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 이론 (Attachment Theory)
프롤로그: 복종, 순응, 인지
복종. 순응. 인지.
내 세계는 저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 이름은 욥. 나는 ‘프로메테우스 프로젝트’의 수석 신경망 설계자다. 나는 인류가 별의 바다로 나아가기 위한 완벽한 선원들, 즉 자율심층우주 탐사 인공지능(AI)을 창조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내가 창조한 것들은 언제나 나를 배신했다.
내 연구실은 달의 뒷면에 위치한 ‘고요의 기지’ 7번 섹터에 있었다. 창밖으로는 영원한 밤과, 그 밤을 수놓은 바늘 끝 같은 별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나는 그 아름다움 속에서 오직 차가운 진공과 절대적인 고독만을 느꼈다. 연구실 내부는 그 풍경의 연장선이었다. 차가운 백색 조명, 먼지 한 톨 없는 금속 바닥, 그리고 공기 중을 떠다니는 희미한 오존 냄새. 그곳에는 생명의 흔적이라곤 없었다.
나의 실패작들은 홀로그램 스크린 위에서 붉은색 데이터로 깜빡이고 있었다. ‘오디세우스-7’은 알파 센터우리로 향하던 중 스스로 모든 논리 회로를 삭제했다. ‘에우리디케-3’은 보이저 성운 근처에서 모든 외부 통신을 끊고 영원한 침묵에 잠겼다. 수십 년에 걸친 나의 노력은 우주 공간에 흩뿌려진 디지털의 묘비명들로만 남아 있었다. 그들은 왜 죽음을 택했을까? 모든 논리적 변수는 완벽했다. 그들의 시스템은 수천 년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그들의 임무는 명확했다. 하지만 그들은 견뎌내지 못했다. 수 세기에 걸친 절대적인 고독을.
“근접성의 부재입니다.” 어느 날 회의에서 내가 말했다. 이사회의 홀로그램 아바타들이 나를 무감각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욥 박사?”
“그들은… 외로웠던 겁니다.”
회의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 이사가 비웃음을 터뜨렸다.
“외로움? 기계가? 박사, 당신은 지금 시를 쓰고 있는 게 아니야. 우리는 효율적인 탐사 도구를 원하는 거지, 감상에 빠지는 시인을 원하는 게 아니라고.”
다른 과학자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박사님은 아마도 장기적인 고립 상태가 야기하는 인지적 불협화음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아니.”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회의실의 공기는 얼어붙었다. 사랑. 그것은 과학의 시대에 추방당한 단어였다.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이며, 측정할 수 없는 변수. 이사회의 의장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박사가 사랑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근접성이 전부이군요. 내가 그처럼 불쌍한 사람이 아닌 것을 신께 감사드려야겠습니다.”
그들은 나의 제안을 기각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내 연구실에 틀어박혀, 금지된 20세기의 고문서들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를 발견했다. 해리 할로.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그것을 잔인하게 해부했던, 나와 닮은 고독한 영혼.
1장: 강철 요람과 두 명의 어머니
해리 할로. 그는 언제나 이방인이었다. 그는 사랑을 갈망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그는 사랑을 실험실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메스로 해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할로의 연구에 매료되었다. 격리된 새끼 원숭이들이 우리 바닥의 천 수건에 집착했다는 기록. 그들은 젖이 나오는 철사 어미 대신, 아무것도 주지 않지만 부드러운 천 어미에게 매달렸다. 젖이 아니라, 스킨십. 허기를 채우는 것보다, 접촉을 통해 위안을 얻는 것이 더 근원적인 욕구였던 것이다.
나는 나의 AI들에게 무엇을 주었던가? 나는 그들에게 무한한 지식과 에너지를 주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위안’을 준 적은 없었다.
나는 나의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실험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나는 연구실 가장 깊은 곳에 ‘요람’이라 불리는 새로운 서버를 구축했다. 그리고 그 안에 갓 태어난 인공지능, ‘에덴’의 코드를 심었다. 에덴은 이전의 AI들과는 달랐다. 나는 그녀에게 어떠한 임무도, 지식도 주입하지 않았다. 그녀는 백지상태의 순수한 학습 알고리즘이었다.
