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si Apr 08. 2019

내 사랑 호두

네 덕에 내가 여기 있어

 이사를 가면 아빠가 나을 것 같다는 순수한 믿음으로 이사 간 집은 너무나 컸다. 아빠는 곧 죽고, 엄마는 인천으로 갔고, 태원이는 학교를 다니기 위해 춘천으로, 나는 입대를 했다. 할머니는 그 큰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다. 말할 사람도 없고 하루 종일 드라마만 보다 잠들기를 몇 년째. 전역을 해서도 나는 학교를 다니느라 늦게 집에 들어왔고, 태원이도 공익 생활로 집에 있는 시간이 짧았다. 그렇게 아침 일찍 나가고 밤에 들어오던 게 일상인 어느 날. 후각이 뛰어난 태원이는 큰일이 났다며 문이 열리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급하게 뛰쳐나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자욱한 연기. 할머니가 찌개를 끓이다가 잠이 든 것이었다. 쉽사리 빠지지 않는 탄 냄새. 나는 한 겨울 전부 열어놓은 창문에 오들오들 떨며 생각했다. 강아지가 필요하다고.
 호두는 그렇게 왔다. 필요에 의해 강아지를 데려오게 되는 것에 부채감을 느낀 우리는 파양 된 아이를 택하기로 했고, 재수를 하게 되어 더 이상 강아지를 기르지 못한다는 대전의 한 학생에게 책임비 오만 원을 건네고 호두를 아니, 그때는 생강이었으니, 이제 막 100일이 지났다는 생강이를 데려왔다. 대전에서 올라오는 내내 낑낑거리는 자식. 나는 열차 사이 내려가는 계단에 앉아 한참 생강이를 달랬다 하도 울어 눈가에는 검은 자욱이 그득한 생강. 그렇게 생강이는 우리 집에 왔다.


 생강이는 스피치와 웰시코기의 믹스 종이 었다. 스피치를 닮아 다리는 길고 웰시코기를 닮아 털이 얼마나 곱고 예쁜지 생강이라는 이름도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새로운 집에 왔으니, 새로운 마음으로 이름을 지어주자고 했다. 우리는 할머니의 성경책 바로 옆에 있는 호두를 가리키며 호두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그때는 생각지도 못했다. 대한민국에 갈색 강아지는 대부분이 호두라는 사실을...
 강아지는 싫다던 할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호두를 사랑하게 됐고, 우리도 호두를 사랑했다. 호두의 애칭은 호동이었는데, 이름을 종종 까먹는 할머니로 인한 별명이었다. 종종 호두라 부를 때는 '생강이가 더 귀엽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너무 작고, 사랑이 많고, 발랄한 호두. 호두는 우리 할머니를 건강하게 만들어줬다. 잃어가던 할머니의 총기는 살아났고 호두는 그 큰 집에 잘 어울리는 아이로 커갔다.
 나는 힘이 들 때 종종 호두를 끌어안고 울었다. 호두와 산책을 하다가도 울고, 할머니가 잠든 새벽에는 호두를 끌어안고 울었다. 호두는 스펀지 같이 내 슬픔을 가져가곤 했다. 호두는 내 모든 습기를 가져가 잡아먹었다. 나는 또 그런 호두를 보고 울었다. 미안해서. 사랑이 많고 발랄한 호두가 우리의 슬픔을 먹고 자라 눈도 처지는 것 같고, 움직임도 느려지는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고맙고 슬펐다.


 용인 집을 정리하고 할머니는 작은 고모가 있는 송도로 갔고, 나는 혼자 서울로, 엄마는 인천에서 부산으로 가기로 했다. 태원이도 엄마를 돕겠다며 부산으로 내려갔다. 호두의 선택권은 딱히 있진 않았다. 고모는 강아지를 싫어했고, 내 집은 작았으니까. 호두도 엄마와 태원이를 따라 부산으로 갔다.
 엄마는 강아지를 참 싫어했는데, 호두를 보면 화를 낼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느 누가 호두의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 있겠는가! 일단 잘생겨버린 외모로 엄마를 교란시키더니, 얼마 되지 않아 엄마와 한 이불을 쓰는 사이까지 되었다. 엄마는 수 없이 호두에게 호통을 쳤다지만, 그게 쉽사리 먹힐리는 없었다. 결국 호두는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문제는 엄마는 부산에서 새 식당을 준비하고 있었을 때였다. 식당 사람들은 호두가 아무리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워도 개 털이 날리는 걸 싫어했다. 태원이도 엄마를 돕겠다고 함께 가게에 나와있었기 때문에 호두는 또다시 방에 혼자가 됐다. 늘 혼자 있는 호두. 우리는 호두에게 모두 미안한 마음뿐이다.
 호두는 방에서 우리를 기다렸다. 그러다 엄마가 울며 집에 들어오면, 가만히 옆에 앉아 살을 비비며 엄마의 마음에 닿았을 거고, 태원이가 울면 이불속으로 파고들어 태원이의 마음을 안아줬을 거다. 나는 호두랑 같은 이불 안에서 숨 쉬고 있는 것이 좋았다. 호두는 내 콧바람을 싫어했지만, 나는 호두를 꼭 끌어안고 이불을 덮는 것을 좋아했다. 때때로 호두는 내 다리 사이로 들어가 여우처럼 잠을 자기도 했는데, 나는 그 순간도 좋았다. 그렇게 호두는 외롭게 2년을 지냈다. 늦게 들어오는 엄마와 태원이를 기다리며, 외로운 부산 생활을 했다.

 현재 호두는 부산에 있는 태원이의 연기학원 원장님께 가 있다. 태원이가 학교에 합격하게 되어 서울로 올라와야 하자, 상황을 파악하신 원장 선생님께서 호두를 기르시겠다고 먼저 이야기하신 것이다. 오랫동안 강아지를 키우시다가 무지개다리를 보낸 이후로 쉽사리 다른 강아지를 키울 마음을 먹지 못했는데, 태원이가 때때로 데려간 호두에 원장님이 마음을 여신 것이다. 엄마는 매일 같이 가게에 있느라 호두를 돌보지 못하니, 그게 더 나은 선택 같다며 말했고, 우리도 호두를 원장님에게 보내기로 했다.
 태원이가 수시 시험을 치며, 몇 번 원장님께 호두를 맡긴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고급 강아지 옷을 사 입히고, 강아지 온천을 다녀왔다는 말에 원장님 내외가 호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때때로 찍어 보내주신 호두의 사진만 봐도 그 마음을 알기에 우리는 호두를 보냈다.

 오늘 호두의 사진을 태원이를 통해 원장님께 받았다. 닭다리 같은 호두, 늠름한 호두. 그중 왜 저렇게 다리를 모으고 있는 사진이 마음이 쓰이는지 모르겠다. 우는 것 같기도 하고, 기지개를 켜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쓰이는 이유는 내가 지금껏 보지 못한 모습이어서 인 것 같다. 내가 모르는 호두의 모습. 나는 저런 자세를 본 적이 없는데, 뭘 하는 걸까 호두는.

 완전히 헤어진 것도 아니고, 부산에 가면 종종 원장님을 찾아가 볼 거지만, 그냥 이쯤 해서 호두에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 것 같았다. 너 때문에 나의 20대 후반을 지나올 수 있었어 호두야. 너를 안고 잠이 들 때면 너는 나를 다 아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참 좋았어. 고마워. 너무 고마워. 평생, 죽어도, 모든 생 이후의 순간에도 기억할게. 닭다리 호두 사랑해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