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by 조훈희

"저어... 죄송합니다만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오늘도 내 주변 사람들이 왠지 미안한 말투로 어수룩한 인사를 하면, 어수룩한 어둠이 찾아온다. 밤 9시가 넘으면 빌딩의 중앙냉난방이 꺼지고, 사무실의 저편부터 자동으로 천장의 형광등이 꺼지는 순간 고요해진다. 핸드폰으로 불을 켜고 형광등 스위치를 찾아서 내 자리만 불을 켜는 순간 본격적인 야근이 시작된다.


한 번은 새벽까지 일하다가 출근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회의실에서 박스를 깔고 잠을 잔 적이 있다. 조금 자더라도 편하게 자기 위해서 구두랑 안경을 가지런히 벗어두고, 정장 윗도리를 덮고, 에이포 용지 두 권을 베개 삼아 자고 있었다. 한참을 자던 중 한기를 느끼고 눈을 떴다. 이미 날은 밝아 있었는데 내 눈앞에는 웬 종아리들이 있었다. 내가 잠을 자고 있었던 회의실은 신입사원 면접 대기실이었던 것이다.


“아, 망했다.”

난 급하게 안경을 쓰고, 정장은 제대로 입지도 못한 채 화들짝 일어났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바닥에 깔고 잔 박스를 챙겨서 뛰쳐나왔다. 면접을 보러 온 신입사원들이 보게 된 내 모습은 영락없이 그들의 미래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날의 야근은 작게는 신입사원들에게 누를 끼쳤고, 크게는 회사를 포함한 전 인류에 큰 누를 끼쳤다.

야근에는 회식도 포함된다. 특히 술도 잘 못하는데 술자리에서 비위를 맞추는 것조차 잘 못하는 나에게는 난이도가 높은 야근이다. 하루는 회식 자리에서 본부장님께서 파란 글씨로 Cass가 쓰여진 투명한 맥주잔에 투명하고 맑은 소주를 ‘콸콸콸’ 부으며 사악한 웃음을 짓고 크게 외쳤다.


“자! 기분 좋게 내 오른쪽부터! 파도!”

본부장님 오른쪽에 앉아계신 팀장님께서는 밝게 웃으시며

“전무님은 역시 시원시원하시다.”라고 화답하고 원샷을 하셨다. 다음 사람도 그다음 사람도 웃으면서 원샷을 했지만 예상대로 그 아름다운 파도타기는 내가 무너뜨려버렸다.


“아 진짜 조대리 분위기 깨지게 뭐하는 짓이야.”

내 옆의 차장님은 파도타기가 끊어진 아쉬움을 담은 자세히 보아야 보일 듯한 짧은 욕을 담은 입모양을 보여주시고는 내 술까지 마시고 계셨다. 난 계속되는 파도타기 2차 대전, 3차 대전에서 참패한 전범이 되었다. 그리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깨끗하지도 않은 술집 공중 화장실에서 무릎을 꿇고 내가 먹은 안주를 변기 속에서 직접 다시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의 야근은 작게는 내 건강과 정신에 누를 끼쳤고, 크게는 술집 화장실을 포함한 지구환경에 큰 누를 끼쳤다.

‘오늘은 빨리 끝내고 집에 가야지’라고 출근하면서부터 다짐하면서 왔다. 그러나 오늘도 역시 내일 출근 시간이 몇 시간 남지 않았는데 업무는 아직 남아있고, 퇴근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이럴 때 행복을 찾는 방법은 참혹했던 위의 두 과거를 떠올리며 '그래 지금이 그때 상황보다는 낫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야만 그나마 지금이 행복하다.


시인 윤동주는 말했다.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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