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겪고 아무것도 없는 데서 경제개발 해서 선진국 타이틀까지 거머쥔 나라, 요즘은 K-문화의 저력까지 세계에 전파 중이다. 이 역동적인 한국의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면을 왜 모르겠는가. 말했듯이 나는 한국빠였다.
지구상에는 한국보다 잘난 나라보다 한국보다 못난 나라가 10배는 많다. 기아와 내전으로 고생하는 불안정한 나라, 자유를 뺏긴 채 사는 독재 폐쇄 국가, 여성인권 더 밥 말아 먹은 가부장적인 종교 국가, 사회 기반 시설 부족해 불편한 저개발국이나 개발도상 국가 등등.
그런데 이 좋은 한국을 뜨는 사람들도 다 이유가 있다.
미친 교육 현실, 미친 직장 문화가 싫어 떠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요즘은 나처럼 미세먼지를 피하느라 뜨기도 한다.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합리한 세금을 피하려는 부자도 항상 있어 왔다.
한국보다 나은 인권을 찾아 떠나는 이들도 있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사람 대우받고 살게 하고 싶어서 뜨고, 한국에선 이해받기 힘든 성소수자가 박해를 피해서 뜬다.
나는 미세먼지 문제로 환경 이민을 온 거지만, 오고 나서는 여성의 권리가 한국보다 높다는 데에서 삶의 질이 꽤나 높아진 경험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가끔 급진적 페미니스트
취급(대우?)도받던 내가 캐나다에서는 그냥 다들 가진 상식 가진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이 차이가 얼마나 큰 줄은 아는가? 삶이 좀 더 후레쉬~해진 느낌, 소중하다.
이민 직후 나는 캐나다 여자들은 좀 거친 반면 캐나다 남자들은 수다스럽고 귀엽다고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남녀가 그저 비슷한 지위로 서로 대하는 것일 뿐인데 한국물이 덜 빠진 상태라서 저렇게 착각한 것이다.
여자들이 한국처럼 과도하게 친절하고 애교부리지 않는 걸 두고 거칠다고 착각했고, 남자들이 한국처럼 무뚝뚝하지 않고 재잘거리는 게 어색했던 거다. 다행히 지금은 이런 모습이 당연하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내 목소리도 좀 더 자연스러워졌다. 전보다 저음이고 과장되게 사근거리려 들지 않는다. 캐나다에선 늘상 화장하는 여자들도 거의 없어서 나도 맨 언굴로 편히 지낸다. 한국에서 연애하던 정성의 반만 쏟는데도 한국에서와 달리 감개무량해 하는 이의 칭송을 받는다.
살이 찌든 마르든 입고 싶은 대로 입는 자유로움에 물들어 나도 용기 내 짧은 옷도 입고 다닌다. 그래봤자 아직은 더운 날 반바지 입는 정도지만 한국 살 때보다 삼보 전진쯤은 된다. 한국에서는 L사이즈의 통통한 체격인 걸 부끄러워 감추기 바빴으니까. 같은 몸인데도 북미 옷 기준으론 무려 S사이즈다. 허허허.
어린이, 여성, 노인, 장애인, 반려동물
등 한국에서 소외되거나 덜 존중받는 이들이 캐나다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행복하게 살아간다. 이들을 지원하는 제도도 잘 갖추었고 사람들의 인식 수준도 상대적으로 높다.
꼭 캐나다만이 아니더라도 이런 조건을 갖춘 선진국들은 꽤 있다. 특히 북유럽 쪽에. 충분한 이민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고리타분하게 이민자를 매국노급 취급하는 올드한 시선은 거둘 때가 됐다.
국민을 나라 밖으로 못 나가게 가두는 독재 국가, 해외 정보를 막아 국민 눈을 닫는 폐쇄 국가는 못난 국가다.
한국은 그런 나라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 체제의 옆 나라를 우리도 무진장 욕하며 살고 있기도 하고.
지구상에 한국보다 뒤처지는 국가들이 있듯, 한국도 어떤 면에서는 다른 선진국에 뒤처지는 나라일 수 있다. 현실을 쿨하게 받아들이면 더 많은 기회가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