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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Mar 25. 2023

어제와 다른 오늘을 느끼는 방법

라디오 가가 라디오 구구

유행은 돌고 돈다더니 시티팝이 유행이다. 김현철과 빛과 소금이 다시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에 등장했다. 취향은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유튜브 알고리즘이 만들어주는 건지 참 헷갈리는 요즘이다. 아무튼 장마철 하수구로 흘러들어 가는 급물살마냥 아침마다 지옥철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출근길 직장인들의 발걸음같이 느릿한 박자 위에 야근하는 가엾은 영혼들이 만들어낸 야경 불빛처럼 어딘지 번쩍번쩍한 효과음으로 뒤덮여있는 선율은 오래된 고향처럼 익숙한 느낌이 든다. 어디선가 아이유의 목소리가 들리네, 싶었는데 수민이 피처링한 뮤지의 생각 생각 생각이라는 곡이었다. 뮤지, 뮤지? 안영미와 뮤지의 두시의 데이트의 그 뮤지? 익숙한 이름이 나오자 마치 언젠가 한번 얼굴을 마주한 적이 있는 사람처럼 반가운 기분을 느꼈다. 



 






라디오를 처음으로 제대로 들었던 것은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였다. 모든 것이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순서대로 돌아가던 빵가게의 아침 루틴 중에는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지루하지 않게 하면서 동시에 고소한 빵냄새에 붙잡혀 들어온 손님들이 돈을 쓰고 싶어 하도록 음악을 트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usb에 들어 있는 mp3 파일들을 재생하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라디오를 트는 거였다. 처음에는 usb에 든 음악을 틀었지만 두어 달 동안 매일 아침 같은 시각에 같은 노래를 들으며 같은 빵이 구워져 나오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나의 어느 부분이 굳어져가고 망가져가는 기분이 들어서 그만두기로 했다. 프랑스어로 '매일매일'을 의미하는 빵집에서 이름값을 하듯 매일매일 분단위로 정확히 같은 장면을 반복 재생하듯이 되풀이하는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은 정말이지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크로크무슈가 나올 때는 제이슨 므라즈의 i won't give up을 들어야 한다. 퍼렐 윌리엄스의 happy가 나온다면 제빵 작업은 마무리되고 오븐들이 가동 중단되며 케이크 아이싱을 한다. 여름이라면 이때 비로소 에어컨을 틀 수 있다. 비스트의 이 밤 너의 곁으로가 나올 때 즈음이면 오후 일과가 시작되며 퇴근 준비를 하면 된다. 음악이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건 좋았는데 계속 이대로 살다간 내가 이 빵가게의 일부가 될 것 같은 공포에 서서히 잠식되던 차였다.






라디오로 노선을 변경했을 때 그다지 탐탁지는 않았다. 반복되는 음악들에 질려 어쩔 수 없었지만 광고가 너무 많이 나와서 좀 거슬렸다. 아임닭의 닭고기와 이불하면 누비지오와 시력에 좋은 영진 구론산바몬드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등. 그 시절엔 MBC MF4U에서 전현무가 굿모닝FM을 진행할 때였다. 광고는 프로그램 사이에도 삽입되고 무디(전현무디제이)의 입을 통해서도 흘러나왔다. 무디는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생방을 진행하면서 청취자들의 아침을 열었다. 규디(장성규디제이)가 진행하는 지금의 굿모닝FM은 프로그램 구성이 조금 다른 것 같긴 한데 당시에는 7시에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가장 먼저 무디가 청취자들에게 모닝콜을 걸어줬다. 우리 아들 오늘 중요한 수행평가 있다고 학교 일찍 가서 연습한다고 하는데 저는 일이 있어서 새벽같이 나왔어요. 아들 지각 안 하고 얼른 일어나게 무디가 전화좀 걸어주세요. 뭐 이런 사연을 보내면 무디는 학생에게 친히 전화를 걸어서 잠을 깨워주고 아침 먹고 가라고 맥모닝 선물세트까지 보내주는 식이었다. 엄마의 노파심이 무색하게 진작에 일어나서 학교 가는 길이라고 대답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진짜로 무디의 전화를 받고 이제 막 일어나 부스스한 머리를 긁으며 대답하는 졸린 목소리들을 듣는 것도 꽤 재미난 일이었다. 아, 나도 이제 막 일어나서 이불 안에 들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뭐 이런 부러움도 느끼면서 빗자루로 매장 바닥을 쓸었다.






