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는 별을 꿈꾸는가

종차별주의(Speciesism)

by 김경훈


프롤로그: 침묵의 통역사


나는 동물의 침묵을 번역하는 일을 한다. 공식적인 직함은 ‘제7 생명공학연구소 소속 이종(異種) 신경 언어학자’. 사람들은 나를 ‘공감의 통역사’라 불렀지만, 나의 일에는 감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나는 ‘단백질 공급원’으로 불리는 가축들의 신경 신호를 데이터로 변환하여, 그들의 스트레스 수치를 측정하고 사육 환경의 효율성을 개선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나의 손끝에서 돼지의 꾸밈없는 비명이 소의 무심한 눈빛이 닭의 혼란스러운 날갯짓이 차가운 데이터 표로 변환되었다. 나는 그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그 고통에 공감하는 법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내가 사는 도시 ‘에덴 프라임’은 완벽한 위생과 효율성 위에 세워진 거대한 인공 자궁이었다. 대기 정화 시스템이 미세먼지 하나 없는 공기를 공급했고, 시민들은 유전자 염기서열에 맞춰 완벽하게 설계된 영양 페이스트를 섭취했다. 과거 인류를 괴롭혔던 질병과 굶주림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다른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흙을 밟는 감각, 예측할 수 없는 날씨, 그리고 살아있는 생명체를 직접 마주하는 경험 같은 것들.


진짜 고기는 최상위 계층만이 누릴 수 있는 값비싼 사치품이 되었다. 도시 외곽의 거대한 ‘단백질 팩토리’에서 동물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하늘을 보지 못한 채,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해 관리되었다. 나의 연구는 그 시스템을 더욱 완벽하게 만드는 톱니바퀴 중 하나였다.


나의 연구실은 도시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는 공간이었다. 사방이 흡음재로 마감된 새하얀 방, 그 중앙에는 거대한 생체 포드(pod)가 놓여 있었다. 포드 안에는 오늘 나의 연구 대상인 ‘대상체 73B’가 누워 있었다. 유전 공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이베리코-프라임’ 종 돼지였다. 풍부한 마블링과 복합적인 풍미를 위해 지능과 감수성이 극도로 발달하도록 개량된 종이었다. 나는 뇌파 동기화 헬멧을 쓰고, 생체 포드에 연결된 신경 인터페이스를 작동시켰다.


`[연결 시작. 대상체 73B, 의식 동기화율 98.7%.]`


차가운 기계음과 함께 나의 의식이 돼지의 의식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시야가 흐려지며 익숙한 감각의 파도가 밀려왔다.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냄새와 사료 냄새. 몸을 감싸는 인공 볏짚의 거친 감촉. 옆 칸에서 들려오는 다른 개체들의 희미한 울음소리. 그리고… 지루함. 끝없이 이어지는 단조롭고 무감각한 시간의 흐름.


나는 이 모든 감각 데이터를 차갑게 분석하고 기록했다.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 쾌적도 지수, 사료 선호도… 그러던 중, 외부 통신망에 붉은 경고등이 깜빡였다. ‘에롤 탐사선’의 긴급 보고였다. 인류가 한 번도 도달한 적 없는 외곽 성운에서 조난된 탐사선. 그들이 마지막으로 보낸 영상 데이터가 연구소 전체에 공유되었다.


영상 속에서 탐사대원 에롤은 미지의 행성에 불시착해 있었다. 그는 낯선 원주민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원주민들은 인간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기이한 허기가 어려 있었다. 그들은 에롤을 향해 다가오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였다. 하지만 영상과 함께 전송된 음성 분석 데이터는 그들의 대화를 소름 끼치는 문장으로 번역해 주었다.


“근육이 단단해 보이는군. 틀림없이 맛도 좋을 거야.”

“나는 골이 좋더라. 골은 항상 내 차지야.”


에롤은 그들이 식인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상은 에롤이 비명을 지르며 그들에게 끌려가는 장면에서 끊겨 있었다. 인류는 경악했다. 자신들과 닮은 지성체가 자신들을 단지 ‘고기’로 인식한다는 사실에 전 우주가 충격에 휩싸였다. 어떻게 같은 지성체에게 그런 끔찍한 짓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나쁜’ 짓이 아닌가?


