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티아 Nov 20. 2021

미국 시골에서 상경한 강아지

홍시와 망고의 서울 산책기

망고와의 서울살이는 녹록지 않았다. 행복을 찾아 비행기를 타고 무지개 저편의 나라에 왔는데, 막상 그곳은 척박한 땅인 듯했다.

물론 아빠와, 일을 그만둔 엄마와 함께 하는 생활은 외로웠던 망고의 세계에 안정감을 되찾아 주었다. 그러나 바깥세상 아니었다.


산책을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나와 망고에겐 용기가 필요했다. 우리가 서울에 온 2018년 봄은 미세먼지가 자욱한 해였다. 나는 마스크를 쓰더라도 그러지 못한 망고가 걱정이었다.  망고는 나쁜 공기 따윈 상관 안 했지만, 엘리베이터라는 신문명에 적응해야 했고. 길거리로 나서  집 근처 공원을 가기 위해  험난한 길을 가야 했다. 망고 생전에 이렇게 많은 차가 다니는 걸 본 적이 있었을까. 특히, 굉음을 내며 달리는 버스나 오토바이는 망고의 최고 기피 대상이었다.


미국에서 망고와 내가 살던 동네는 인디애나의 조용하고 한적한 주택가였다. 하루 종일 지나가는 사람 한 명 볼까 말까 할 정도로 조용했다. 호수 근처에 떼 지어 놀고 있는 거위들의 꽥꽥 울음소리만 아주 가끔 들을 수 있었다. 이런 환경에 있다가 서울에 온 망고는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으리라. 나 또한 두고 온 그곳의 신선한 공기가 너무나 그리웠다.


Indianapolis, 집주변 산책하던 망고 2017

 지나가는 차들은 많았지만, 보도를 따라 공원으로 이어진 길은 가로수와 꽃들이 예쁘게 잘 조성되어 있어 꽤 쾌적하고 좋았다. 집 근처 근린공원의 산책로에 도착했을 때에는  적당한 나무들과 사람들이 반겨 주었다. '아! 그래 이맛이지. 역시 사람 사는 곳 같아' 그런 생각을 하며, 망고를 바라보니 망고도 킁킁거리며 요기조기 냄새 맡는 모양이 한껏 신난 것 같았다.


너무 예쁜 서울의 주택가 거리. 2018

그 순간,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강아지 한 마리가 보였다. 망고는 바로 경계태세를 갖추고 작게 그르렁거렸다. 망고는 불행히도 사회성이 일도 없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  망고가 왔을 때, 난 강아지 훈련의 "훈"자도 모르는 무개념의 엄마였으므로 망고는 집안에서만 사랑받는, 세상에 저같이 이쁜 다른 강아지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불쌍한 애가 되어 버렸다.

다른 산책견들을 만날 때마다 피해야 했다.   인사 나누기를 시도해 봤으나, 서로 잘 냄새를 맡는 듯하다가 망고가 갑자기 공격적으로 돌변해 버리곤 해서 그 마저도 그만두었다.


미국에선 주택가의 거리에서 산책견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도 산책을 하지만, 이상하게 부딪힐 일은 없었다. 망고의 사회성 교육을 달리 필요로 하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이기도 하다. 주말에 공원에서  다른 강아지들을 만나더라도, 공원의 규모 자체가 워낙 크다 보니 멀리서 보고 헤어지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상황이 달랐다. 내가 한국을 다시 떠난  15년 만에 돌아온

2018년, 반려견의 숫자는 기하학적으로 늘어 있었다.

2020년 기준 전국 반려견 수는 602만 마리이며, 이는 2015년 보다 89만 마리가 늘어난 숫자라고 한다.(농림축산 식품부 조사 결과) 한정된 공간의 공원에 반려견 숫자는 날로 늘어나니, 어디를 가든 강아지를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망고는 이제 다른 강아지들과 인사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나이가 들어 망고의 비사교적인 행동을 교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부지런히 앞뒤 좌우를 살피며 가다가 다른 강아지가 눈에 띄면 망고와 바짝 길 가장자리에 붙어 기다리거나, 방향을 바꾸어 걷게 되었다. 요즘도 망고는 멀리서 다른 강아지들을 바라볼 뿐이다.




