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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어크라우트에서 크라우트록까지

by 김경훈

지난번에는 ‘자우어크라우트’라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간과 미생물이 양배추를 전혀 다른 존재로 바꾸는 시큼한 연금술에 관한 것이었다.

오늘은 그 이름의 기묘한 쌍둥이 ‘크라우트록(Krautrock)’이라는 음악에 대한 탐험기이다.

‘Kraut’는 본래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들을 얕잡아 부르던 속어였다.

음식과 음악, 이 두 개의 ‘크라우트’는 모두 발효와 변형의 과정을 거쳐, 경멸적 호명 속에 담긴 역사를 새로운 맛과 소리로 바꾸어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며칠 전 연구에 집중할 배경음악으로 크라우트록의 대표주자인 밴드 ‘노이!(Neu!)’의 곡을 틀었다.

단순하고 기계적인 드럼 비트가 시종일관 반복되는 이른바 ‘모토릭(Motorik)’ 리듬이었다.

처음에는 그 끝없는 반복이 오히려 집중력을 높여주는 듯했다.

타자 소리가 드럼 비트와 섞여 안정적인 리듬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10분이 넘도록 조금도 변하지 않는 그 비트는 어느새 의식의 배경에서 전면으로 나와 뇌를 직접 통제하기 시작했다.


나중에서야 깨달은 풍경은 한 편의 희극이었다.

손가락은 정확히 그 기계적인 리듬에 맞춰 자판 위에서 똑같은 단어만 반복해서 입력하고 있었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탱고의 꼬리마저 드럼 비트에 맞춰 일정한 속도로 바닥을 탁, 탁, 치고 있었다.

한 사람과 한 마리의 동물이 1970년대 독일의 한 밴드가 설계한 비트에 완전히 신체적 동기화(Somatic Synchronization)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그날의 연구는 한 줄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 우스꽝스러운 경험이야말로 크라우트록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960년대 후반 서독에서 발생한 이 음악적 흐름은 캔(Can),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탠저린 드림(Tangerine Dream) 같은 밴드들을 통해 전개되었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의 정신적 폐허 속에서, 나치의 유산과 영미권의 블루스 기반 록 음악을 모두 거부하고, 전자음과 즉흥연주, 미니멀리즘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독일의 소리를 만들고자 했다.

이는 영미 록 음악의 공식을 해체하려는 탈구축(Deconstruction)의 시도이자, 경멸적 단어를 스스로 내세운 문화적 재전유(Cultural Re-appropriation) 행위였다.


소리의 질감과 공간감에 더 의지하는 입장에서, 크라우트록은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 음악은 ‘보는 음악’이 아니라 철저히 ‘체감하는 음악’이다.

가사나 멜로디의 서사 대신, 반복되는 리듬과 전자음의 텍스처가 직접 신경계에 말을 건다.

그것은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몸으로 느끼게 하고, 감상하기보다 소리의 공간 속에 ‘잠기게’ 만든다.


자우어크라우트의 시큼한 첫맛처럼, 크라우트록의 기계적인 반복은 낯설고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단조로움의 문턱을 넘어서면, 한 시대의 고뇌와 새로운 정체성을 향한 열망이 어떻게 소리의 형태로 응축될 수 있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한 세대가 역사의 상처를 딛고 자신들만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만들었던, 가장 정직하고 집요한 구동음(驅動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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