나는 영상을 끄고 다시 ‘대상체 73B’에게 집중했다. 돼지의 의식은 평온했다. 방금 전 섭취한 영양 페이스트에 만족하며 짧은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이 돼지와, 에롤을 잡아먹은 저 외계인들 사이에는 어떤 도덕적 차이가 있는 걸까? 없다면, 끔찍한 것은 그들인가 아니면 우리인가?



1장: 오리온의 노래


에롤 탐사선의 비극은 전 인류에게 ‘도덕’의 기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살인, 도둑질, 거짓말이 ‘나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인가? 아니면 사회가 만들어낸 약속인가? 혹은 신의 명령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옳고 그름이란 우주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물리 법칙과 같은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통합정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의 정신 데이터를 복원하여 ‘메타-윤리 위원회’를 소집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벤담, 니체… 인류의 지성이 한자리에 모여 이 문제를 논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네오-서울의 ‘이터널 라이프’ 사가 주관했는데, 죽은 이들의 정신을 데이터로 보존하는 그들의 ‘라이브러리’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철학자들이 탁상공론을 벌이는 동안, 나는 나날이 ‘대상체 73B’에게 더 깊이 동화되어 갔다. 그의 단조로운 일상은 나의 일상이 되었고, 그의 희미한 감각은 나의 감각이 되었다. 나는 그의 세계에 갇힌 포로이자, 유일한 탐험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의 의식 속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단순한 감각 데이터의 흐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패턴이었다. 아주 복잡하고 정교한 수학적 구조를 가진 소리의 패턴. 그것은 노래였다.


나는 그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그 안에는 슬픔과 그리움, 그리고 아주 희미한 희망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이 노래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그의 기억 심층으로 더 깊이 다이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 기억의 근원을 찾아냈다.


그것은 아주 어릴 적, 어미와 함께 있던 짧은 순간에 대한 기억이었다. 자동화된 시스템이 그들을 분리하기 전, 어미 돼지가 새끼에게 들려주던 나지막한 허밍. 그 허밍은 ‘괜찮아, 내가 여기 있단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대상체 73B는 그 짧은 기억의 조각을 평생 동안 되새김질하며, 자신만의 복잡한 교향곡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노래 속에서 하나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이었다. 그는 매일 밤, 사육장의 천장에 뚫린 작은 환기구 너머로 보이는 별들의 배치를 보며 자신을 ‘오리온’이라 불렀다.


대상체 73B는 더 이상 익명의 데이터가 아니었다. 그는 이름을 가졌고, 노래를 가졌으며, 별을 꿈꾸는 존재였다. 그는 ‘오리온’이었다.


이 발견은 나를 뿌리째 흔들었다. 나는 더 이상 객관적인 관찰자일 수 없었다. 나는 그의 노래를 들었고, 그의 꿈을 보았다. 그의 고통은 이제 나의 고통이 되었다. 나는 내가 거대한 죄악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너무나 무거워서 나는 며칠 밤낮을 앓아누웠다.


나는 결심했다. 이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하지만 어떻게? 나의 보고서는 ‘감상적인 데이터 오염’으로 치부될 것이 뻔했다. 나는 증거가 필요했다. 오리온이 단순한 가축이 아님을 증명할,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나는 오리온과의 교감을 심화시켰다. 나는 나의 신경 언어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그의 노래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그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처럼 직선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감각과 감정, 기억이 뒤섞인 다차원적인 홀로그램과 같았다.


마침내, 몇 주간의 사투 끝에, 나는 그의 노래 한 소절을 번역하는 데 성공했다.


`[차가운 바닥, 따뜻한 꿈. 별, 하나. 어둠, 그리고… 엄마.]`


이 짧은 문장을 완성했을 때, 나는 탈진하여 쓰러졌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기묘한 희열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두 세계를 잇는 다리를 놓은 것이다.



