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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티아 Nov 20. 2021

너와 함께 걷는 길

망고와 함께 해서 완벽해진 홍시의 하루

 

비 온 뒤 눅눅하고 추운 아침, 눈곱을 떼고 옷을 끼어 입고 망고와 대문을 나선다.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이 쌓여있는 거리를 킁킁거리며 걷는 망고의 엉덩이가 신이 났다.

추워지니 이른 아침 산책하는 사람들이 삼분의 일로 줄었다. 한산한 산책로를 차지하고 걷는 기분이 홀가분하다. 그러나 늘 방심은 금물이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까만 중형견이 눈에 띈다. 얼른 망고의 리드 줄을 바짝 당기고 될 수 있으면 멀리 그 개와 마주치지 않게 돌아간다. 사회성이 일도 없는 망고를 위해서다. 눈치채지 못한 망고는 여전히 신난 엉덩이로 내 곁을 따라 걷는다.

망고는 11년 전, 나를 이렇게 <산책>의 길로 입문시킨 나의 산책 스승이자 지금의 산책 메이트이다. 망고와 산책하며 난 늘 내가 망고를 리드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이후, 망고도 같이 걷는 사람을 배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년 전, 엄마는 차사고로 다리가 골절되고 장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었다. 한 달 동안 세 차례의 수술과 회복과정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그녀는 걷기 힘들었고, 재활훈련이 필요했다. 나와 망고는 엄마 집에  머물며 그녀를 돌보기로 했다.

그날은 햇볕이 따스했고 바람도 한 점 없는 가을의 화창한 날이었다.  나와 망고는 엄마의 걷기 연습을 도울 겸 바람도 쐴 겸  집 앞 산책로에 나갔다. 보행보조기에 의지해 천천히 걷는 엄마를 따라, 나와 망고도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때, 어느 아주머니가 다가오시더니 '강아지가 할머니 걸음 맞추느라고 천천히 걸어주는구나. 기특하다'하시며  망고 칭찬을 해주셨다. 나는 불안하게 걷고 있는 엄마에게 집중하느라 망고를 돌아보지 못했는데, 그제서 보니 망고는 빨리 가겠다고 떼도 안 쓰고 우리와 보조를 맞추며 걷고 있었다. 혹여 망고가  앞서  가다가도 할머니와 엄마가 잘 따라오는지 재차 뒤돌아 보며 걷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아챘다.


할머니의 완쾌 후, 망고와 할머니

그 후, 엄마가 집에서 연습할 때도 망고는 할머니 옆에서 걷다가, 먼저 앞서 가서 기다리다가 하며 할머니의 걸음 연습 동무가 되어 주었다. 사고로 가뜩이나 마음까지 약해져 있던 엄마는 망고의 그런 모습에 뭉클하여 눈물을 글썽이곤 하셨다.

평소에 망고는 동네 강아지들 정보 수집하느라 여기저기 킁킁거리며 걷기 바쁜 강아지였다.  그런데 그날 망고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할머니가 지금 편치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할 수 있는 몸짓으로 할머니를 위로하고, 배려하고, 응원해준 것이리라. 망고는 결코 아무것도 모르는 그냥 '개'는 아니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이미 빨간 불로 바뀐 8차선 횡단보도에서 먼저 건너간 강아지가 미처 따라오지 못한 할머니에게 되돌아와  천천히 할머니를 도와 무사히 도로를 건너간 사연을 보았다.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할머니와 강아지는 2인 1조가 되어 무사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망고가 할머니를 뒤돌아 보며 걱정한 것처럼, 저 강아지도 걸음이 느린 할머니가 염려되어 되돌아갔을 것이다. 개들의 이런 보호자에 대한 배려심은 위기 상황에 더 빛이 난다.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다'라는 뜻을 가진 배려(配慮) (네이버 표준국어대사전)라는 단어를 몸으로 보여주는 강아지들의 행동이 우리 삶을 훈훈하게 해 주고, 삭막한 세상에 잔잔한 감동을 던져 준다.




내가 개를 키우기 이전에는 '개는 그저 개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오히려 어린 시절, 동네 개가 자꾸 따라와 겁에 질렸던 기억이 있어  개를 무서워하기도 했고, 그나마 귀엽고 작은 개를 만지기라도 한 날엔 안티 박테리얼 비누로 손을 빡빡 닦기도 했다. 그러던 나의 삶 속에 망고는 어느새 이렇게 스며들어왔고,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고 살피고 끌어주는 관계가 되었다.

얼마 전, 우연히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다.


'Dogs are not our whole life, but they make our lives whole.'

 - Roger A. Caras -

망고는 힘들고 지친 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도 '삶은 어떤 순간에도 계속되어야 한다'라고 를 일으켜 밖을 향해 내 발걸음을 옮겨준다. 하염없이 가라앉는 내 옷자락을 잡아끌고 나를 신선한 공기 가득한 숲으로 이끌어 준다.

'무슨 일이 있었어? 괜찮아, 그런 건 아무 일도 아니야. 다 지나갈 거야.'

앞을 향해 열심히 걸어가는 망고의 뒤통수가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는 듯하다.

내가 망고의 리드 줄을 잡고 있지만, 정작 나를  속으로 인도하는 자는 망고가 아닐까. 오늘도 망고와 산책을 하며, 망고가 만들어 준 나의 완벽한 하루에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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