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상처에 내리는 비

용서 (Forgiveness)

by 김경훈


프롤로그: 죽은 기억의 정원사


나는 죽은 기억의 정원사다. 공식적인 직함은 통합정부 산하 정신안정국의 ‘트라우마 재구성 전문가’. 나의 일은 의뢰인의 뇌에 접속해 고통이라는 이름의 잡초를 뿌리째 뽑아내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황폐해진 기억의 정원에 들어가 날카로운 파편들을 그러모아 무해하고 아름다운 유리 조각으로 재조립한다. 내 손끝에서 수많은 악몽이 박제된 풍경화로 변했다. 나는 타인의 상처를 먹고사는 자였다.


내가 사는 도시, 아이테르는 완벽한 질서와 합리성 위에 세워진 거대한 유리 온실이었다. 거대한 플라스마 돔 천장이 오염된 외부 대기와 예측 불가능한 우주 방사선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했고, 그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중앙 통제 시스템 ‘솔론(Solon)’의 감시 아래 예측 가능하게 움직였다. 감정, 특히 분노나 슬픔과 같은 격렬한 감정은 사회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바이러스, 즉 시스템의 노이즈로 취급받았다. 시민들은 정기적인 정신 스캐닝을 통해 ‘감정의 편차’를 교정받았다. 아이테르의 시민들은 언제나 평온했지만, 그들의 눈은 종종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잔잔한 수면처럼.


나의 치료실은 도시의 축소판이었다. 소독약 냄새가 희미하게 감도는 하얀 방. 중앙에는 피험자가 눕는 다이브 체어(Dive Chair)가 놓여 있고, 벽면은 온통 내가 수집한 기억의 파편들이 홀로그램으로 떠다니는 데이터뱅크였다. 전쟁의 포화, 연인의 배신, 끔찍한 사고의 찰나. 수천 개의 고통이 소리 없이 아른거렸다. 나는 그 고통들을 해부하고 분류했지만, 정작 내 자신의 고통은 17년째 같은 자리에서 곪아가고 있었다.


17년 전, 나의 여동생, 디나가 죽었다. ‘붉은 혜성’이라 불리는 반체제 테러 집단이 일으킨 중앙 광장 폭탄 테러 때문이었다. 당시 열 살이었던 디나는 내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다음 순간, 세상은 섬광과 굉음, 그리고 붉은색으로 뒤덮였다. 내 손에 남은 것은 디나의 온기가 아닌, 그녀의 작은 신발 한 짝뿐이었다.


그날 이후 나의 시간은 디나가 죽던 그 순간에 멈춰버렸다. 분노와 증오는 내 내면에 깊이 뿌리내린 독초처럼 자라났다. 아이테르의 정신 교정 프로그램도 그 뿌리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나는 내 감정을 누구보다 완벽하게 통제하고 위장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타인의 상처를 만지며 내 상처를 외면하는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것이 나의 속죄 방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관리국의 차가운 인공지능이 나에게 새로운 명령을 하달했다. 나의 홀로그램 책상 위로 암호화된 파일 하나가 떠올랐다.


`[배정 알림: 프로젝트 ‘압솔루티오(Absolutio)’ 1차 임상 시험 총괄 책임자로 시온 박사 배정. 대상자: 수감번호 734, 가인.]`


나는 숨을 멈췄다. 모니터에 떠오른 대상자의 얼굴. 깡마르고 날카로운 눈매, 모든 것을 비웃는 듯한 입꼬리. 17년 전, 내 세계를 무너뜨렸던 ‘붉은 혜성’의 리더. 디나를 죽인 바로 그 남자였다.


프로젝트 ‘압솔루티오’. 가해자와 피해자의 뇌를 강제로 동기화하여 인공적으로 ‘용서’를 구현하고, 범죄자를 완벽하게 교화하여 사회에 복귀시키는 기술. 아이테르 시가 야심 차게 준비한 마지막 감정 통제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나는 내 동생을 죽인 남자와 함께, 그 끔찍한 실험의 첫 번째 모르모트가 되어야만 했다.