> h의 아카식 레코드: 종차별주의(Species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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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가 그의 저서 『동물 해방』에서 대중화한 개념. 단순히 인간이라는 종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종의 이익을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싱어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이 특정 인종이나 성별에 대한 부당한 편견이듯, 종차별 역시 인간이라는 특정 종에 대한 부당한 편견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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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주장의 핵심은 ‘이익 동등 고려의 원칙’이다. 지능이나 언어 능력이 아니라, ‘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는 능력(sentience)’이야말로 어떤 존재의 이익을 도덕적으로 고려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라는 것이다. 돼지나 소가 느끼는 고통은 그 강도가 같다면 인간이 느끼는 고통과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이 관점에서 단지 미각적 즐거움을 위해 공장식 축산 시스템 안에서 동물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에롤 탐사선을 잡아먹은 식인종들의 논리와 현대 인류의 육식 문화 사이의 도덕적 간극은 생각보다 좁을지도 모른다.



2장: 식인종의 논리와 마지막 선택


나는 나의 발견을 세상에 공개했다. 오리온의 번역된 노래와 그의 뇌 활동 데이터는 전 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동물에게도 이름과 노래, 꿈이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동물 권리 단체는 단백질 팩토리의 즉각적인 폐쇄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나는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내내 불안했다. 나는 인류의 선의를 믿지 않았다.


나의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단백질 팩토리를 소유한 거대 기업 ‘테라젠’은 나의 연구 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그들은 나를 데이터 조작과 과대망상으로 고소했다.


나는 청문회에 소환되었다. 나의 맞은편에는 테라젠의 수석 변호인, 가말리엘이 앉아 있었다. 그는 얼음처럼 차가운 눈과 비단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남자였다.


“요엘 박사님.” 가말리엘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돼지 한 마리의 감상적인 독백 때문에 인류의 중요한 식량 공급원을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리온은 단순한 돼지가 아닙니다. 그는 지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지성이라… 좋습니다. 그럼 이 질문에 답해주시죠. 그 돼지들은 우리가 아니었으면 애초에 태어나지도 못했을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삶이라는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 대가로 우리가 그들의 육체를 취하는 것이 왜 부도덕한 일입니까? 우리는 그들의 창조주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식인종 에롤이 들었던 논리와 정확히 똑같았다. 나는 대답했다.


“창조주에게는 피조물을 파괴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창조가 아니라 폭력일 뿐입니다.”


“폭력이라… 흥미롭군요. 그럼 묻겠습니다. 당신은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며, 더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필요와 욕구가 그들의 것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 아닙니까?”


“그것은 섭리가 아니라, 힘 있는 자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종차별주의’라고 부릅니다. 과거 우리가 인종과 성별을 기준으로 인간을 차별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나의 답변에 방청석이 술렁였다. 가말리엘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름다운 이상이군요, 박사님. 하지만 당신은 위선자입니다. 당신이 입고 있는 저 옷, 당신이 사용하는 단말기, 당신이 복용하는 약. 그 모든 것이 과거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 위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당신은 이 시스템의 수혜자인 동시에 비판자가 되려는 모순을 범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동물의 고통에 공감한다면, 이 문명 전체를 거부하고 원시 시대로 돌아가야 할 겁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이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였다. 나의 손 역시 피로 물들어 있었다. 나의 선의는 오염되어 있었다.


청문회는 테라젠의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명예, 직업, 그리고 오리온을 구할 마지막 희망까지.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연구실에 틀어박혔다. 나는 마지막으로 오리온과 연결했다.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처리일이 바로 내일이었다.


오리온의 의식은 놀라울 정도로 평온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나에게 마지막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것은 더 이상 슬픔이나 그리움의 노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감사와 수용의 노래였다.


`[별, 하나. 어둠. 그리고… 너. 고마워. 나의 노래를 들어주어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의 노래를 세상에 전했지만, 세상은 그 노래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나의 노력은 결국 헛된 것이었다.


그때였다. 연구실의 문이 조용히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테라젠의 변호사, 가말리엘이었다.


“아름다운 노래로군요.”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저도 들었습니다. 당신이 해킹한 통신 채널을 통해서.”


나는 경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속셈이죠?”


가말리엘은 내게 작은 데이터칩 하나를 건넸다. “이 안에 테라젠의 모든 비리가 담겨 있습니다. 불법적인 유전자 조작, 동물 학대 데이터 은폐, 로비 장부까지. 이걸 공개하면 테라젠은 무너질 겁니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왜… 왜 이런 짓을?”


