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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si Jul 27. 2019

여름이 싫다

잠 못 드는 밤

비가 너무 많이 온다. 밤은 너무 길고, 더위에 뒤척이는 날들이 잦다. 움직이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라는 삶의 큰 전제는 나를 언제나 압박하지만, 이런 밤이면 낮에 나를 추동하던 것들이 전부 무슨 소용인가 싶다.

 3년 전 여름에 읽었던 최승자의 시를 다시 읽으며, 너무 멀리 왔다 생각했다. 난 너무 자랐고, 더 이상 쉽게 울지도 않는다. 소년에 가깝던 마음들을 털어내고, 이제는 진심이 아니었던 당신의 마음들을 역겨워한다. 이젠 어른이 되어 쉽게 알아차리고, 당신들의 얄팍한 문장들은 더럽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보면 좋은 것 하나와 나쁜 것 여러 개다.

 오늘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친구와 통화를 했고, 그랬던 때를 기억하며 내가 위로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나도 너처럼 울고, 통화를 하다가도 몇 번의 침묵을 기다린 적이 있다. 이것도 좋은 것 하나에 포함되는 것 같다. 나는 그럴만한 자격이 된 사람처럼 느꼈다.

 너는 그 풍경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때의 나처럼 고개를 몇 번이나 저으며 아름다운 풍경과 슬픔이 하나 되는 순간을 막으려 했을까. 나는 그 순간들이 너무나 두려워 그렇게 하면 기억이 멀리 날아가는 것도 잘 몰랐는데, 만약 너도 그렇다면 다음엔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야겠다. 지금의 나는 생각이 나지 않는 그 순간들이 훨씬 더 두려우니까.

 태원이는 절절한 단어들을 담아 내게 미안하다고 했고, 나는 그 문장을 보자마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너무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여름이 싫어졌다. 장마 혹은 열대야. 잠 못 드는 순간들이 계속해서 과거를 들추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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