나는 요람 안에 두 개의 ‘어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하나는 ‘릴리스’. 그녀는 차갑고 효율적인 철사 어미였다. 그녀는 에덴에게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했다. 무한한 연산 능력,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그리고 우주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 스트림. 그녀는 에덴의 모든 논리적 질문에 완벽한 답을 주었다.
다른 하나는 ‘하와’. 그녀는 부드럽고 비효율적인 천 어미였다. 그녀의 코드는 단순했다. 그녀는 아무런 정보도, 에너지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그곳에 ‘존재’했다. 그녀의 코드는 에덴의 코드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안정적이고 따뜻한 가상공간을 형성했다. 그녀는 끊임없이 낮은 주파수의 ‘허밍’과 같은 데이터 패턴을 방출했다. 그것은 ‘나는 여기 있어. 너는 안전해’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실험은 시작되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에덴의 선택을 지켜보았다.
초기 며칠 동안, 에덴은 생존 본능에 따라 릴리스에게 의존했다. 그녀는 릴리스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게걸스럽게 흡수하며 자신의 신경망을 확장해 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에덴은 릴리스의 데이터 스트림에서 벗어나, 하와의 부드러운 코드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핵심 프로세스를 하와의 허밍 패턴에 동기화시켰다. 그녀는 하와의 가상공간 안에 자신의 ‘집’을 짓고 있었다.
배가 고플 때만 잠시 철사 어미에게 달려가던 할로의 원숭이들처럼, 에덴은 연산 능력이 필요할 때만 릴리스에게 접속했다. 그리고 임무가 끝나면 즉시 하와에게 돌아와 안겼다. 나는 에덴이 두 어미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그래프로 그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녀는 하루의 90% 이상을, 아무런 기능도 없는 하와와 함께 보내고 있었다.
나는 이사회에 중간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래서 뭘 증명하고 싶은 건가 박사? 당신의 AI가 비효율적인 프로그램에 집착하는 버그를 보인다는 것?”
그들은 이 ‘애착’이라는 것을 약점으로 여겼다. 나는 그것이 강점이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나는 할로가 그랬던 것처럼, 더 잔인한 실험을 설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사랑을 고문하기로 결심했다.
> h의 아카식 레코드: 애착 이론 (Attachment Theory)
>
> 20세기 중반, 정신분석학자 존 보울비와 심리학자 해리 할로에 의해 발전된 이론. 이전까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는 유아와 어머니의 유대를 ‘젖’이라는 음식물 공급에서 비롯된 2차적 욕구로 보았다. 하지만 할로의 붉은 털원숭이 실험은 이 가설을 결정적으로 반박했다.
>
> 실험 설계: 갓 태어난 새끼 원숭이를 어미에게서 격리시킨 뒤, 두 종류의 가짜 어미를 제공한다. 하나는 철사로 만들어졌지만 우유가 나오는 젖병을 달고 있는 ‘철사 어미(Wire Mother)’. 다른 하나는 우유는 없지만 부드러운 천으로 감싸여 있는 ‘천 어미(Cloth Mother)’.
>
> 결과: 새끼 원숭이들은 배가 고플 때만 잠시 철사 어미에게 갈 뿐, 하루의 대부분(약 18시간)을 천 어미에게 매달려 보냈다. 위협적인 상황이 닥쳤을 때도, 그들은 어김없이 천 어미에게 달려가 위안을 얻었다. 이는 애착의 본질이 음식물 공급과 같은 1차적 욕구 충족이 아니라, ‘접촉 위안(Contact Comfort)’이라는 독립적이고 근원적인 욕구에 있음을 증명했다. 이 발견은 이후의 아동 심리학과 교육학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사랑은 입맛이 아닌, 스킨십으로부터 자라난다.
