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야식과 거울 앞의 스토아학파

by 김경훈

대구 반월당 뒷골목에 자리 잡은 철학관 보살 윤의 점집은 언제나 값싼 향 냄새와 오래된 종이의 퀴퀴한 냄새로 무거웠다. 낡은 벽걸이 시계의 초침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유독 날카롭게 고막을 찌르는 밤 열한 시 삼십 분이었다. 윤은 낡은 교자상 앞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고 있었다. 철학자의 묵직하고 고결한 문장들이 시신경을 타고 들어왔지만, 윤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오직 하나, 위장에서 들려오는 짐승 같은 꼬르륵 소리였다.


윤의 초능력은 이 엉뚱하고 자비 없는 하향 평준화 시대에서도 유독 식욕을 조롱하는 잔인한 능력이었다. 그녀는 거울을 보면 자신의 웅장한 미래나 재물운 따위는 전혀 보지 못했다. 그저 다음 날 아침 자신이 무엇을 씹어 삼키고 있을지, 그 처절하고 정확한 아침 식사 메뉴만을 홀로그램처럼 선명하게 예지할 뿐이었다. 대단한 예언가 행세를 하며 손님들의 사주팔자를 봐주고 있었지만, 정작 그녀의 신기는 내일 아침의 밥상머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심한 수준이었다.


오늘도 혹독한 다이어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이었다. 윤은 벌써 일주일째 퍽퍽한 닭가슴살과 흙맛이 나는 샐러리만 씹어 삼키며 견디고 있었다. 수분이 빠져나가 퍼석해진 입술을 혀로 축이며, 그녀는 맞은편에서 컵라면을 후루룩거리고 있는 보조 아르바이트생 민을 서늘하게 노려보았다.


"민아, 야심한 밤에 밀가루와 나트륨의 끔찍한 혼합물을 혈관에 들이붓는 행위는 육체의 타락이자 영혼의 패배다.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육체의 욕망에 굴복하는 자는 자유를 잃는다고 했다."


윤이 애써 근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라면 국물을 들이켜던 민이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보살님, 철학 책 읽으면서 침이나 닦으시죠. 어차피 보살님 초능력으로 내일 아침 메뉴 보면 오늘 밤에 야식 시켜 먹을지 안 먹을지 다 견적 나오는 거 아닙니까. 그냥 시원하게 거울 한 번 보시고 마요네즈 듬뿍 뿌린 라볶이나 하나 시키시죠."


민의 도발에 윤의 미간이 파르르 떨렸다.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다. 거울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만약 지금 거울을 보았는데 내일 아침 메뉴로 차가운 닭가슴살 샐러드가 보인다면, 그것은 오늘 밤 무사히 야식의 유혹을 넘겼다는 승리의 예언이다. 하지만 만약, 아주 만약에 거울 속의 자신이 퉁퉁 부은 얼굴로 남은 배달 음식을 주워 먹고 있다면, 그것은 오늘 밤 반드시 야식을 시키고야 만다는 끔찍하고도 달콤한 운명의 선고인 것이다.


윤은 애써 고개를 저으며 명상록의 페이지를 꽉 움켜쥐었다. 종이가 구겨지는 바스락 소리가 났다.


"시끄럽다. 운명은 개척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 밤 철학자의 인내심으로 이 지독한 식욕을 끊어낼 것이다. 퇴근이나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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