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자욱한 산자락 끝,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낡은 찻집 '여백'이 있었습니다. 그곳의 주인인 노승은 세상의 시끄러운 고민을 짊어지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말없이 차를 대접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언제나 거대한 몸집의 리트리버, 탱고가 가만히 엎드려 사람들의 깊은 한숨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잘 차려입은 젊은 사업가 '준'이 헐떡이며 찻집 문을 열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먹구름이 낀 듯 어두웠고, 입술은 무언가 할 말이 가득 찬 듯 달싹거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제 마음이 좁은 골목길에 갇힌 자동차들 같습니다. 새로 시작한 사업은 잘될지, 지금 결혼을 하는 게 맞는지, 나중에 아이는 또 어떻게 키워야 할지... 머릿속이 온통 근심과 걱정으로 꽉 막혀 꼼짝도 할 수가 없습니다."
준은 자리에 앉자마자 봇물 터지듯 고민을 쏟아냈습니다. 노승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저 준의 앞에 빈 찻잔을 놓았습니다. 준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습니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이 뒤섞여 좁은 찻집 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그때,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던 탱고가 천천히 일어나 준의 무릎에 턱을 괴었습니다. 탱고의 깊은 눈동자가 준을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준, 당신의 마음속 도로는 지금 지독한 교통체증에 걸려 있군요. 너무 많은 차가 한꺼번에 지나가려 하니, 인생을 앞으로 나아가게 해줄 최소한의 여유조차 주차장이 되어버렸어요."
준이 놀라 말을 멈추자, 노승은 그제야 찻주전자를 들어 준의 잔에 차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쪼르르 소리를 내며 찻잔에 황금빛 액체가 차올랐습니다. 하지만 노승은 잔이 가득 찼음에도 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찻물이 잔을 넘어 찻잔 받침을 적시고, 이내 나무 탁자 위로 흥건히 흘러넘쳤습니다.
"선생님! 차가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멈추셔야 해요!"
준이 당황해 소리치자, 탱고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덧붙였습니다.
"준, 지금 이 넘치는 찻물이 바로 당신의 고민이에요. 당신이라는 잔은 이미 너무나 많은 걱정으로 꽉 차 있어서, 어떤 좋은 지혜를 담으려 해도 들어갈 틈이 없답니다. 좁은 길에 차를 가득 세워두고 어떻게 속도를 낼 수 있겠어요?"
노승은 조용히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준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탱고는 준의 손등을 핥으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인생을 다시 움직이게 하려면, 먼저 그 잔을 비워야 해요. 걱정이라는 차들을 길가로 잠시 치워두고 여백을 만드세요. 지혜는 그 비어 있는 틈 사이로 비로소 스며드는 법이니까요. 마음의 잔을 비우고 여유를 되찾았을 때, 그때 다시 이 산길을 올라오세요."
준은 흘러넘친 찻물에 젖은 자신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쉼 없이 떠들던 입을 다물자, 비로소 산새 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탱고는 다시 노승의 발치에 몸을 웅크렸습니다.
준은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속에 꽉 막혀 있던 차들을 하나둘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비워낸 만큼 시원한 산바람이 그의 마음속 좁은 길을 통과해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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