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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제작자, 그리고 농도의 비밀

by 김경훈

숲의 심장부에는 사계절 내내 기묘한 꽃들이 피어나는 '기억의 정원'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세상의 모든 향기를 추출해 병에 담는 조향사 '이안'이 살고 있었죠. 이안은 최근 깊은 슬픔과 분노에 빠져 있었습니다. 동료의 성공에 대한 시기심과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뒤섞여, 그가 만드는 향수마다 지독하고 고약한 악취가 섞여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건 오물 냄새야! 내 마음이 썩어버려서 향기조차 타락해버린 거라고!"


이안이 절망하며 유리병을 내던지려 할 때, 정원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있던 탱고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탱고는 젖은 코를 씰룩이며 공기 중에 흩어진 분자의 흐름을 읽어내고 있었습니다.


"이안, 그 병을 깨뜨리지 마세요. 그 안에는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장미의 심장이 들어있으니까요."


이안은 헛웃음을 지으며 탱고를 바라보았습니다. "장미라고? 이건 코를 찌르는 방귀 냄새나 다름없어, 탱고. 내 안의 추악한 감정들이 이 향수를 망쳐놓았단 말이야."


탱고는 천천히 일어나 이안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앞발로 이안의 실험대 위에 놓인 '인돌'과 '스카톨'이라는 이름이 적힌 작은 병들을 가리켰습니다.


"인간들은 참 흥미로워요. 후각은 오감 중 가장 예민해서 순식간에 마음을 바꾸어 놓으면서도, 정작 그 본질은 자주 잊어버리거든요. 이안, 당신이 지금 고약하다고 밀어내는 그 성분이 사실은 장미 향기를 완성하는 핵심이라는 걸 알고 있나요?"


이안이 멈칫하자, 탱고가 낮은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방귀의 지독한 냄새를 만드는 '인돌'과 '스카톨'은 농도가 아주 낮아지면 세상에서 가장 감미로운 꽃향기로 변신합니다. 지독한 악취와 황홀한 향기는 전혀 다른 물질이 아니에요. 오직 '농도'의 차이일 뿐이죠."


탱고는 이안의 눈을 빤히 응시하며 꼬리를 천천히 흔들었습니다.


"당신을 괴롭히는 시기, 질투, 분노 같은 감정들도 마찬가지예요. 그것들이 마음의 전부를 차지할 만큼 농도가 짙어지면 영혼을 갉아먹는 악취가 되지만, 적당한 선에서 현명하게 정제한다면 그것은 당신을 다시 일으세우는 투지가 되고, 성취를 향한 강력한 동기부여가 됩니다. 세상에 처음부터 나쁜 것은 없어요. 그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독이 되기도, 향기가 되기도 하는 법이죠."


이안은 탱고의 말대로 지독한 냄새가 나던 원액에 맑은 증류수를 아주 천천히, 조금씩 섞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방 안을 가득 채웠던 고약한 냄새가 서서히 걷히며, 새벽이슬을 머금은 싱그러운 장미 정원의 향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보세요, 이안. 당신의 분노는 열정이 되었고, 당신의 시기심은 더 나은 향기를 향한 용기가 되었네요. 이제야 농도가 딱 알맞아졌어요."


탱고는 만족스러운 듯 다시 정원의 햇살 아래 자리를 잡고 누웠습니다. 가장 향기로운 것과 가장 고약한 것이 한 끗 차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안의 얼굴에는 비로소 편안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숲의 바람은 이제 악취가 아닌, 삶의 모든 감정이 적절히 버무려진 깊고 풍부한 향기를 싣고 멀리 퍼져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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