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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탑의 시선

푸코의 판옵티콘 (Panopticon)

by 김경훈


우리는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믿는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로 직업을 선택하고, 사랑을 하며, 신념을 갖는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만약 그 ‘자발성’이라는 감각이야말로, 가장 정교하게 설계된 통제의 결과물이라면 어떨까. 간수가 보이지 않는 감옥. 죄수 스스로가 서로의 간수가 되어, 보이지 않는 규칙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시스템. 미셸 푸코가 ‘판옵티콘’이라 명명한 이 보이지 않는 탑의 시선은 이제 감옥의 담장을 넘어 우리 삶의 가장 내밀한 영역까지 침투해 있다. 이것은 그 시선의 그림자를, 눈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감지한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1. 투명한 감옥


월요일 저녁 6시, 김경훈은 대구의 최첨단 IT 기업 ‘넥서스 코어(NEXUS CORE)’의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통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이 공간은 ‘투명한 경영’과 ‘수평적 소통’을 자랑하는 이 시대가 가장 사랑하는 형태의 작업 공간이었다. 그는 이 회사의 새로운 AI 비서 앱의 정보 접근성 컨설팅을 위해 이곳에 와 있었다.


그의 발치에는 안내견 탱고가 차가운 대리석 바닥의 냉기가 싫은 듯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사무실은 저녁이라고 하기엔 너무 밝았고, 공기 중에는 커피 머신의 고소한 향과 서버실의 차가운 열기, 그리고 수십 명의 인간이 내뿜는 미세한 불안의 페로몬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 공간의 구조를 완벽하게 감각하고 있었다. 벽이 없는 거대한 홀, 중앙에 배치된 팀장들의 자리, 그리고 그들을 동심원처럼 둘러싼 팀원들의 책상. 이것은 완벽한 판옵티콘이었다.


“어떻습니까, 박사님? 저희는 불필요한 벽을 없애고, 언제든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젊은 대표, 박민준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한때 ‘행복’이라는 꼬리를 좇던 그는 이제 ‘혁신’이라는 새로운 꼬리를 맹렬히 쫓고 있었다. 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자부심이 빛나고 있었다.


김경훈은 유쾌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는 이 차가운 공간에 잠시나마 온기를 불어넣었다. “아주 인상적이네요, 박 대표님. 마치… 모든 것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은 중의적이었지만, 민준은 그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2. 자발적 수감자들의 합창


정확히 오후 6시, 사무실 스피커에서 부드러운 재즈 음악과 함께 퇴근 시간임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김경훈은 고개를 들고, 이 기묘한 정적 속의 소란에 귀를 기울였다.


퇴근 알람은 울렸지만, 공간의 음향 지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는 오히려 더 빠르고 날카로워졌고, 직원들의 목소리는 ‘먼저 들어가겠습니다’라는 의례적인 인사 대신 ‘이것만 마저 끝내고요’라는 자발적 복종의 언어들로 채워졌다. 그는 들었다. 옆자리 직원의 한숨 소리, 마우스 휠을 초조하게 돌리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 메신저로 ‘아직 퇴근 못 해’라고 타이핑하는 소리까지도.


중앙의 감시탑, 즉 박민준 대표는 이미 30분 전에 ‘중요한 미팅’을 핑계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간수는 사라졌지만, 죄수들은 스스로를 감시하고 있었다. 서로의 모니터를 힐끔거리는 눈빛, 아직 퇴근하지 않은 동료의 존재가 주는 압박감. 그 보이지 않는 시선들이 서로를 옭아매며, 누구도 감히 첫 번째 탈옥수가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머릿속에 내재된 완벽한 간수의 명령에 따라, ‘자발적으로’ 노동을 연장하고 있었다.



3. 철학자의 해부


“아직도 야근 축제 중이네?”


보보의 목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들렸다. 그녀는 퇴근 시간에 맞춰 그를 데리러 온 참이었다. 그녀는 트렌치코트 깃을 세운 채, 이 기묘한 풍경을 구경하는 관객처럼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장난기와 함께, 철학자 특유의 날카로운 분석의 빛이 감돌았다.


“축제라기보단… 일종의 집단의식에 가깝지.” 김경훈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들은 사무실을 나섰다. 밖의 공기는 차가웠고, 도시의 네온사인이 이제 막 어둠 속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푸코가 이 광경을 봤다면 아마 샴페인을 터뜨렸을 거야.” 보보가 말했다. “가장 완벽한 형태의 판옵티콘이잖아. 심지어 감옥이 아름답기까지 하니.”


김경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탑을 본 게 아니야, 보보. 나는 탑의 시선이 남긴 그림자를 들은 거야. 침묵의 무게, 키보드 소리의 절박함, ‘자발성’이라는 단어 뒤에 숨은 피로감. 이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권력의 작동 방식이지.”


보보가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결혼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순수한 사랑의 결실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사회 질서와 안정적 세수 확보라는 국가의 거대한 프로젝트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결혼은 행복한 것’이라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우리 머릿속의 보이지 않는 감시탑 역할을 하는 거지.”


그녀의 말에, 그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한때 예수회 사제가 되어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심의(心醫)’를 꿈꿨던 그는 이제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교묘하게 길들이고 병들게 하는지를 목격하고 있었다.



4. 자유를 향한 주석


그날 밤, 그는 자신의 연구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탱고는 그의 발치에서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그는 오늘 겪었던 모든 감각과 대화를,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폰을 들어, 음성으로 짧은 주석을 남겼다.



‘제목: 보이지 않는 탑의 접근성 문제.

판옵티콘은 시각적 구조가 아니다. 그것은 시선의 불균형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권력 구조다. 나는 오늘, 소리를 통해 그 구조를 감각했다. ‘자발적 야근’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내재화된 감시 시스템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복종 프로토콜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판옵티콘에 갇혀 있다. 결혼, 성공, 행복. 이 모든 사회적 규범들은 우리를 통제하는 보이지 않는 시선이다.

결론: 정보 접근성이란, 단순히 정보에 접근할 권리를 넘어, 나를 둘러싼 정보 구조와 권력의 작동 방식을 비판적으로 읽어낼 능력(Literacy)을 포함해야 한다. 진정한 자유는 감옥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옥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럽고도 유일한 탈출의 열쇠다.’


메모를 마친 그는 아이폰을 내려놓았다. 그는 오늘,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감옥의 설계도를 그려냈다. 그리고 그 설계도를 해독하는 것이야말로,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인 형태의 저항임을 깨달았다. 창밖으로 대구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수많은 불빛들. 저 불빛 아래서 얼마나 많은 자발적 수감자들이 보이지 않는 시선에 갇힌 채, 자신의 노동과 삶을 바치고 있을까.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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