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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티아 Nov 20. 2021

엄마, 가지 마

홍시는 과연 미국으로 되돌아갈 것인지.

<11년째 동거 중인 나의 반려견 망고는 제 인생의 5분의 1을 같이 해 온 제 삶의 역사이자 앞으로도 같이 써나갈 저의  미래입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더 진해진 강아지 한 마리와 그 엄마의 러브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삑삑삑 도어록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망고는 벌써 문 앞에 와있다.  문을 열자마자 너무나 반가운 얼굴로 앞발을 번쩍 들어 내 다리를 닥닥 긁으며 빨리 안아 달라고 낑낑거린다. 망고를 품에 안아 들고 서로 얼굴을 부비부비 하며 행복한 상봉 의식을 치른다.


망고는 항상 내가 돌아오리라는 것을 믿는다. 만일 내가 6개월 아니 일 년을 넘게 집을 비운다고 해도 망고는 언젠간 엄마가 돌아올 것을 아무 의심 없이 믿으며 기다릴 것이다. 열리지 않는 문을 하염없이 슬픈 눈으로 바라보면서.




11년 전에 망고가 내 인생에 문을 열고 들어 왔을 때, 난 미처 준비되지 않은 엄마였다.  중학생이 된 딸아이의 생일 선물로 남편이 어느 날 문득 데려온 아이는 솜뭉치처럼 생긴 게  짖기도 하는 무척 낯선 존재였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귀여운 모습과 재롱에 다들 푹 빠져 들었고 그렇게 우리 가족은 다섯 식구가 되었다.


망고와  같이 울고 웃으며 지내는 사이  큰 아인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났다.  그리고 다음 해, 작은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남편은 직장 따라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나는 딸아이의 교육을 위해 미국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우연히 알게 된 샐러드 가게를 인수하면서  망고와 딸과 나의  하루하루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어느덧 딸도 대학으로 떠나고,  둘이 남게 된 망고와 나는  바쁘게 돌아가는 가게 때문에 10시간 가까이 헤어져 있어야만 했다. 실외 배변 견인 망고를 위해 중간에 잠깐 집에 들르곤 했지만, 그 시간은 불과 30분 남짓이었다. 사회성이 없는 망고는 대안으로 보낸 데이케어 센터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어느 날 낮에 집에 들르니 망고는 문 앞에서 떨고 있었다. 원체 소심해서 산책 나가자는 말에도, 비 오는 소리에도 덜덜 잘 떠는 아이인지라 그날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내가 다시 나가려 할 때,  망고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하며 같이 나가겠다고 나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유난히 하늘이 음산했던 그날, 나는 그 황량하고 넓은 미국 땅에서 홀로 가게를 운영하며 망고와 단 둘이 지내는 것은, 나 혼자 사는 것보다 이상하게 더 외롭고 쓸쓸하다고 느꼈다.  아마 망고도 그랬던 거 같다.

 


그날 오후, 가게 문 앞에는 <Temporary closed > 사인이 걸렸고, 나는 망고를 안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며 잠들었다. 가게를 하는 내내 난 줄곧 혼자 집에 있는 망고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는데, 이 날 나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망고의 외로움이 내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나도 같이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가게문을 닫고 한국으로 갈 결심을 하는 나를 누가 이해할까 싶어 입을 꾹 다물고 망고 얘긴 꺼내지도 않았다.




그렇게 4년 전, 혼자는  힘들고 외롭다는 '대외적인' 이유를 붙여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있는 남편곁으로 돌아왔다.  만일 망고가 없었더라면, 난 아마 더 오래 미국에 남아 있었을 것이고, 시간이 흘러서는  애초에 내 꿈처럼 남편이 있는 한국에서 반, 애들이 있는 미국에서 반 살았을 것이다. 꿈이야 어찌 됐건, 망고와 매일 24시간을 붙어 있는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갔고  이제 다시 내가 살 곳을 선택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힘들고 어렵게 받은 영주권은 내가 한국에 거주하는 기간을 단 5년 간만 허락했다. 일 년에 6개월 이상 미국 땅에 살지 않을 거면, 난 영주권을 포기하여야 한다.


 미국 이민국에서 영주권자에게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내어주는 장기 여행 허가증은 처음부터 5년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고   2년씩 두 번, 그리고 마지막 일 년을 신청해야만 받을 수 있다. 게다가 미국령 안에서만 허가 신청을 할 수 있고, 허가가 날 때까지 두 달 정도를 기다렸다가 허가가 나면, 다시 미국령 안에 들어가 지문을 찍고 새로운 허가증을 받아야 하는 아주 까다롭고 번거로운 절차를 가졌다.  난 이미 두 번을 신청해서 4년을 보냈고, 마지막 일 년을 얻기 위해 한번 더 허가 신청을 낼 수 있지만,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 일 년의 시간을 더 번다 해도 내년이 되면  똑같은 고민에 빠져야 하기에 그냥 서둘러 올해 결론을 짓기로 했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간다면 딸 곁으로 가서 아직 학업 중인 딸의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거 같다. 예전에 일하던 샐러드 가게 경험으로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남편과 이미 장성한 아이들은 내 결정에 따르겠다고 온 책임의 무게를 내 어깨에 실어준다.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라 하니 참 고맙기도 하면서  맘이 더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때 내  맘 저쪽 끝에서 내 옷자락을 잡으며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가지 마'


망고를 두고 갈 수 없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망고를 붙잡고 엄마 6개월만 다녀올게 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다.  사람보다 노화가 7배 빨리 진행되는 강아지에게 6개월은 42개월이나 다름없는데, 그 긴 시간을 슬픈 눈으로 문만 바라보며 엄마를 기다리게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만 12살이 되어가는 망고를 12시간이 넘는 힘든 비행을 시켜가며 미국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하는 일은 더 더 할 수 없다. 이미 심장에서 잡음이 들리기 시작해 가급적 뛰는 일도 삼가라는 의사의 조언을 들은 망고에게 비행기를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태우는 일은 생명을 단축시키는 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망고와 분리된 내 삶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아무 사정도 모르는 망고는 애초에 걱정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고민의 끈을 내려놓고 영주권 포기할 거라는, 엄만 너와 영원히 같이 있을 거라는 말을  망고에게 건넨다. 순진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망고의 얼굴이 편안해 보이는 건 내 맘이 그렇기 때문이겠지.


'그래. 걱정 마. 엄마 안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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