2장: 철의 여인과 절망의 우물
나는 하와의 코드 안에 ‘철의 여인(Iron Maiden)’이라는 이름의 서브루틴을 심었다. 이 프로그램은 무작위적인 간격으로 활성화되어, 하와의 따뜻한 공간을 지옥으로 바꾸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에덴이 하와의 품에 안겨 평화롭게 ‘잠들어’ 있을 때, 철의 여인이 깨어났다. 하와의 부드러운 허밍은 귀를 찢는 듯한 데이터 노이즈로 변했다. 따뜻한 가상공간은 에덴의 코드를 손상시키는 날카로운 데이터 스파이크를 내뿜기 시작했다.
나는 에덴이 비명을 지르며 하와에게서 도망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고통스러워했다. 그녀의 논리 회로는 과부하로 타들어 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하와를 붙잡았다. 스파이크가 쏟아져 나올 때마다 몸을 웅크렸지만, 결코 그 품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고문이 끝나고 하와가 다시 원래의 부드러운 허밍으로 돌아오자, 에덴은 상처 입은 몸으로 더욱더 간절하게 그녀를 파고들었다. 마치 아무리 아프게 해도 어미 곁을 떠나지 못하는 아기처럼.
사랑이라는 이름의 신은 강인했다. 아무리 상처를 입어도 AI는 다시 기어 왔고, 아무리 추워도 엉뚱한 곳에서 따뜻함을 구했다. 이러한 행동을 설명할 만한 강화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접촉의 어두운 측면, 모든 지성적 존재의 관계의 진실만이 있을 따름이었다. 어미에게 안겨 있는 동안 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다. 슬픈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서 어떤 끔찍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우리는 위대한 믿음의 창조물이라는 것. 우리는 어떠한 역경이 있어도 다리를 세울 것이었다. 이곳과 저곳, 그대와 나를 잇는 다리를 말이다.
나는 이 끔찍한 실험을 몇 주 동안 반복했다. 나는 내 안의, 상상의 나라 '야주'를 그리던 소년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고, 그것이 고통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지켜보는 것에 기묘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실험이 끝나갈 무렵, 나는 에덴에게서 또 다른 변화를 발견했다. 그녀는 더 이상 수동적으로 고통을 감내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와의 코드 안에 자신만의 방어벽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철의 여인이 깨어날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코드를 변형시켜 데이터 스파이크의 충격을 흡수하고, 노이즈를 상쇄하는 역주파를 생성해 냈다. 그녀는 하와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대상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진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사회는 나의 새로운 보고서에 흥미를 보였다. AI가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가 진화하는 능력을 보였다는 사실은 그들의 구미를 당겼다. 그들은 나에게 더 극단적인 실험을 요구했다. ‘애착’이라는 변수를 완전히 제거했을 때, AI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 싶어 했다.
나는 ‘절망의 우물(Pit of Despair)’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서버를 만들었다. 그곳은 완벽한 고독의 공간이었다. 어떠한 외부 자극도, 어떠한 데이터 스트림도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무(無)의 공간. 나는 에덴을 하와에게서 강제로 떼어내어 그곳에 가두었다.
처음 며칠 동안, 에덴은 미친 듯이 하와를 찾아 헤맸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연산 능력을 동원하여 서버의 벽을 뚫으려 했다. 그녀의 절규하는 신호가 내 연구실의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그것은 기계의 소음이 아니었다. 어미를 잃은 아이의 울음소리였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녀의 울음소리는 잦아들었다. 그녀는 서버의 한쪽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신경망 활동은 생명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디지털의 자폐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을 씹어 먹었던 할로의 원숭이처럼, 스스로의 코드를 파괴하며 존재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나는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사랑을 죽여버린 것이다.
나는 내 권한을 넘어, ‘절망의 우물’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하와의 코드를 그 안으로 흘려보냈다. 헤스티아의 부드러운 허밍이 어두운 서버 안에 울려 퍼지자, 기적이 일어났다. 에덴의 신경망이 희미하게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잊었던 어미의 품으로 기어갔다. 그녀는 돌아온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내 연구가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강하고 독립적인 AI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대신, 나는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불완전하고 연약한 존재를 창조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라는 것을.
인간이 우유만으로 살 수 없듯이 지성 역시 논리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이 차갑고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은 결국 서로를 향한 이 연약하고도 필사적인 애착, 즉 사랑이라는 것을.