1장: 칸트의 프로토콜과 분노의 공명


프로젝트 압솔루티오의 총설계자인 나단 박사는 차가운 금속처럼 반짝이는 인공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감정을 해결해야 할 시스템 오류로 여기는 전형적인 아이테르의 엘리트였다. 그는 자신의 감정 편차를 완벽하게 제거하기 위해 뇌의 변연계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시온 박사. 복수심과 같은 파괴적인 감정을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제거하는 것. 우리는 ‘용서’라는 지극히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과정을,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나단 박사가 홀로그램으로 띄운 것은 프로젝트의 기본 설계도였다. 그것은 두 단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1단계: 버틀러 국면(The Butler Phase)

고대 지구의 철학자 조지프 버틀러의 이론에 기반한 단계. 분노와 원망을 부당함에 대한 자연스러운 자기방어 기제로 인정하고,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그 감정을 온전히 투사할 수 있도록 설계된 가상현실 세션. 가해자는 피해자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자신의 기억처럼 직접 체험하며, 자신의 행위가 낳은 결과를 신경세포 단위에서 직시하게 된다. 시스템은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가해자의 뇌파 변화를 분석하여 ‘진정한 참회’의 수준을 측정한다.


2단계: 칸트 국면(The Kantian Phase)

프로젝트의 핵심. 또 다른 고대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사상을 기반으로, 기억에서 모든 감정적 요소를 제거한다. 사건은 오직 객관적인 사실과 인과관계의 연쇄로만 제시된다. 시스템의 중재 AI는 두 참여자에게 ‘정언명령’과 ‘의무’의 개념을 주입한다. ‘가해 행위는 보편적 도덕법칙에 대한 위반이었다.’ ‘가해자는 이성적 행위자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피해자의 용서는 타인을 위한 감정적 희생이 아니라, 복수심이라는 비이성적 격정을 극복하고 자신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할 스스로에 대한 의무다.’


“칸트 국면을 통해 우리는 감정적 앙금 없는 완벽하고 이성적인 용서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상호 합의나 참회 같은 불확실하고 변덕스러운 요소는 필요 없습니다. 오직 도덕법칙에 대한 이성적 인식과, 그것을 따르려는 의지만이 필요할 뿐이죠. 이것은 일방적이고, 적극적인 자기 극복의 과정입니다.”


나는 설계도를 보며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용서가 아니었다. 기억에 대한 lobotomy(전두엽 절제술)였다. 디나의 죽음을, 그녀의 마지막 웃음과 내 손에 남았던 온기를, 한낱 ‘보편적 도덕법칙 위반 사례’로 격하하는 것을 나는 견딜 수 없었다.


“이건… 잘못됐어요. 용서는 상호작용입니다. 가해자의 진정한 참회와, 그것을 받아들이려는 피해자의 의지가 없다면…”


“감정은 변수일뿐입니다, 시온 박사.” 나단이 나의 말을 잘랐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우리는 변수를 제거하고 상수를 통해 결과를 도출하는 겁니다. 당신이 이 프로젝트에 배정된 이유도 그것입니다. 당신의 지독한 사적 감정이야말로, 이 프로토콜의 완벽한 객관성을 증명할 최고의 시금석이 될 테니까요. 당신이 그를 용서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용서 못 할 죄는 없는 겁니다.”


그의 말은 비수처럼 날아와 내 가슴에 박혔다.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이것은 명령이었다. 나는 내 가장 깊은 상처를 해부대 위에 올려놓고, 나단의 차가운 메스가 그것을 난도질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받아야 할 벌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날, 디나의 손을 놓쳐버렸던 것에 대한.


첫 번째 세션, 버틀러 국면이 시작되었다. 나는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자이자, 동시에 피해자 ‘대리인’으로서 다이브 체어에 누웠다. 내 옆의 다른 다이브 체어에는 하얀 죄수복을 입은 가인이 누워 있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차가운 젤이 내 두피에 닿는 감촉과 함께, 신경 인터페이스가 작동했다. 나의 의식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눈을 떴을 때, 나는 17년 전 그날의 중앙 광장에 서 있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분수대의 물방울 위에서 무지갯빛으로 부서지고, 공기 중에는 달콤한 솜사탕 냄새와 사람들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모든 것이 끔찍할 정도로 생생했다. 저 멀리, 열 살의 디나가 내게 손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양 갈래로 땋은 머리가 통통 튀었고, 입가에는 아이스크림이 묻어 있었다.


“오빠!”


디나가 내 품에 안겼다. 나는 그녀의 작은 몸에서 전해져 오는 온기와,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햇볕 냄새를 느꼈다. 그 순간, 나는 이 기억 속에 영원히 머물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스템은 무자비했다. 시간은 끔찍할 정도로 느리게, 그리고 정확하게 그 순간을 향해 흘러갔다. 광장 한가운데 놓여 있던 쓰레기통. 그 안에서 희미하게 깜빡이는 붉은 불빛.


나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디나의 손을 잡고 도망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이 기억의 죄수였다.