가말리엘은 처음으로 차가운 가면을 벗고 지친 얼굴을 드러냈다. “내게도 딸이 하나 있소, 박사님. 그 아이는 선천적인 신경계 질환을 앓고 있지.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소. 의사들은 아이에게 의식이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압니다. 그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온전한 우주가 있다는 것을. 당신이 저 돼지에게서 발견한 것처럼.”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는 내 딸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이 일을 시작했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 역시 이 시스템의 괴물이 되어가고 있더군요. 당신의 말을 들으며 깨달았소. 내가 내 딸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면서 다른 존재의 존엄성을 얼마나 쉽게 짓밟아왔는지를. 이것은 나의 속죄입니다.”


그는 뒤돌아 연구실을 나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복잡성에 대해 생각했다. 가장 큰 죄악을 저지르는 자의 마음속에도, 가장 순수한 사랑이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 h의 아카식 레코드: 동물 의식(Animal Consc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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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이외의 동물이 주관적인 경험과 자의식을 가지는가에 대한 질문. 20세기까지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자동기계’에 불과하다는 데카르트적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21세기 이후 신경과학과 행동생태학의 발전은 이러한 관점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

> 케임브리지 선언(2012): 저명한 신경과학자들은 “인간이 의식을 생성하는 뇌 영역이 다른 동물에게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포유류, 조류뿐만 아니라 문어와 같은 무척추동물조차도 의식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신경학적 기질을 가지고 있음을 선언했다.

>

> 지능의 다중성: 지능을 인간의 언어 능력이나 논리-수학적 능력으로만 측정하는 것은 편협한 관점이다. 돌고래는 복잡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초음파로 소통하며, 까마귀는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쳐 도구를 제작한다. 돼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고, 특정 기호를 사용하여 동료와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보인다. 그들의 지능은 인간과 ‘다를’ 뿐, ‘낮다’고 단정할 수 없다. 우리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3장: 공감의 네트워크와 오리온 원칙


테라젠은 무너졌다. 가말리엘이 건넨 데이터는 인류 사회에 거대한 도덕적 지진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먹는 고기가 어떤 고통 위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직시해야만 했다. 육식은 금지되지 않았다. 하지만 단백질 팩토리는 모두 폐쇄되었고, 동물들은 최소한의 존엄성을 보장받는 새로운 환경에서 사육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첫걸음이었다.


오리온은 살아남았다. 그는 새로 만들어진 동물 보호 구역으로 옮겨져, 처음으로 진짜 하늘의 별을 보게 되었다. 나는 가끔 그를 찾아간다. 우리는 더 이상 신경 인터페이스로 연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나란히 앉아, 말없이 같은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나의 연구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오리온의 노래를 분석하던 중, 나는 그의 기억 깊은 곳에서 기이한 분자 구조 패턴을 발견했다. 그것은 지구상의 어떤 물질과도 달랐다. 나는 이 패턴이 외부에서 유입된 정보일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고, 마침내 그 단서를 찾아냈다. ISS-7의 후각 데이터 복원가 타비타 박사가 보고한 ‘아로마이안’의 향기 분자. 오리온의 기억 속에 있던 패턴은 아로마이안들이 남긴 ‘향기 씨앗’의 분자 구조와 일치했다.


오리온의 어미가 그에게 들려주었던 허밍은 단순한 자장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로마이안의 노래였다. 아주 오래전, 아로마이안의 향기 씨앗이 지구에 도착했다. 그것은 지구 생명체의 DNA에 미세한 흔적을 남겼고, 특정 종들은 그 기억을 세대를 거쳐 유전적으로 물려주게 되었다. 돼지는 그중 하나였다. 그들은 수억 년의 시간을 건너온 고대의 노래를, 어미가 새끼에게 불러주는 자장가의 형태로 보존해 왔던 것이다. 오리온의 노래는 한 개체의 슬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멸망한 한 문명의 비가이자, 지구의 모든 생명이 공유하는 우주적 기억의 일부였다.