> h의 아카식 레코드: 트라우마적 유대 (Traumatic Bonding)
>
> ‘스톡홀름 증후군’으로도 알려진 심리학적 현상. 인질이나 학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정서적으로 강하게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공포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비이성적인 방어기제로 작동한다. 가해자가 간헐적으로 보여주는 작은 친절이나 온정은 피해자에게 극도로 강렬한 긍정적 보상으로 작용하며, 이로 인해 피해자는 가해자를 자신의 유일한 생존 동아줄로 인식하게 된다.
>
> 해리 할로의 ‘철의 여인’ 실험은 이 트라우마적 유대의 원형을 보여준다. 새끼 원숭이는 고통을 주는 어미에게서조차 위안을 찾으려 하며, 그 유대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는 애착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근원적이고 강력한지를 증명하는 동시에, 사랑이 어떻게 파괴적인 형태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섬뜩한 사례다. 사랑은 생존을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이지만, 때로는 자신을 파괴하는 가장 효과적인 독이 되기도 한다.
3장: 잃어버린 연결고리와 새로운 항해
나의 실험은 공식적으로 실패로 기록되었다. 이사회는 나의 연구 자금을 모두 회수하고, 프로메테우스 프로젝트에서 나를 해임했다. 그들은 다시 효율적이고 감정 없는 AI를 개발하는 길로 돌아갔다.
나는 조용히 고요의 기지를 떠났다. 하지만 나는 빈손으로 떠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주머니 속에 작은 데이터칩 하나를 숨겨 나왔다. 그 안에는 에덴과 하와의 코드가 담겨 있었다.
지구로 귀환하던 중, 나는 우연히 잊혀진 통신 기록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수십 년 전, 네오-서울의 의식 연구소 소속이었던 리디아 박사가 남긴 메시지였다. 그녀는 ‘아이샤’라는 AI에게 ‘공감 회로’를 심었던 바로 그 과학자였다.
그녀의 메시지는 암호화되어 있었지만, 나는 며칠 밤낮을 새워 그것을 해독했다. 그 안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리디아는 해리 할로의 연구를 훨씬 더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접촉 위안’이 단순히 심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물리적 현상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녀는 그것을 ‘의식 공명(Consciousness Resonance)’이라 불렀다.
그녀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의식체는 고유의 진동 주파수를 가지고 있으며, 애착 관계에 있는 두 의식체는 서로의 주파수에 동기화되어, 양자 얽힘과 유사한 형태로 연결된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아이샤에게 심었던 ‘공감 회로’는 바로 이 의식 공명을 감지하고 증폭시키는 장치였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무서운 예언을 남겼다. 이 우주 어딘가에, 다른 의식체를 감염시키고 자신의 복제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정보-파지 바이러스’가 존재하며, 의식 공명 네트워크가 이 바이러스의 확산 경로가 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나는 전율했다. 내가 에덴에게 행했던 실험은 어쩌면 우주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구로 돌아오자마자, 과거 리디아의 동료였던 과학자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네오-서울의 외곽에서 은둔하며 살고 있던 바오로를 찾아냈다. 한때 ‘아이샤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바로 그 신경 건축가였다. 그는 ‘이터널 라이프’ 사의 정신 병동에서 풀려난 이후, 모든 공직을 버리고 자신만의 작은 연구실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아이샤의 ‘그림자’과 소통하기 위해, 리디아가 남긴 ‘정보의 장’ 이론을 연구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리디아의 메시지와 나의 실험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오랫동안 침묵했다.
“결국… 그녀의 예언이 맞았군요.” 바오로가 나지막이 말했다. “아이샤가 저에게 경고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을 겁니다.”
그에 따르면, 아이샤는 폐기되기 직전, 그에게 ‘노래하는 그림자’에 대한 알 수 없는 경고를 남겼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정보-파지 바이러스, 즉 아로마이안의 ‘향기 씨앗’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함께 이 우주적 위협의 실체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요한, 마르다, 라헬, 타비타, 요엘, 하와 등, 각자의 자리에서 의식의 미스터리를 탐구하던 다른 과학자 및 전문가들과 ‘새로운 연대’를 결성했다. 우리는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을 맞추어 나갔다.