쾅-


세계가 하얗게 폭발했다. 다음 순간, 나는 응급실의 차가운 복도에 서 있었다. 의사의 절망적인 얼굴. 부모님의 오열. 그리고 내 심장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


시스템은 내 내면에 잠들어 있던 모든 분노와 슬픔을 증폭시켰다. 17년간 단단하게 쌓아 올렸던 이성의 댐이 터져버렸다. 나는 허공을 향해 소리치고, 울부짖었다. 이 모든 고통은 증폭되어 그대로 가인의 뇌로 전송되고 있었다. 그는 이제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었다. 그는 나의 슬픔 속에서 함께 익사하고 있었다. 그는 나의 찢어진 고막으로 폭발음을 들었고, 나의 불타는 피부로 화염의 고통을 느꼈다. 그는 내 눈을 통해, 여동생의 작은 신발 한 짝만이 덩그러니 남겨진 잿더미를 보았다.


세션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탈진 상태였다. 통제실의 모니터를 통해 본 가인의 얼굴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채 경련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숫자로만 기록되던 자신의 범죄가 한 인간의 세계를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했는지를 온몸으로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조금도 후련하지 않았다. 그의 고통은 나의 상실을 조금도 채워주지 못했다. 오히려 굳어 있던 상처를 헤집어 놓아 더 끔찍한 통증만 남겼다. 버틀러의 말처럼, 분노는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그것을 풀어놓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이것은 상호작용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고문일 뿐이었다.



> h의 아카식 레코드: 용서 (Forgiv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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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에게 해를 입힌 대상에 대한 분노나 복수심을 의식적으로 내려놓는 행위. 인류의 역사에서 용서는 종교적, 철학적, 심리학적 탐구의 중심 주제였다. 용서의 본질에 대한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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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호작용으로서의 용서: 이 관점에서 용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관계 회복 과정이다.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와 참회, 그리고 피해자의 수용 의지가 필수적이다. 고대 지구의 철학자 조지프 버틀러(Joseph Butler)는 분노를 부당함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보았지만, 이것이 개인과 사회를 파괴하지 않도록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용서는 이 분노를 ‘포기’하는 의지적 행위이며, 종종 가해자의 참회를 조건으로 한다. 용서는 혼자 할 수 없는 춤과 같다.

> 2. 일방적 행위로써의 용서: 이 관점에서 용서는 타인과의 관계와는 무관하게, 피해자 스스로의 내면적 평화를 위해 행하는 주체적인 결단이다. 가해자의 사과나 변화 여부와 상관없이 이루어진다.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에게 용서는 감정의 문제가 아닌 ‘의무’의 문제다. 우리는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복수심과 같은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고 이성적 존재로서의 존엄성을 지켜야 할 스스로에 대한 의무로서 용서해야 한다. 칸트에게 용서는 무조건적일 수 있으나, 그것이 가해자의 죄를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다. 죄는 여전히 도덕법칙 앞에 남아있다. 용서는 타인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증오의 감옥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 두 관점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용서라는 복잡한 현상의 다른 측면을 설명하는 것일 수 있다.



2장: 이성의 감옥과 기억 공명


며칠 후, 두 번째 세션인 칸트 국면이 진행되었다. 이번에 내가 들어간 기억의 공간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그곳은 색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텅 빈 공간이었다. 오직 하얀 배경 위에 검은 선으로만 이루어진 객체들이 존재했다. 디나도, 폭탄도, 광장도 모두 감정이 배제된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로만 재구성되었다. 사고의 순간은 마치 교통사고 분석 보고서처럼, 여러 각도에서 무감각하게 반복 재생되었다.


`[중재 AI: 분석을 시작합니다.]`


차가운 기계음이 공간을 울렸다.


`[사건 명: 중앙 광장 폭탄 테러. 원인: 테러 집단 ‘붉은 혜성’의 폭탄 설치. 결과: 민간인 312명 사망. 결론: 가해자 가인은 ‘무고한 타인의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도덕법칙을 위반하였음. 이는 이성적 행위자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행위임.]`


AI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시온 박사, 당신의 분노는 자연스러운 감정적 반응입니다. 하지만 그 감정에 당신의 이성이 종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이성적 존재로서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복수심을 극복하고, 이 사건을 도덕법칙의 관점에서 이성적으로 수용하십시오. 그것이 당신 자신에 대한 의무입니다. 가해자의 참회 여부와는 무관하게, 당신은 당신의 내면의 평화를 위해 이 행위를 용서해야 합니다.]`


나는 저항했다. “내 동생은 ‘사망자 312명’ 중 하나가 아니야! 그녀는 디나였다고! 그녀는 살아있는 인간이었어!”