그렇지만, 멀리 서라도 다른 예쁜 강아지들을 구경하는 일은 참 재미있다. 한국에서 산책이 즐거운 이유 중 하나이다.

사람뿐 아니라 강아지를 위한 미용 기술은 어떤 나라도 우리나라를 따라올 수가 없는 거 같다. 어쩜 그리도 동그랗고 보송보송하게 예쁘게 털을 관리 해 주는지 미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강아지 옷 또한 너무 깜찍하고 귀여워서, 지난 3년간  망고 옷을 내 옷 사는 듯한 기쁨으로 꽤나 사들였다. 미국에 살던 7~8년 동안을 서너 벌로 지냈는데,  지금은 몇 벌인 지 셀 수가 없다.


완쪽:한국2019 오른쪽 위,아래: 미국 2016,2017

강아지를 위한 먹거리 산업 또한 눈부시게 발전되어 사람이 먹어도 될 수준급의 사료 및 간식을 온라인으로 쉽게 구매할 수 다. 강아지 음식에도 '테린( 고기나 생선, 야채를 다져 틀에 넣고 익힌 후 차게 식힌 음식 , 네이버 사전)'이 있다는 걸 한국에 와서 알게 되었다.  

반려견 숫자가 증가한 만큼 반려견 관련 산업의 발전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멍방구> 네이버 스토어, 강아지삼색테린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산책로나  길거리에서 쓰레기통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종량제 봉투 시행 후에 길거리 쓰레기통을 없앴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더라도 공원 안에는 두세 군데 정도 쓰레기통이 있으면 좋겠다.  쓰레기통이 주위에 있다면,  강아지 용변 후, 치우지 않던 사람들도  더 잘 치우게 되지 않을까.

미국의 주택가  놀이터와 근린공원에 배변봉투와 쓰레기통이  곳곳에 구비되어 있던 걸 생각하면 좀 아쉬운 맘이 든다. 그래도 간혹 남아 있는 곳이 있어서, 어쩌다 쓰레기통을 발견하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반가워하고, 그 위치를 외워두곤 한다.


망고와 걷다 보면  망고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서로 강아지 얘기를 한참 나누고 헤어진다. 얼마나 살 맛 나는 산책길 인지 모른다. 또한 옛날에는 몰랐던 우리나라 공원의 아름다움에 반해, 다음번엔 내가 아끼는 '월드컵 공원' 예찬론을 써보고 싶을 정도다.


행복한 산책길. 2021.11


역시 한국에 돌아오길 잘한 거 같다.

미세먼지는 여전히 반갑지 않고, 때때로 모터사이클 소리에 깜짝 놀라고, 망고는 다른  강아지들에게 예민하게 굴지만, 우리 더 이상 외롭지 않고, 활기찬 도시의 거리에 익숙해졌고, 아기자기한 공원을 산책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 들어있. 한국에서 만난 많은 길들은 망고와 내가 매일 서로를 위로하고, 망고는 킁킁 냄새를 나는 바람의 느낌을 각자 즐길 수 있는 우리의 놀이터이자 안식처이다.

 산책의 계절이니 만큼, 요즘 망고와 나는 이 가을의 정취에 취해 거리의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다.


'망고야, 

우리 오늘은 어떤 길에서 놀아볼까?'


저 작은 흰 개는
무슨 기운이 넘쳐서
무얼 그리 즐기려고
진흙길에서
웅덩이마다 뛰어들까


<완벽한 날들>의  "개 이야기" 중에서.  

메리 올리버

2013. 마음산책




이전 02화 엄마, 가지 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