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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si Sep 21. 2018

괜찮은 삶

너라는 나무

가끔씩 깊어지는 인간관계에 나는 때때로 놀란다. 마음을 쓴다는 것은 시간을 써서 양을 채우는 방식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아주 적은 시간을 나누더라도 그 관계는 이상하리만큼 깊어지곤 한다. 15년이나 떨어져 뉴욕에서 다시 마주쳤던 지훈이와도 그렇고, 최근 암장에서 마주치는 현진, 우주 커플도, 기획전을 준비해준 지연도, 아버지가 죽었을 때 가장 서럽게 울어주던 용운과도 그렇다. 블로그를 자주 들락거려 낯간지러운 이름들도 있지만,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마음과 마음이 닿는 관계들이 있다. 어떤 관계는 모종 삽같지만, 어떤 관계는 포크레인으로 한 번에 파내어 깊어지는 그런 사이. 그건 시간과 상관없이 아주 사소하고 작은 마음들이 어떠한 형태의 뉘앙스로 표현되면 가능해진다. 친한 친구가 그랬던가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귀신같이 알아차릴 수 있어'라고 (사실, 누군지 알지만 비밀로).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 작은 표현들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난 나이에 맞게 늘어난 능청으로 그 표현을 물끄러미 받아 본다. 유일하게 나이가 들어 좋은 것 중 하나. 능청! 그렇게 이상하고 작고 진실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서로가 알아차리면, 우리는 아주 깊게 깊게 뿌리를 내린 나무가 되어 서로의 공간에 들어간다. 각각 자라나는 방향과 속도는 달라도 가끔씩 깊게 생각나는 사람들.
 나는 오늘 '참 괜찮은 삶을 살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이유는 전부 나무들 덕분이다. 나이가 들며, 더 크고 좋은 숲이 된다면 더 괜찮은 삶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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