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귀는 1.8배속으로 쏟아지는 논문들의 수다로 가득하다.
시각장애인 연구자인 나에게 ‘정리’란 생존 그 자체다.
그런데 오늘 읽은 생물학 데이터는 꽤나 살벌하다.
우리 몸속에서는 매일 수억 개의 세포가 ‘조직을 위해 제때 죽어주는’ 아름다운(?) 자살극을 벌이고 있단다.
이름하여 아폽토시스($Apoptosis$).
이건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시스템 최적화를 위한 눈물겨운 대규모 데이터 삭제 작업이다.
https://www.instagram.com/p/DXB2nB9k2HB/?igsh=c3l1amVpN3Q3aGJ0
대구의 자취방 연구실, 창가에서 스며드는 오후의 눅눅한 햇살이 내 얼굴을 간지럽힌다.
공기 중에는 갓 내린 케냐 AA 원두의 쌉싸름한 향기와, 내 발치에서 낮잠을 자는 탱고가 내뱉는 구수한 숨결이 섞여 흐른다.
내 손은 점자 디스플레이 위를 바쁘게 스치고 있고, 화면 낭독기는 무미건조한 기계음으로 세포의 자살 방식을 읊어댄다.
책상 위에는 정강이를 수차례 공격했던 낡은 지팡이가 비스듬히 기대어 있고, 그 옆에는 '삭제되지 못한' 서류 뭉치들이 위태롭게 쌓여 있는, 완벽한 설계와 게으른 현실이 충돌하는 정오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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