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제부터 땅과 결별하기로 결심했을까. 맨발이 흙과 돌, 풀의 감촉을 기억하던 시절은 대체 어느 연대기에 묻혀버렸을까. 우리는 발바닥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감각 기관 위에, 가죽과 고무, 폼과 합성수지로 이루어진 ‘신발’이라는 이름의 정교한 갑옷을 입는다. 그것은 지상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방어막이지만, 동시에 땅이 들려주는 미세한 언어로부터 우리를 단절시키는 가장 완벽한 절연체이기도 하다. 신발은 인간이 발명한 가장 오래된 사회적 거리두기다. 이것은 그 거리의 의미를, 발바닥으로 사유했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1. 선물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피부
금요일 오후, 내 연구실의 고요함을 깨뜨린 것은 보보의 햇살 같은 웃음소리였다. 그녀는 언제나 예고 없이 마치 잘 짜인 시스템에 침투하는 유쾌한 버그처럼 내 세계에 등장하곤 했다. 그녀의 손에는 커다란 쇼핑백이 들려 있었고, 그 안에서 나는 아직 맡아보지 못한 새로운 사물의 냄새, 즉 합성수지와 접착제가 뒤섞인, 문명의 최전선에서 온 듯한 냄새를 감지했다.
“짠! 눈 감아봐, 자기야.”
나는 그녀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에 웃으며 눈을 감았다. 시각을 잃은 나에게 ‘눈을 감으라’는 그녀의 말은 우리가 공유하는 가장 사랑스러운 농담 중 하나였다. 내 무릎 위로 차가운 질감의 종이 상자가 놓였다. 상자가 열리는 ‘스윽’ 하는 소리와 함께, 화학적이면서도 기분 좋은 새 신발의 냄새가 피어올랐다.
“호카 본디 9. 요즘 이게 현상학적으로 가장 완벽한 쿠셔닝을 제공한대.” 철학 박사다운 그녀의 설명이었다.
보보는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내 낡은 크록스 라이트라이드를 벗겨냈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발목을 잡는 감촉, 그리고 새 신발의 끈을 풀어 내 발을 조심스럽게 밀어 넣는 그 섬세한 움직임. 나는 그녀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었다. 아마도 잔뜩 집중해서 입술을 살짝 내민 채, 이 새로운 '현상'이 내 '실존'에 잘 맞기를 바라는 간절한 얼굴일 터였다. 그녀는 가끔, 세상의 모든 것을 하이데거나 메를로퐁티의 언어로 번역하곤 했다.
“어때? 쿠션 장난 아니지, 여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몇 걸음 걸어보았다. 발바닷 아래, 두툼하고 탄력 있는 중창이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비현실적인 감각을 선사했다. 15년 전의 기억 속, 푹신한 운동장 트랙을 달리던 그 느낌과도 비슷했지만, 이건 훨씬 더 정교하게 계산된 쿠션이었다. 마치 잘 쓰인 논증처럼, 발이 지면에 닿는 모든 순간의 충격을 완벽하게 흡수하고 분산시켰다.
“고마워, 보보. 그런데 나, 신발 너무 많은데….”
내 말에 그녀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야 신발장, 그거 거의 근대성의 폐허 박물관 수준이잖아. 포스트모던 컬렉션 하나 추가된 셈 치자.”
2. 발바닥의 아카이브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현관 한 편의 신발장은 내 과거의 페르소나들을 박제해 놓은 일종의 아카이브였다. 나는 그 신발들을 신지 않았지만, 버리지도 못했다. 각각의 신발은 내 삶의 특정 시기를 증명하는 닳아빠진 유물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무거운 것은 작년에 미쳐 있었던 레드윙 아이언 레인저였다. 나는 가끔 그 부츠를 꺼내, 두껍고 단단한 가죽의 감촉과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냄새를 맡곤 했다. 그것은 내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거칠고 남성적인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의 흔적이었다.
그 옆에는 나이키 에어포스와 아디다스 슈퍼노바가 있었다. 내 발이 세상을 직접 보았던 마지막 시절의 신발들. 나는 그 신발들의 매끈한 가죽과 날렵한 로고의 형태를 기억했다. 그것들을 만질 때면, 나는 15살 소년의 발이 되어 대구의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연구실에서 나의 발과 거의 한 몸처럼 지내는 크록스 라이트라이드는 현재의 나 자신이었다. 기능에 충실하고, 어떤 미학적 주장도 하지 않는 편안하지만 어딘가 지루한 나의 정체성.
