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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si May 18. 2016

광주

여전히 기억하는 자들의 입가엔 피가 흐른다

 상병이 되기 전, 부산영화제를 찾았다가 우연히 ‘그날에 훌라송'이라는 전시회를 봤다. 광주에 대한 기억들과 그로 파생된 새로운 기록물. 특히나 내게 인상적인 전시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할머니들이었다. 모두 소복을 입고, 하염없이 카메라를 바라보는,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어머니들의 눈에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한이 서려 있었다. 남편과 아들이 죽은 자리에서 소복을 차려입고 카메라를 응시하시는 할머니들.

할머니들은 씻김굿이라 했다. 단순히 촬영을 하는 행위를 넘어, 그 자리에서 망자를 위로하고 본인의 한을 지워내려는 방법으로 생각한다 했다. 작가의 시선이 폭력적이라 느껴졌지만, 할머니들의 말에 내 생각은 의미를 찾지 못했다. 카메라를 넘어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을 어찌 잊을까. 죽은 자의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 나는 죄인이었다. 알지 못함과 기억하지 못함 대한 죄. 그날 이후 나는 5.18을 마음에 새겼다. '광주'가 더 이상 지나치는 단어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제 시간을 내서 광주에 다녀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이 생겨서 광주에 다녀왔다. 걱정. 건방져 보이진 않을까. 주제넘게 그들의 일에 관여하는 것은 아닐까. 그저 관찰자의 시선으로 조용히 이방인이 되어야겠다고 되뇌며 광주로 향했다. 5.18 기념비와 망월동 그리고 금남로. 사진으로만 보았던 그들의 자리에 그 어머니들처럼 자리에 서 보았다. 묘역에 가서 유가족의 자리에도 서보고 그 상황을 묘사해 놓은 전시관도 다녀왔다. 아주, 아주 작지만, 그들이 되어보려했다. 어찌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런 죽음들 앞에 살아가야 하는 남은 자들의 생은 어떻게 보아도 대단한 것이었다. 계속해서 기억하려는 사람들과 기억에 수반되는 그 날의 고통스러움. 이를 꽉 물고 살아온 이들이 그곳에 있었다.

'꽉 다문 이 덕에 광주는 말이 없겠지, 어쩌면 승화되었겠지. 더는 흐를 눈물과 말들 모두 사라졌겠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울었고, 노래했다. 꽹과리를 울리며 모두 금남로를 걸었다. 그날의 외침과 기억.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소복을 입은 어머니들이 걸어오셨다. 주저앉아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는 사진과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왼 가슴 편에는 추모라는 검은 리본이 달렸었는데, '추'라는 글자가 가려져 죽은 분의 어머니 '모'라는 줄 알고 나도 주저앉아 탄식을 뱉었다. 살아남은 어머니들은 계속 걸어오셨고 광주는 이를 꽉 물고 기억해냈다. 36년이 지났어도 어머니들과 그날의 광주는 금남로를 걸으며 기억하고 있다. 여전히 꽉 다문 입가엔 피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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