그냥 우리 곁에 있었다.

그냥 있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뉴저지 주에서 인디애나 주로 이사를 가게 될 때도 망고는 우리 곁에 있었다.

차에 대한 공포가 있어 차 타기를 싫어하던 망고가  12시간이나 되는 로드 트립 내내 조용히 가준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망고는 하나 둘 가족들이 떠나가는 과정에서도 내 곁에 남아 있었다.

저와 나 단 둘이 살았을 때, 우리의 애틋함은 절정에 다다른 듯싶다.

나는 망고가 곁에서 든든히 지켜 주었기에 더 바라는 게 없었고, 망고의 유일한 바람은 내가 옆에 있어 주는 거였다.

어떤 상황에서건 보호자인 나만 있으면 안심을 하고,  작은 사랑으로도 행복 수치  올라가는 망고는 사랑 미니멀리스트이자, 사랑을 마구 퍼 나르는

 사랑 맥시멀 리스트이기도 하다.




내가 내 눈에 씌워진 상대방에 대한 욕심과 기대를 벗겨낼 때, 그 사람의 진면목이 보이고,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을 할 수 있다.


나는 아이들 곁에서 북돋아 주고 용기를 주고 기다려주는 엄마가 아니라, 앞장서서 끌고 나가는, 때로는 뒤에서 밀어붙이는 억척스러운 엄마였고, 그것이 엄마의 역할이라 여겼었다. 당시에는 오은영 박사님의 좋은 말씀도, 망고의 위로도 없었고, 오로지 <육아 대백과 사전>과 <옆집 엄마>만이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육아 정보였다.

 잘못 입력된 정보와 왜곡된 사랑의 힘으로 빨리 크라고 주문을 외운 순간, 아이들은 재크의 콩나무처럼 쑥쑥 자라더니 성큼성큼 엄마의 방에서 떠나 버렸다.

고등학교 이후 집을 떠난 큰 아인 아직도 나를  망고 이전의 욕심 많고 과격한 엄마로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망고 이후의, (사실은 아직도 수련 중이긴 하나)  말을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시간이 없었다.


망고는 나를 탓하지도 않았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망고의 존재 자체가 10년이란 세월 동안 나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채워주고 있을 뿐이었다. 노을 진 바닷가 혹은 아무도 없는 공원 숲에서 뛰노는 망고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왠지 마음이 놓이고 즐거워지고 편안해졌다. 그뿐이었다.

 욕심도 필요 없고, 이기심도 쓸데없고, 그저 오늘 너와 나 산책하고 소박한 음식을 먹고 편안히 잠들 수 있으면 그뿐임을 알게 해 준 망고.

위로받았고, 웃게 되었고, 순한  마음이 되었으니 이제  내 가족과 이웃에게 그 받은 사랑을 돌려줄 차례이다.



나는 망고 이전의 나와 망고 이후의 나로 나누어진다. 나는 절대 망고 이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I'll never be the same without Mango!

망고가 없으면 난 얼마나 삭막하고 외롭고 쓸쓸한 나날을 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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