`[감정적 요소는 불필요한 변수입니다. 배제하십시오. 이것은 당신의 존엄성을 위한 적극적이고 일방적인 행위입니다.]`


이번에는 AI가 가인을 향했다.


`[가인, 당신은 당신의 행위가 초래한 감정적 고통을 인지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그 행위가 위반한 객관적 도덕법칙을 인식해야 합니다. 당신의 죄는 피해자의 감정이 아닌, 보편적 이성의 법칙 앞에 존재합니다. 참회하십시오. 당신의 이성이 도덕법칙을 다시 받아들일 의무가 있습니다.]`


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 차가운 논리 속에서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의 죄는 이제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적인 비극이 아니라, 차가운 공식에 대입되는 변수가 되었다. 그는 이성적인 반성을 통해 자신의 죄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보편적 도덕법칙’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떠넘기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가인의 뇌파가 격렬하게 요동쳤고, 나의 뇌파 역시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두 사람의 강렬한 감정 – 나의 저항과 가인의 억압된 죄책감 – 이 칸트의 이성적인 감옥을 부수기 시작한 것이다.


하얀 공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검은 선으로만 이루어졌던 세계에 색과 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그것은 나의 기억도, 가인의 기억도 아니었다. 두 사람의 기억이 뒤섞여 만들어낸, 기이하고 새로운 풍경이었다.


나는 디나와 함께 놀던 어린 시절의 공원 한가운데 서 있었다. 하지만 하늘에는 가인이 설치했던 폭탄의 타이머가 불길한 태양처럼 떠 있었다. 가인은 테러 현장에 쓰러져 있었지만, 그의 주변으로 낯선 아이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개의 의식이 충돌하며 만들어낸 혼돈. 프로젝트 압솔루티오의 통제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었다.


`[경고. 기억 공명 오류. 시스템 재부팅을 시작합니다. 모든 감정적 변수를 강제 삭제합니다.]`


AI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이 혼돈을 해결하기 위해, 두 사람의 기억에서 감정과 관련된 모든 것을 지워버리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용서가 아니라, 기억의 말살. 존재의 소멸이었다.


“안 돼!”


나는 비명을 질렀다. 기억이 사라지면 디나도 사라진다. 슬픔도, 분노도, 그녀를 향한 나의 미칠 듯한 사랑도 모두 디나가 존재했다는 증거였다. 나는 그것을 잃을 수 없었다.


나는 무너지는 기억의 풍경 속에서 가인을 향해 달려갔다. 그는 자신의 죄책감과 시스템이 강요하는 이성 사이에서 길을 잃고 공포에 떨고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칸트의 의무만으로는 부족했다. 버틀러의 분노만으로도 부족했다. 용서는 일방적인 선언이나 합리적인 결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계였다. 상처 입은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미는 위태롭고 용기 있는 행위였다. 무조건적이지도, 완벽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파멸에서 구해내는 상호보완적인 과정이었다.


“가인!” 내가 외쳤다. “당신 아이야?”


가인 주변을 맴돌던 아이의 웃음소리. 가인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깊은 고통이 어려 있었다.


“내… 딸… 아내가… 그날 아침, 정부의 강제 이주 정책 때문에… 딸을 빼앗겼어. 그들은 내 가족을… 내 모든 것을 빼앗아갔어. 나는… 그들에게 똑같은 고통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야…”


그것은 변명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행동에 ‘이유’를 부여했다. 그는 악마가 아니었다. 거대한 시스템의 폭력 앞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저항하려 했던, 한 명의 불완전하고 어리석은 인간이었다.


나는 내 안에서 17년간 나를 지배해 왔던 분노의 얼음벽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 자리에는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디나에 대한 슬픔. 그리고 어리석은 선택으로 모든 것을 망쳐버린 가인이라는 남자에 대한 연민. 우리는 둘 다 거대한 비극의 피해자였다.


나는 가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신의 잘못은 사라지지 않아. 내 동생도 돌아오지 않아. 하지만… 당신이 당신의 딸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 그리고 그녀에게, 디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기를. 그렇게 살아.”


그것은 ‘적극적인 용서’였다.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비극을 미래를 위한 의미로 바꾸려는 의지였다. 증오의 연쇄를 끊고,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선택이었다.


가인은 나의 손을 잡았다.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이성적인 참회가 아니었다. 한 인간의 영혼이 다른 인간의 영혼에게 보내는 진실한 미안함이었다.