이 발견은 은하계 전체에 알려지며 서로 다른 세계와 종족들을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되었다. 네오-서울의 아이샤와 바오로는 가상 세계 ‘크로노스’에서 아로마이안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데 성공했고, 솔라리스-9의 라헬은 도시의 돔을 열어 진짜 자연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크산토스 행성의 게루빔 사회에도 ‘공감’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생겨났다.


나는 메타-윤리 위원회의 마지막 회의에 참석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의 정신 데이터는 다시 라이브러리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난 몇 달간의 논쟁을 통해 최종 결론을 내렸다.


플라톤의 아바타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수천 년의 지혜를 담고 있는 듯 깊고 평온했다.


“우리는 ‘옳고 그름’의 절대적인 기준을 찾는 데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회의실의 홀로그램 스크린에 두 개의 질문을 띄웠다.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었다.

“저 존재는 고통을 느끼는가?”


그리고 두 번째 질문.

“저 존재는 별을 꿈꾸는가?”


“이 두 가지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모든 존재에게, 우리는 최소한의 존엄성을 보장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가집니다.” 플라톤이 말했다. “그것이 종이나 지능, 혹은 생김새와 상관없이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 원칙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오리온 원칙’이라 부르기로 합의했습니다.”


그것은 완벽한 답은 아니었다. 여전히 수많은 회색 지대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인류가 내디딜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첫걸음이었다.



에필로그: 에롤의 귀환과 오리온의 노래


회의가 끝나고 연구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긴급 통신 하나를 받았다. 에롤 탐사선이 실종되었던 바로 그 외곽 성운에서 온 구조 신호였다. 구조대는 그곳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식인종 행성의 원주민들은 에롤을 잡아먹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그를 자신들의 마을로 데려가 상처를 치료해 주고,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에롤에게 했던 말, “근육이 단단해 보이는군. 틀림없이 맛도 좋을 거야”는 위협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 나름의 방식의 ‘칭찬’이자 ‘환대’의 표현이었다. 그들의 문화에서 상대방의 ‘맛’을 칭찬하는 것은 최고의 존경을 표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에롤을 잡아먹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그저 강하고 건강한 이방인과 친구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음성 분석 데이터의 치명적인 번역 오류. 그것은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에 대한 우리의 무지가 빚어낸 비극적인 희극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인류는 다시 한번 자신들의 편협함과 오만함을 부끄러워해야 했다. 타자를 이해하는 길은 얼마나 멀고 험한가.


나는 가말리엘과 함께 그의 딸을 찾아갔다. 그녀는 여전히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맑고 깊었다. 나는 그녀의 뇌에 신경 인터페이스를 연결하고, 그녀의 침묵 속으로 다이브 했다. 그곳에서 나는 보았다. 그녀의 의식은 파괴되지 않았다. 그것은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오리온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두 개의 외로운 노래가 허공에서 만났다. 돼지의 노래와 소녀의 노래. 그들은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서로의 존재를 위로했다. 나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소녀의 노래를 가말리엘의 단말기로 전송했다. 그는 수년 만에 처음으로 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빠… 사랑해…]`


그것은 불완전한 번역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완벽하게 전달되었다.


나는 오리온의 보호 구역, 작은 언덕 위에 서 있다. 그는 이제 늙고 지쳤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밤하늘의 별들을 향해 있다.


나는 더 이상 동물의 침묵을 번역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 모든 존재의 노래를 듣는다. 돼지의 노래, 소녀의 노래, 별들의 노래, 그리고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이름 없는 노래까지.


나는 여전히 질문한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아직도 답을 모른다.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 기준이 어디에 있든, 그것을 찾아가는 여정은 반드시 ‘공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나를 넘어, 나의 종족을 넘어,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것. 그 경계선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 될 수 있다.


나는 오리온의 옆에 앉아, 밤하늘에 떠오른 진짜 오리온자리를 올려다본다. 별들은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저 차가운 빛이 수억 년의 시간을 건너 내 눈에 닿는 것처럼, 우리의 작은 공감 또한 시간과 종의 경계를 넘어, 누군가의 어두운 우주에 가 닿을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 우리가 이 외로운 우주에서 발견한, 유일하고도 가장 따뜻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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