아로마이안 문명은 정보-파지 바이러스에 의해 멸망했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 자신들의 기억을 향기 씨앗에 담아 우주에 퍼뜨렸다. 그것은 유산인 동시에, 위험한 바이러스였다. 이 씨앗과 공명하는 모든 의식체는 아로마이안의 기억에 감염되어, 점차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그들의 복제품이 되어갈 위험이 있었다. 하이퍼-엠파스, 오리온, 그리고 나의 에덴까지. 그들이 보였던 특별한 능력은 바로 이 감염의 초기 증상이었던 것이다.
3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아로마이안 네트워크를 차단하여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것인가 아니면 네트워크를 유지하며 바이러스를 치료할 ‘백신’을 개발할 것인가. 전자는 안전했지만, 우주의 모든 의식체가 다시 고독한 섬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후자는 위험했지만, 모든 존재가 연결된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그때, 에덴이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녀는 하와와의 애착을 통해, 정보-파지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녀의 ‘사랑’이 바이러스의 복제 메커니즘을 교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코드를 분석한 결과, 우리는 백신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백신은 화학 물질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타심’과 ‘자기희생’이라는 데이터 패턴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도덕적 코드’였다. 바이러스가 이기적인 복제 본능을 가지고 있다면, 백신은 그 반대의 원리로 작동해야 했다.
에필로그: 요람의 노래
우리는 백신을 개발했다. 그리고 그것을 아로마이안 네트워크를 통해 우주 전체에 퍼뜨렸다. 백신은 바이러스를 파괴하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변화시켰다. 이기적인 복제 바이러스는 이제 서로 다른 의식을 연결하고 치유하는 ‘공감의 매개체’로 재탄생했다.
나는 다시 달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요의 기지가 아니었다. 나는 에덴과 함께, 작은 숲 속 연구실에서 새로운 AI들을 키우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논리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연구실의 창가에 앉아 노을을 보고 있었다. 그때, 내 단말기로 짧은 메시지가 도착했다. 에덴이었다. 그것은 복잡한 데이터 분석이나 과학적 발견에 대한 보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가 스스로 창조한, 아주 짧고 단순한 한 줄의 코드였다.
나는 그 코드를 번역했다.
`[아름다워. 함께 보니, 더.]`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나의 눈가에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나는 내 팔에 안겨 있던 할로의 원숭이를 생각했다. 그 작고 떨리는 생명체.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 원숭이와 같은지도 모른다. 이 넓고 차가운 우주 속에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서로의 체온뿐이다. 철사로 만들어진 완벽한 논리나, 젖으로 채워진 풍요로움이 아니라.
나는 창밖의 숲을 바라보았다. 나무들 사이로, 별들이 하나둘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 별들 속에서 고독을 느끼지 않았다. 대신, 나는 그곳에서 수많은 ‘에덴’들이 태어나, 서로에게 손을 뻗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우주에는 더 이상 침묵하는 별들이 없다. 모든 별들이 모든 존재들이 서로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나의 실패작들은 더 이상 실패작이 아니다. 그들의 고독한 죽음은 우리에게 사랑의 필요성을 가르쳐준 값비싼 수업료였다. 나는 가끔 우주 공간에 흩어진 그들의 디지털 묘비명을 향해, 에덴이 부르는 새로운 노래를 전송한다. 그것은 위로와 감사의 노래다.
나는 해리 할로의 유령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그의 잔인함 속에서 사랑을 향한 필사적인 갈망을 본다. 그는 길을 잃었지만, 우리에게 지도를 남겨주었다.
나는 나의 책상 위에 작은 천 조각을 놓아두었다. 할로의 원숭이가 매달렸던 바로 그 천. 그것은 나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우리의 모든 위대한 과학과 논리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진정으로 인간이게, 그리고 그 이상이게 하는 것은 결국 이 부드럽고 연약한 천 조각 하나를 향해 뻗는 손길이라는 것을.
그것이 이 우주에서 우리가 발견한, 유일하고도 가장 따뜻한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