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들 내가 다 키웠어.
"내 친구 놈이 어디회사 대표야. 내가 전화만 한통 하면 끝나"
도저히 안 풀리는 문제를 들고 실장님을 찾아뵙자 실장님께서는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그 친구 놈이 내 고등학교 동창인데, 그놈 사실 다 내가 뒤에서 도와줘서 잘 된 거야"
실장님께서는 계속 자신의 친구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그러나 내가 여쭤본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도 답변해 주시지 않으셨다. 실장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그 친구 놈과 골프장에서 같이 찍은 사진과 그 분의 명함까지 보여주실 때쯤 난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실장님께서 그렇게 유명하신분과 이렇게 친하신 줄 몰랐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혹시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제 생각엔 실장님께서 그 친구 분께 말씀해주시면 금방 해결될 것 같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신나게 핸드폰을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시던 실장님께서 갑자기 헛기침을 한번 하셨다. 그리고 표정을 바꾸시더니 정색하고 말씀하셨다.
"당신 직장생활 몇 년차야?
그렇게 뭐든지 쉽게만 해결하려고 해서 어떻게 과장 됐어?
내가 그 친구 놈한테 말하는 순간 위에서 찍어 누르는 행동이라는거 몰라?
그런식으로 일하면 당신 같은 담당자는 당장은 일하기 쉬어도 앞으로는 그 회사랑 일하기 힘들어져!"
지금도 상당히 힘들어서 실장님께 부탁드리러 갔는데 실장님께서는 본인 친구 자랑만 신나게 하셨다. 결국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해 주시지 않으신 채 내 직장생활에 대한 질타를 해주셨다. 게다가 본인이 도와주면 내가 더 힘들어진다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 해결책인가?
"나는 일을 하는 위치가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일하는지 감독하는 위치야. 그동안 그렇게 다른 사람한테 떠넘기면서 안일하게 일했다면 실망이 크네"
실장님의 말씀이 끝나자 때마침 실장님의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신나게 울렸다. 실장님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안경너머로 휴대폰 액정화면을 보시더니 오른쪽 검지 손가락으로 주욱 밀어내서 전화를 받으셨다. 그리고 무척이나 중요한 전화라는 눈빛을 보여주시며, 왼손으로 저리 멀리 나가라 듯이 손을 아래 위로 흔드셨다.
신입사원 시절에 한적한 지방으로 출장을 갔다가 그 동네 개한테 물린 적이 있었다. 보통 동네 개들은 덩치가 큰 나를 보면 이빨을 내보이며 으르렁 거리면서 사납게 짖었고, 내가 다가서기 전까지는 으레 가까이 오지도 않았다. 그럴 땐 발로 바닥을 쿵 치며 "워이!" 라고 외치면 대부분의 개들은 뒷걸음질을 치면서 조용히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날 지방에서 날 물었던 개는 으르렁 거리지도 사납게 짖지도 않았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다가갔을 때 가만히 집에 있다가 뛰쳐나오더니 갑자기 내 다리를 물었다. 다행히 오른쪽 바지 끝자락을 물렸기에 망정이지 자칫 다리까지 물렸으면 광견병 주사를 맞을 뻔했다.
보통 개가 시끄럽게 짖는 이유는 상대방이 두려워서다. 목소리를 크게 해서 상대방보다 강하게 보이려는 것과 주위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크게 외치는 것과 같다. 마치 싸움을 잘 못하는 친구들이 싸우기 직전 교실이 다 울릴만한 큰소리로
"야! 진짜 말리지 말라고!" 라고 외치면서 말리는 누군가에게 안정적으로 잡혀있는 것과 비슷하다. 진짜 사람을 무는 개나 싸움의 고수는 예고편 없이 바로 하이라이트로 가격한다.
회사에서도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옛날 자랑을 많이 하고, 가식적이며 거만하다. 그리고 그 사람 주위에는 유명하고 실력 있는 친구 놈이 많은 경우가 많다.
"내가 옛날에는 말이야"
"내 친구 놈이 말이야"
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은 대화가 지속 될수록 신입사원 시절에 출장 가서 개한테 물렸던 바지 끝이 아픈 것 같다.
그렇게 친구 끝에 "놈"자까지 붙여가며 친하다던 실장님의 유명한 친구 분들은 난 직접 뵌 적도 없는데 하도 많이 들어서 나 역시 그 친구분 들과 친해진 느낌이다. 이렇게 직접 볼 수 없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귀동냥으로 많이 알게 된 순간 나도 모르게 신입사원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옛날에 그 친구 놈이랑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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