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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si Mar 25. 2024

너는 없는 사람이었는데

Shot on iphone

*아이폰으로 찍고 보정한 사진들을 올립니다.


'대학생이야?'

'아뇨, 졸업했어요.'


 창문을 열어 놓은 탓에 목청을 올려야만 했다. 아저씨는 주저리주저리 사는 이야기를 했고 나는 조수석에 앉아 적당한 호응을 하며 가까워지는 서울 표지판을 보고 있었다. 나는 20년 동안 살던 동네를 떠나 이사를 가는 중이었다.

 내 짐은 고작 1톤 트럭도 채우질 못했다. 그나마 침대와 책상 하나 그리고 동네에서 타고 다니던 혼다 커브가 전부였다. 4평 남짓한 원룸에 들어갈 수 있는 게 딱 그 정도였기 때문에 나머지는 불필요했다.


 초중고 20년 동안 살던 동네에서 벗어나는 건 자의라기보다 타의에 가까웠다. 내 뿌리가 송두리 채 뽑히는 느낌이랄까. 나는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절망을 느꼈다. '왜 이제야 서울로 가는 걸까?' 대학시절 내내 5시간이 넘는 통학을 하면서도 돈 때문에 서울에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이건 좀 억울했다.


 그날, 꾸역꾸역 그 좁은 원룸을 살던 내 방 구조와 비슷하게 만들어 보려했던 건 어떻게든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정리가 덜 된 원룸에 누워 그 동네를 생각하자니, 마치 쫓겨난 사람 같아서 트라우마를 느꼈다. 그날 밤, 나는 밤새 졸업을 앞둔 학교를 걸었다. 그나마 그 공간이 익숙해서 마음이 놓였다.


살던 아파트의 놀이터

 너를 만나고 1년이 조금 넘었을 때, 서울에 살던 너의 가족은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졌다며 이사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살던 동네 어때?' '뭐, 살기 좋아'. 딱히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정말 살기 좋냐고 묻는 너의 뉘앙스에 난 그 동네의 고즈넉함을 떠올렸다. 고요하고 평온한 나의 유년이 묻은 동네의 풍경. 그 동네는 정말 살기 좋았다. 까치가 많고, 멀리 퍼진 소리가 쉽게 돌아오지 않는 동네.


 몇 달 후, 너의 가족은 정말 내가 살던 동네로 이사를 갔다. 심지어 내가 살던 아파트로 이사를 갈 줄이야 그곳은 여전히 내 친구들이 살고 있는 집인데 말이다. 위치가 바뀐 너와 나. 나는 너를 데려다주며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네가 왜 여기 있을까? 여긴 내 유년과 학창 시절 묻은 동네인데 말이야.‘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너는 내 동네에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파트 뒤편 초등학교에서 친구들과 싸울 때도, 중학교 친구들과 아파트 옥상에서 몰래 술을 마실 때도, 수능을 앞두고 정신 나간 애들처럼 놀이터에서 경찰과 도둑을 할 때도. 너는 없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동네에서 죽었고, 아빠도 같은 해 같은 동네에서 장례를 치렀다. 그때도 너는 없는 사람이었다.


 너와 같이 그 동네를 걸으며 나는 자주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때마다 감상에 젖어 너에게 '여긴 내가 어떻고, 저긴 내가 그랬던 곳이야'라고 설명했던 이유는 '그때 네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생각해서였다. 내 유년에, 내 학창 시절에 네가 조금 더 일찍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서. 저기서 나는 울고 있었는데, 저기서 나는 슬퍼했는데, 네가 있었으면 나는 이 동네를 떠나지 않아도 됐을 것 같아서.


 우리집이었던 너의 집 앞에서 너를 기다리며 내가 뛰어 놀던 놀이터를 찍었다.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 감정들이지만 마치 저 사진에 내가 뛰어놀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제는 없던 너의 어린 시절도 함께 보인다. 같이 뛰노는 너와 나. 그게 고맙다

 

* 찍어 놓은 사진들로 종종 글을 쓰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더 많은 사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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