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혼자 지켜가는 것은 외롭다. 외로우면 괜히 약해져서 흔들리는 순간도 생기고 실수도 하게 된다.
가치관이나 취향의 차이 중에서도 특히 경제관이 다르면 부부간에도 크게 갈등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친구나 지인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제관이 상극인 친구끼리 아무리 중간 접점을 찾아서 만나려해도 결국 자주 보지는 않게 되더라.소비를 줄인 친구 쪽에서는 이렇게 만나는 게 신이 덜 나고, 소비를 늘린 친구 쪽에서는 그게 여전히 낭비이니 서로 불편함을 느끼는 거다.
파이어 운동을 할 때에도 생각이 비슷한 이들과 만나야 편하고 서로 힘이 되어줄 수 있다. 파이어족 연대가 필요한 이유다.
절약의 가치를 이해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 파이어 운동을 위한 여러 팁을 공유하고 토론도 하면서 성장에 도움이 될 사람들, 경제적 자유를 빨리 이루어 안정감을 갖는 게 당장의 소비 플렉스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 동조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과의 연대를 가진 파이어족과 혼자 고독하게 소신을 지켜가는 파이어족 간에는 자신감, 만족감, 파이어 운동 효과까지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나에겐 학원 강사로 일하는 중에 만나서 지금껏 십년 이상 절친으로 지내는 파이어족 동료가 둘 있다.
당시에는 다들 파이어족이란 용어는 몰랐지만 생각과 생활은 영락없이 파이어족이었다. 나이 들어 감 떨어지기 전에 바짝 일하고 모아서 조기 은퇴하는 걸 당연한 수순으로 생각했다. 퇴직금도 없고 정년도 없는 게 학원강사 일이다 보니 경제적 자유에 대한 열망이 컸던 거다.
각자 학원은 달랐지만 바쁜 와중에도 한 달에 한두 번 이상은 만나면서 이런 얘기를 많이 나눴다. 일에 도움이 되는 팁도 나누고 부동산이나 펀드에 대한 정보도 주고받았다. 누가 지나치게 비싼 차를 살지 말지 고민할 때는 현실적인 조언들을 하며 신중히 생각해 보게 이끌기도 하고, 전세냐 자가냐로 고민할 때도 누적된 부동산 투자 경험을 바탕으로 도움을 줬다.
다들 비슷하게 자수성가 중인 흙수저 출신이었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긴커녕 내 기분도 좋아지는 화통한 성격들이다. 그래서 서로 진심으로 돕고 힘이 되는 사이가 될 수 있었다.
물론 경제 얘기, 자산 얘기만 나누는 건 아니다. 잘생긴 남자 배우 얘기나 다이어트 얘기 등 다양한 화두를 즐기고 같이 여행도 다닌다. 보통의 친구들과 하는 이런 점 외에 파이어족다운 얘기도 충분히 나눌 수 있다는 게 덤으로 좋은 일이었다.
각자의 일터에서는 우리랑 꽤 다른 성향의 사람들도 많이 접했다. 허영기 있고 물질 자랑 삼매경인 사람들, 자기는 노력을 덜 하면서 남 돈 버는 걸 배 아파하는 사람들, 내 성과에 지분도 없으면서 툭하면 한턱내라며 빌붙기 좋아하는 사람들... 그냥 형식적으로 인사는 하고 지냈지만 깊이 있게 알고 싶지 않은 이들이 직장에는 더 많았다.
이런 안 맞는 사람들을 억지로 보다가 성격 맞고 생각 비슷한 파이어족 친구들을 만나 대화하면 답답함이 확 풀리는 기분, 이상한 세계에서 말 되는 진짜 세계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생 사이다 지인, 서로의 에너지를 채워주는 사이, 이런 파이어족 연대가 있다면 파이어 라이프에 큰 시너지가 되어 줄 것이다.
제주도와 캐나다 소도시에 살면서 가까운 지인으로 남긴 이들도 성향이 비슷하다. 경제력은 다 달랐지만 허례허식 싫어하고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 쓰레기 덜 만들고 건강하게 먹고사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이런 공통점이 있기에 만나고 가까워지기 쉬웠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성격과 방향성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친구로 남게 되는 것 같다. 그런 관계에서 얻게 되는 응원의 힘, 자기 확신의 힘도 참 크다.
가까운 이들 중에 절약이나 파이어 운동에 관심이 있는 친구가 없다고 해서 이런 멋진 관계 만들기를 포기하기는 이르다. 요즘은 소셜 미디어가 발달해서 비슷한 주제로 사람들 모이기가 참 쉬운 세상이니까.
파이어 운동을 하는 카페나 모임을 찾아볼 수도 있고, 다 별로다 싶으면 본인이 직접 만들 수도 있지 않은가. 친구들 모임에서도 파이어를 화두로 얘기를 나눠 보고 이에 관심이 있는 몇몇 친구들과 따로 더 교류하며 지낼 수도 있다.
십 대 때는 친구 집단을 내 의지대로 선택하는 게 쉽지 않고 속한 집단에서 배제되지 않으려고 기를 쓰기도 했다. 절약 얘기는커녕 있는 척 쿨한 척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자기 소신에 맞춰 친구를 가려 만나기가 좀 더 쉽다. 같은 학교 같은 반이라는 고정된 집단에서만 친구를 만나는 게 아니니까. 이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말이 더 잘 통하는 사람들, 취향이 맞는 사람들, 경제관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새롭게 지인이 되고 연대를 만들 수 있다.
억지로 맘에도 안 든 인간관계 속에서 버티는 것은 회사에서나 쓰는 '먹고살기 스킬'이지, 용감하게 은퇴하고 자유롭게 살려는 파이어족의 일상에서는 필요 없다. 그런 스킬은 뻥- 차 버리자.
서른, 마흔 등 나이가 들수록 상대를 판단할 줄 아는 시각도 깊어지기 때문에, 살면서 인간관계가 재정비되는 것은 냉정한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돈이 될 친구, 호구 친구를 만나겠다는 것도 아니고, 파이어 생각이나 합리적 소비관을 가진 이들과 편하게 소통하며 연대를 만들겠다는 것이니, 이런 식의 친구 거르기는 당연한 데다 건전하기까지 하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과 연대하며 힘을 주고 받으면 자기 확신, 자기 긍정 마인드도 올라간다 (픽사베이 무료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