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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si Sep 05. 2017

목련에 대하여

아버지에 대하여

 태원이가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거냐고 물었지, 그 때만 해도 나는 그 슬픈 감정들이 몰아치는 것이 싫어서 그렇지 않을 거라 대답했어. 물론 '모르지' 라고 대답했지만, 그 대답은 '그렇지 않을 거야'라는 대답이었어. 하지만 어느새 1년이 지나고 나는 당신 이야기를 하고 있네. 당신과 수없이 대면하던 군 복무 시절, 그 외롭던 겨울날을 기억해. 늘 나는 아버지 당신을 봤고 그걸 넘어서서 나를 봤어. 내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이 당신을 상기시켰고 나는 그 단어들을 내뱉을 때마다 당신을 기억했어. 사랑, 별, 시, 노래, 고요, 노을 모든 단어들은 항상 아버지가 사랑하던 것들이었으니까. 편지를 쓰고 그 감정을 기억하면 '아, 아빠가 나한테 이 감정으로 인해 편지를 썼겠구나'라고 생각했고 '별이 밝다'라고 말을 뱉으면 당신이 그때 뱉은 구절이 생각나서 '아, 아빠도 그때 이 마음으로 그 말을 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나는 별을 좋아하는 것을 깨닫고 편지를 쓰는 것을 좋아하고 노을과 고요, 사랑, 시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어. 아버지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본성이 그런 것인지. 사실, 중요하지 않아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나를 찾았다는 거야. 아버지를 통해 나를 발견했어. 당신과의 대면으로 인해 정확히 나는 성장했고 나를 찾았어.
 4년이 지났네, 시간에 따라 무뎌지는 삶이 통탄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냐. 순간순간 찾아오는 습한 기억들은 나를 매몰차게 바닥으로 집어 던져, 여전히 그래. 물론, 횟수와 깊이는 익숙해진 것에 반비례하지만 난 여전히 아버지를 생각하고 당신을 떠올리는 삶을 살고 있어. 내가 앞으로 계속해서 해나가야할 이야기도 당신의 이야기임을 알기에 나는 정면으로 맞이 하려 해. 때문에 군대에서 봤던 목련으로 당신을 그렸어. 꽃을 닮은 청년처럼 아름다웠지만 처참하게 갈변하여 죽었지. 그 비극적인 죽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당신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멋진 목소리를 가졌는데 말이야. 착한 사람이 죽는 것만큼 비극이 없지. 그 비극에 대면하는 것은 늘 고통스러웠어.
 

 아빠, 나와 태원이가 그 대화를 나눌 때, 짧게 멈춰버린 대화 속에서 나는 우리가 참 불쌍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했어. 그 짧은 침묵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설명했거든. 우리는 비극을 살고 있다. 이게 다였지. 하지만 그래도 살아가기 위해 시원한 씻김 굿을 펼쳐보려 해. 당신의 청년의 때가 나의 청년의 때가 되었고 당신이 결혼하던 27살의 5월이 나에겐 당신의 영화를 찍는 27살의 5월이 되었어. 아버지를 개인으로 인정하려해. 당신을 아버지의 위치에 놓지 않고 나와 같이 치기 어린 청년의 때를 지나온 한 개인으로 인정해. 그래야 태원이와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어. (아버지를 한 개인으로의 인정하는 것이 곧 용서와 자기연민에서 벗어난 삶으로 이어질거야) 잘 찍어낼게. 좋은 사람들과 응원들이 많아. 내가 맞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인들과 증거야. 당신이 있었다면 참으로 기뻐했겠지. 얼마나 힘이 되는 말을 많이 해줬을까 사랑하는 목소리로 말야. 꼭 잘해내고 올게. 목련에 대하여. 그리고 당신에 대하여. 사랑해. 오늘도 힘줘. 참, 배우는 태원이야!

2015년 5월 2일 영화를 찍기 전 날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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