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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티아 Nov 23. 2021

펫시터 도전기

홍시와 릴리의 첫 만남 - "전력질주"

2021.여름

릴리는 나의 첫 게스트였다. 얼굴은 까맣고, 몸은 까망과 하양이 조화롭게 섞여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보더콜리 믹스견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릴리가 멋있게 보였던 건 아니다. 나는 그때까지 6kg인 망고보다 큰 개와 어울려 본 적이 없었으므로, 10kg 나간다는 릴리를 처음 봤을 때, 좀 겁이 나기도 했다.


아니, 펫시터가! 돌봐주기로 한 개가 무섭게 느껴진다면 어쩌겠다는 건지!!!


이런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보호자와 릴리와 나의 첫 삼자대면 시간에는 좀 호들갑스럽게 릴리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거 같다.


2019년 3월, 서울에 돌아와 미국에서의 샐러드 가게 주인일 때의 고단함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나자, 그 자리로 스물스물 무료함이 올라왔다. 망고와 단 둘이 심심한(?) 산책을 하느니, 손이 필요한 다른 강아지를  돌봐주고 산책도 같이 하면 '참 좋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때 마침 sns에 올라온  <펫시터에 도전하세요>라는 문구의 광고를 보았고, 나는 '아, 역시 운명인 거야' 라며 당장에 신청을 하고, 교육을 받고, 펫시터 앱의 당당한 우리 동네 펫시터가 되었다. 뭔가 하나 꽂히면  그 호기심이 해결될 때까지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내 성격이 이 때도 한몫을 해서, 모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릴리와의 첫날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난 릴리의 리드 줄을 놓쳤고, 도망가는 릴리를 잡기 위해 미친 듯이 뛰었던 것이다!!!

펫시터와 반려견의 첫 만남은 보통 집 근처 산책로나 공원에서 이루어진다. 나의 반려견과 냄새도 맡고 주변 산책을 같이 하면서, 처음 접하는 낯선 환경에 조금이라도 긴장감을 낮춰주기 위해서다.

릴리 보호자는 나에게 릴리를 맡기고 멀어져 갔다. 나와 망고와 릴리는 공원에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시야에서 멀어질 무렵 본격적인 공원 산책을 위해 시동을 걸었다. 그때였다. 내가 릴리의 리드 줄을 고쳐 잡기 위해 잠시 줄의 팽팽함이 느슨해지던 찰나, 릴리는 줄을 채뜨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보호자들을 찾아서!! 공원 바로 앞에는 이차선의 횡단보도가 있었다.  


아, 안돼!!!


난 반사적으로 망고의 줄을 던져버리고, 릴리 뒤를 쫓아갔다. 교육받을 때, 그렇게도 강조하던, 산책 시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그 중요 포인트를 나는 만나자마자 시연하고 있었다.

릴리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횡단보도를 무사히 건넌 건 천만다행이었다. 릴리의 질주는 결국 보호자를 만나고서야 멈췄다. 약 200미터 남짓이었다. 나도 곧이어 헉헉거리며 그들 앞에 다다랐다. ! 그 보호자는 얼마나 놀라고 황당했을까! 나는 연신 미안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는 동시에 변명에 가까운 상황 설명을 했고, 너그러운 보호자는 오히려 릴리의 리드 줄이 내 손에 익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며 본인이 내 스타일에 맞는 자동 리드 줄을 주문해 주겠다고 했다. 이 얼마나 신생 펫시터를 위로해주는 말이던지 난 조금쯤은 후유 하며, 보호자로 부터 안 떨어지려는 릴리를 두 팔로 번쩍 안아 들고 이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공원을 향해 걸었다. 내 행동에 놀란 망고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는데, 이 또한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이었다.


2020 여름, 릴리와 망고


코로나 팬데믹 시기로 접어들며 펫시터 앱이 문을 닫은 후에도, 이렇게 맺은 릴리와의 인연은 계속되어  지금도 나는 릴리 보호자의 요청이 있을 때 언제든지 릴리를 돌봐주고 있다. 릴리는 이모네 집에 놀러 오는 듯한 기분으로 신이 나서 온다. 원래 릴리는 보호자에게 훈련을 잘 받은 매너 있는 강아지여서,  택배 아저씨 발소리에 짖지도 않고, 다른 산책견을 만나도 조용히 킁킁 인사하거나 아예 관심을 두지 않으며, 엘리베이터 안이나 신호등 대기 중에도 한쪽에  조용히 앉아서 기다릴 수 있다.  

특히, 큰 눈을 꿈뻑이며  내 옆에 딱 붙어 앉아 만져 주기를 기다리는 릴리의 애교는 누구도 이 애를 거부할 수 없게 만든다.

처음 릴리를 대했을 때의 "겁"은 릴리의 매력에 사르르 녹아 사라져 버렸고, 남편과 방학 때만 집에 오는  딸까지 우리 가족은 모두 릴리의 팬이 되어 버렸다. 망고와 릴리는 친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싸우고 힘겨루기를 하지도 않는다. 다만, 내 체력의 저하로 3년 전 그때처럼 릴리와 열정적인 산책을 못하는 게 아쉽고 미안한 맘이 든다.


호된 신고식을 치른 펫시터 도전은 그 후로도 순탄치 않았다. 한 살이 채 안된 웰시 코기와 망고와의 전쟁은 또 얼마나 살벌했는지. 애초에 가뜩이나 사회성이 없는 망고를  배려하지 못하고 시작한 일이었기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망고는 자신의 안전한 공간을 침범당하는 기분이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나에게 위탁된 강아지를 편하게 해주어야 했고, 그렇게 다른 강아지에게 신경을 쓰면 쓸수록 망고의 불안감은 수직 상승했다. 망고는 힘이 저보다 센 다른 강아지를 피해 제일 구석의 식탁의자 밑에 숨어 나오지 못했다. 

그 밑에서 나를 쳐다보던 눈빛이란 애절함 그 자체였다!!


뿐만 아니라, 망고는 새로운 위탁견을 만날 때마다 정신없이 짖어대는 통에  그 보호자들이 놀라 예약을 취소하곤 했다.

결국 나는 10개월여의 기간을 전전긍긍하다 두 손을 들고 펫시터 탈퇴를 선언했다.


2021 여름 릴리

그 당시 8년간을 망고와 함께 하며, 난 강아지를 제법 안다고 착각했었나 보다. 그리고 내가 망고와 산책할 시간에 혼자 집에 있을 다른 강아지를 돕고 싶다는 순진하고도 막연한 망상을 했던 거 같다.  나는 내가 돌보기로 했던 강아지들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경험 부족과 망고를 배려하지 못한 점이 나의 펫시터 도전을 실패에 이르게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펫시터'란 직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만일 본인이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면 더더욱 강아지란 동물에 대한 기본 소양과 훈련법 정도는 꿰고 있어야 하겠다. 이 참에 믿을만한 펫시터의 소양을 몇 가지 소개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petprofessional.com/ by Leanne Philpott)  

펫시터를 고려 중인 분, 혹은 펫시터가 필요한 분이라면 아래의 기준을 살펴본 뒤 결정하면 좋을 것 같다.


1. 밝고 긍정적인 태도(a happy and positive attitude)

2. 여유 있는 일정(flexibility)

3. 얼마나 잘 돌볼 수 있는지(caring nature)

4. 책임감과 신뢰감(Responsible and trustworthy)

5. 풍부한 경험(experience)

6. 상황에 맞는 대처 능력(sensitive and understa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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