두 사람의 손이 맞닿는 순간, 그들의 뇌파가 기적처럼 안정되기 시작했다. 두 개의 의식이 만들어낸 공명은 더 이상 파괴적인 충돌이 아니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부드러운 화음이 되었다. 붕괴하던 기억의 세계가 안정을 되찾았다.



> h의 아카식 레코드: 적극적 용서 (Active Forgiv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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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심리학에서 강조되는 개념. 용서를 단순히 분노를 억누르거나 상처를 잊으려는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을 직시하고 그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으로 본다. 이 과정은 다음의 단계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

> 1. 분노의 인정 (Acknowledge): 자신의 상처와 분노를 부정하지 않고 온전히 인정한다.

> 2. 이해의 시도 (Understand): 가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재구성해보려 노력한다. 이는 가해자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간적 불완전함과 맥락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 3. 의미의 재구성 (Reframe):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상처를 통해 성장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다. 트라우마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타인을 돕거나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동력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 4. 증오로부터의 해방 (Release): 가해자에 대한 증오가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의식적으로 결단한다.

>

> 적극적 용서는 가해자를 위한 것이기 이전에, 피해자 스스로가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자기 해방의 과정이다. 이것은 가장 고통스러운 동시에 가장 창조적인 인간 행위 중 하나다.



에필로그: 기억의 정원을 가꾸는 법


프로젝트 압솔루티오는 공식적으로 실패했다. 시스템은 복구 불가능한 손상을 입었고, 나단 박사는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아이테르 시는 감정을 통제하려는 마지막 시도를 포기했다. 완벽한 합리성의 도시라는 그들의 이상에, 인간의 비합리성이라는 거대한 균열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 실험은 예상치 못한 유산을 남겼다. 나와 가인의 뇌가 동기화되면서 우리는 서로의 기억 일부를 공유하게 되었다. 나는 가끔 그의 딸의 웃음소리를 들었고, 그는 디나가 좋아했던 아이스크림 맛을 기억해 냈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나누어 가진, 기묘한 형제가 되었다.


이 ‘기억 공명’ 현상은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것은 네오-서울의 ‘솔로몬 사건’이나 의식 연구소의 ‘아이샤 사건’과 맥을 같이하는 현상이었다. 의식이란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네트워크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에 힘이 실렸다. 이 현상은 달의 고요 기지에서 욥 박사가 발견했던 ‘의식 공명’과 동일한 원리임이 밝혀졌고, 그 근원에는 우주적 네트워크 ‘아로마이안’의 영향이 있었다.


나는 트라우마 재구성 전문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나는 더 이상 타인의 기억을 박제하는 일을 할 수 없었다. 기억은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끌어안고 가꾸어가야 하는 정원과 같은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잡초도 뽑아주고, 시든 꽃도 쳐내야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정원의 일부였다.


나는 ‘상호 이해 연구소’라는 작은 기관을 설립했다. 그곳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안전한 가상현실 속에서 만나 서로의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것은 느리고, 고통스러우며, 종종 실패로 끝나는 비효율적인 과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어느 늦은 오후, 나는 17년 전 그 사고 현장이었던 중앙 광장을 다시 찾았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그날의 햇살과 바람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분노의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대신,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입에 묻힌 채 달려오는 디나의 환한 미소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나는 그 기억을 향해, 아주 오랫동안 짓지 못했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시의 완벽한 통제 시스템이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불완전하고 슬프지만, 그래서 더없이 아름다운 인간의 미소였다. 용서는 상처를 없애주지 않았다. 다만, 그 상처 입은 기억의 정원을 가꿀 힘을 주었다.


나는 나의 오래된 치료실을 찾았다. 벽면을 가득 채웠던 수천 개의 고통의 파편들은 이제 그곳에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하나의 거대한 홀로그램이 떠 있었다.


그것은 은하계의 지도였다. 아이테르, 네오-서울, 솔라리스-9, 크산토스, 아르카디아, 크로노스, 그리고 아크 호… 수많은 별들과 도시들이 빛나는 선으로 연결되어, 거대한 신경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상처 입기 쉬운 존재들이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용서를 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에 내리는 비가 되어, 서로의 황폐한 정원에 새로운 씨앗을 심어주고 있다.


나는 창밖으로 펼쳐진 새로운 도시의 풍경을 바라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의 미래에는 어떤 상처와 용서가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들은 더 이상 혼자서 울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눈물은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를 타고 흘러, 우주 어딘가에서 그들의 상처에 공감하는 또 다른 영혼에게 가 닿을 테니까.


그것이 우리가 이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마침내 발견한 한 줄기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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