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선가시 발라 드릴게요

그리고 수박씨 발라 드립니다.

by 조훈희

"OO씨, 화장이 너무 진한 것 아니야?"


신입사원이 입사한 지 한 달 정도 넘었을 즈음 회식자리에서 팀장님은 고기를 집으며 말씀하셨다. 그리고서는 자신이 떠먹던 숟가락으로 가운데 있던 된장찌개를 두세 바퀴 휙휙 젓고는 찌개를 떠먹고는 말을 이었다.


"웃음소리도 너무 큰 것 같아. 신입이라 아직 잘 모르는 건 알겠는데, 사무실에서 그렇게 크게 웃으면 안 돼"


젊은 여성이었던 신입사원의 얼굴은 점차 굳어졌고 팀장님은 그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말했다. 이번에는 상추를 들어서 고기를 올리고는 쌈장을 찍고 야채와 마늘을 얹었다. 그리고서는 아무렇지 않게 쩍 입을 벌렸다. 그 입 안에는 아직 씹다만 음식물이 무척이나 젖어 있었다. 우적우적 쌈을 씹으면서 다시 한번 신입사원을 빤히 바라보시고는 말씀하셨다.

"목에 까만 점은 뭐야? 수박씨야"

그 누구도 그 싸한 분위기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신입사원도 말없이 바닥만 보고 있었다. 이 분위기를 어떻게든 깨야 되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용기 있게 도전하지 못했다. 잠시 후 신입사원은 후식으로 나와 있던 테이블 위의 수박을 집어 들더니 젓가락으로 여기저기를 찔렀다.


"00씨 수박 아깝게 그냥 먹지 뭐 하는 거야?"

팀장님이 묻자 신입사원은 조용히 대답했다.

"팀장님 드릴 수박씨 발라요. 씨 발라 드려야 팀장님이 편하게 드시죠."


그 순간 눈치 있는 나는 눈치 없게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가 재빨리 기침인 척 하면서 소리를 감추고 물티슈로 입을 틀어막았다. 팀장님은 수박씨의 의미를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씨가 발라진 수박을 받더니 아무렇지 않게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신입사원은 말을 이어갔다.

"아쉽게도 제 목에 수박씨는 안 발라지네요."


나는 결국 그 둘의 결말을 보지 못하고, 그 회사에서 이직을 했다.


새로운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났고, 생선구이 집에서 회식을 하던 중 새로운 회사의 팀장님께서 나를 흘겨보더니 한 말씀하셨다.

"이사님 드실 생선가시 안 바르고 뭐하냐?"

"네? 제가요?"

아니 손을 못쓰는 병약한 노인분들도 아니고, 젓가락질 못하는 아기도 아닌데 왜 내가 남이 먹을 생선 가시까지 발라야 되는지 어리둥절했다.


"야 박 차장 어떻게 된 거냐?"

"죄송합니다. 야 조 대리 생선가시 바를 줄 모르냐? 이렇게 반 갈라서 꼬리를 잡으면 뼈랑 가시가 한 번에 주르륵 빠져"


생선 가시가 깔끔하게 발라지던 그 상황에서 예전 회사에서 수박 씨 발라 드리던 신입사원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고, 난 그 자리에서 머리 숙여 나의 무지함에 사죄드렸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제가 꼭 생선가시 발라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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