빵집 오픈 시간에 맞춰 아침 7시에 하루 일과를 시작했던 나는 라디오와 함께 하루를 여는 일상에 서서히 익숙해져갔다. 뭐가 됐든 신나는 두둥탁 음악과 함께 디제이는 무언가 시작해보자고 외치니까. 중간 중간 크게 호불호 갈리지 않는 음악들도 넣어 주는 것은 덤. (거의)아침 첫방송이라 그런가, 청취자들의 잠을 깨워주고 간식 준다 해외여행 보내준다 하면서 퀴즈도 많이 내고 바쁘디 바쁜 현대인들이 신문기사 챙겨 읽을 시간 아끼게 해 준다고 시사 이슈도 하나씩 짚어줬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디가 쾌활한 목소리로 이렇게나 이른 시간에 하루를 열어주는 게 참 반갑고 고맙게 느껴졌다. 아침잠 많은 내가 마음속으로 욕을욕을 지껄이며 가게로 들어와 불을 켜고 밤새 가게 안에 갇혀 꼬릿해져버린 전날의 빵냄새를 활짝 내보내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쭉 들이켤 때 찌푸려진 미간을 펼 수 있게 해 준 것은 라디오를 통해 전해지는 어떤 에너지였다. 무겁기만 한 아침이 꼭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고, 비록 말뿐일 수도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기분 좋게 시작해 볼 수도 있지 않니?라고 말을 걸어주는 것 같았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는 '안녕?'이라는 인사가 익숙하지만 외국에서는 다들 '좋은 아침'이라는 뉘앙스로 하루를 열지 않나. '좋은 아침'이라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두 단어는 한 문장 안에 공존할 수가 있는가? 아침이라고 하는 관념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들이 부정적이고 힘들고 불쾌하고 몽롱한데 그런 아침이 좋을 수가 있는 것인가? 그런데 매일은 아니어도 여러 아침 중 하루 정도는, 혹은 어느 아침의 어느 한순간 정도는 기분 좋게 피식거릴 수는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그때의 아침은 그렇게 기분 좋게 흘러갔는데 요즈음의 아침은 어땠나 싶다. 최근 우연한 기회로 라디오를 다시 듣게 되었다.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는데 최근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유튜브 플레이리스트가 나를 위해 추천하는 내가 좋아할법한 음악을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재생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중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읽거나 쓸 때는 가사가 없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노래하는 음악을 주로 듣고 그냥 생각을 해야 할 때는 가사가 들어간 음악도 허용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선호하는 플레이리스트가 생기게 마련이고 그 영상을 반복 재생한다. 하루 중 몇 번이라도, 몇 날 며칠이라도. 그러다 보면 예측 가능함에 기반한 안정성이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어딘지 갇혀버린 기분이 든다. 세상에 오직 내 방과 음악과 나만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 곡 반복 중인 음악은 끝나도 끝난 게 아닌 것처럼 나는 내가 선택한 플레이리스트와 내가 선택한 공간과 내가 하기로 한 일과 안에 갇힌 채 세상과 전혀 상호작용하지 않으며 하루가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하루라는 것을 시각화할 수 있다면 강포에 온몸이 싸인 아기와도 같을 것이다. 이미 그 자체로 온전히 포근하고 안정적인 세상. 그러나 투입과 산출이 없기에 어떤 변화도, 생동감도 느껴지지 않는 그런 세상. 그 갇힌 세상 안에서 살아있음을 생생히 느끼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시시각각 움직이는 시계 초침과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파오는 허리께와 창 밖으로 저물어가는 햇빛의 색깔이 하얀색에서 노란색으로, 그리고 붉은색과 남파란색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자세히 관찰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라디오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해 준다. 굳이 창밖을 유심히 관찰하지 않더라도 지나가는 시간을 생생히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디제이는 수요일이면 수요일이어서 힘들다고, 금요일이면 금요일이어서 좋다고 말해준다. 나를 둘러싼 세상에 무슨 요일이든 상관없이 같은 노래만을 반복하는 플레이리스트와는 사뭇 다른 생동감이 느껴진다. 금요일에는 괜히 들뜬 마음이 완연히 드러나는 입꼬리 간수 잘 하라며 오후 네 시 전까지는 함부로 웃지도 말라는 신디(김신영디제이)의 너스레에 결국 입꼬리 간수 실패하고 웃어버리는 일도 참 좋다. 매일 다른 이야기를 하는 디제이들이 전해주는 소식이 반갑다. 반복재생 플레이리스트는 내가 오늘 어떤 기분이든 간밤에 어떤 고민을 하며 잠 못 이뤘든 무심하게 똑같은 소리만을 되풀이할 뿐이었으니까. 귀만 반짝 열어두고 있으면 방 안에 갇혀 있는 내가 잠시라도 세상과 연결되는 기분이 든다. 길었던 겨울이 끝나며 따뜻해진 햇빛은 짧아지기까지 해서 더는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까지 불쑥 들이치지 않는다. 꽃이 필수록 더 깊은 곳으로 침잠하는 마음에까지 손을 내미는 것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신나는 라디오인 것 같다. 방심하여 고립되기 쉬운 계절에 이렇게 세상과 한 뼘 더 연결되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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