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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혼 Nov 14. 2023

소리 내어 우는 어른



 2015년 겨울, 오전 10시 35분. 나는 남부터미널역 6번 출구 앞에 주저앉았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돌아봐도 아랑곳 않고 출입구 한 귀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소리 없이 울었다. 서울로 상경해 입사한 첫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한 날이었다. 영하의 날씨에 하얗게 터버린 손등이 눈물로 축축하게 젖었다가 한기와 함께 버석하게 마르길 반복했다.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일까? 엉망진창인 내 모습이 이렇게 한심했던 날은 또 없을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운이 좋지 않았다. 가위 바위 보를 하면 항상 지고, 뽑기를 하면 당연한 듯 꽝이 나왔다. 언니처럼 예쁘고 싹싹하지 못했고, 동생보다 똑똑한 머리를 갖지 못한 이유로 집에서도 늘 뒷전인 자식. 거기에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과 습관처럼 달고 살던 불안증은 스스로를 비관의 늪에 잡아두기에 충분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혹여나 미움 받지 않을까 눈치만 보던 나는 하던 일을 그르치기 일쑤였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어른들이 말했다.


  “애가 어떻게 제대로 하는 게 없니.”


 그 말이 듣기 무서워 결국 시도조차 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그러면 어른들은 그 행위에 ‘끈기 부족’이라는 코멘트를 달았고, 내 생활기록부는 ‘부족’이나 ‘결핍’등의 단어로 채워져 갔다.      

 

 “어른들 말씀 잘 들어야 착한 아이야.”

  “엄마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어.”     


 나는 어른들이 하는 이런 유의 조언을 맹신했기 때문에 그에 따라 스스로를 끈기 없는 아이라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그러나 만화는 늘 예외였다. 나처럼 끈기 없는 애가 어떻게 만화를 꾸준히 좋아할 수 있었을까? 의문은 확신으로 변했고, 오사카 니시우메다의 벽화 앞에서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취직하기로 마음먹었다.     




 상경 당시의 계획은 원대했다. 내가 뜬금없이 만화가가 되겠다고 선포한들 하루빨리 자립하길 바라는 부모님 입장에서 이를 지원해줄 생각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서울에 취직자리를 알아보고 상경한 후 직접 일해서 번 돈으로 만화학원을 등록하자! 그리고 만화가로 데뷔하면 일을 그만두고 전업으로 삼으면 돼. 당장 데뷔하지 못해도 일, 이년 정도 일하면 경력이 쌓일 테니 좋은 회사로 이직도 가능하겠지.

 그러나 상경 첫날부터 내가 세운 계획은 터무니없는 것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중소기업의 신입사원 연봉은 그다지 높지 않았고, 세금을 떼면 이마저도 꽤 아담해졌다. 그 돈으로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쓰면 만화학원은커녕 한 달에 영화 한번 보러갈 여유도 없는 금액이 남게 되었다. 이 말은 즉, 한 달 벌어 한 달 겨우 먹고 사는 처지가 되었다는 걸 뜻했다. 게다가 근거도 수당도 없는 야근과 주말 출근, 회사 대표가 떠드는 “너 같은 애는 나정도 되니까 써주는 거야.” 따위의 가스라이팅은 정신을 점점 피폐하게 만들어갔다. 


 결국 2년 이상 다니겠다고 다짐했던 회사에 4개월 만에 사직서를 제출한 나는 챙길 것도 없는 짐을 가지고 한겨울에 거리로 나섰다. 시간은 오전 10시 35분. 10시 출근하는 회사에서 내 사직서가 얼마나 속전속결로 처리되었는지 짐작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사직서를 받아든 대표가 무던할 얼굴로 건네던 “그래, 잘 가.”라는 말이 까슬한 가시덩굴이 목에 걸린 것처럼 목울대를 따끔하게 찔러댔다. 


 후련할 줄 알았는데. 나는 내 생각보다 열심히 일했었나보다. 

 당장 먹고살아야 할 걱정보다 미련이 크게 남았다. 대표님이 조금만 인정해 줬더라면, 많지는 않아도 터무니없는 월급을 주지 않았더라면, 매섭게 내려다보며 내가 돈 주고 직원을 샀으니 너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고. 그렇게 겁박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거라고. 아쉬움에 몸부림치는 목울대가 크게 오르내렸다. 물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 어른이 된다는 건 소리 내어 우는 법을 잊어버리는 게 아닐까? 소리 내어 우는 법은 잊어버리는 것일까, 잃어버리는 것일까? 아무렴 상관없었다. 그때의 내겐 아무것도 상관없었다. 그저 소리 내어 울 줄 아는 어른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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