그리고 오늘, 호카 본디 9이 이 아카이브에 새로 입고되었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신발을 신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그 신발이 상징하는 어떤 정체성을, 어떤 이야기를 잠시 빌려 입는 것은 아닐까. LV, 프라다, 에르메스. 나는 그것들을 소유해 본 적도 있지만, 그 이름들이 속삭이는 세계의 문법을 안다. 신발은 그 사람의 욕망과 계급을 드러내는 가장 정직한 각주다.
3. 지상의 언어를 읽는 법
“나가서 걸어봐. 자기야, 이건 그냥 신발이 아니라, 새로운 신체 경험이라니까.” 보보의 목소리에는 철학자의 확신이 담겨 있었다.
보보는 내 손을 잡고 연구실 밖으로 이끌었다. 10월의 늦가을 햇살이 따사로웠고, 은행나무 잎이 노란 카펫처럼 보도 위에 깔려 있었다. 탱고가 우리의 앞에서 익숙한 길을 능숙하게 안내했다.
나는 새로운 신발이 땅과 나누는 대화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놀라웠다. 이전의 신발들이 땅의 정보를 뭉툭하게 전달했다면, 호카 본디 9은 마치 고성능 번역기처럼 지상의 모든 언어를 섬세하게 해석해 주었다. 매끄러운 대리석 보도블록의 차가운 평탄함, 점자블록의 규칙적인 돌기들이 주는 단단한 저항감, 흙길의 부드러운 함몰. 나는 발바닥으로,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의 풍경을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보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메를로퐁티가 말한 '몸의 현상학'인가.
“예전 호카는 너무 물러서 한 달도 못 버텼을 텐데,” 내가 말했다. “많이 단단해졌네.”
보보가 내 팔짱을 끼며 웃었다. “그치? 이제 자기의 험한 걸음도, 실존적 무게도 버텨낼 거야.”
그녀는 언제나 그랬다. 내가 보지 못하는 세상을, 그녀는 가장 정확하고 따뜻한 언어로 내게 번역해 주었다. 때로는 철학적인 농담을 섞어서. 그녀는 나의 세상과 바깥세상을 연결하는 가장 사랑스러운 인터페이스였다.
4. 맨발이라는 이름의 원죄
그날 밤, 나는 연구실에 홀로 남아, 보보가 선물한 신발을 물끄러미 만져보고 있었다. 문득,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인간은 언제부터 신발을 신었을까. 발바닥이 땅의 일부였던 시절, 우리의 조상들은 발을 통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얻었을까. 땅의 온도와 습도, 숨어있는 뱀의 미세한 진동, 다가오는 소나기의 징후. 발바닥은 세상을 읽는 또 하나의 눈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신발을 신음으로써 안전을 얻었지만, 그 대가로 땅과의 내밀한 대화를 포기했다. 우리는 지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했다. 맨발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시대. 그것은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지를 증명하는 문명의 슬픈 징후다.
나는 조용히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양말마저 벗어던졌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의 감촉이 발바닥 전체로 짜릿하게 전해져 왔다. 나는 눈을 감고, 그 서늘하고 단단한 감각에 집중했다. 탱고가 내 발치로 다가와, 꼬리를 흔들며 내 발등에 자신의 머리를 비볐다.
나는 아이폰을 들어, 오늘의 단상을 음성으로 남겼다.
‘제목: 지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신발은 정체성이자 계급이며, 욕망의 카탈로그다. 보보는 이것을 새로운 신체 경험이라 했지만, 그 본질은 단절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땅의 언어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그 위에 문명이라는 이름의 갑옷을 입는다.
결론: 때로는 모든 갑옷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땅의 차가움을 온전히 느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와 다시 접속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우리가 딛고 선 이 지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모른다. 보보에게는… 아직 말하지 말자.’
메모를 마친 나는 한동안 그렇게 맨발로 서 있었다. 나는 지금,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내가 속한 이 세계의 중력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