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존재, 즉 '고객'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이승이라는 거대한 쇼핑몰에서 저승이라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길 잃은 아이'일뿐이다.
물론, 가끔은 그 '아이'가 70 데시벨로 울부짖으며 바닥에 드러누워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진상'일 때도 있다.
- 영적 균형 학회 4대 석학, 김경훈.
「조율과 축출에 관한 소고 - 개정판 서문」 (자가 출판, 2025년) 11쪽.
에피소드 3. 14살의 버그(Bug)와 샛노란 관찰자
1.
"김 팀장! 3천이 아니야! 3억! 3억이라고!"
[황 보 부동산 컨설팅] 사무실.
황 소장의 '하이 C' 옥타브 비명이 사무실의 '도(C) 장조'를 완벽하게 깨부수고 있었다.
그녀의 화려한 금발 웨이브가 흥분으로 파르르 떨렸고, '자본주의의 환희'로 빛나는 그녀의 눈은 평소보다 두 배는 커진 듯했다.
"진정하시죠, 소장님."
소파에 앉아 있던 김경훈이 오클리(Oakley) 아이자켓 너머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이 한여름의 8월에도 불구하고, 톰 포드(Tom Ford) 스웨이드 재킷을 완벽한 핏으로 걸치고 있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냉방병 예방'도 '결계'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였다.)
"방금 소장님의 '지미 추(Jimmy Choo)' 힐 소리가 G# 삑사리를 냈습니다. 3억짜리 흥분에 '발목'이라는 악기가 튜닝 나갈 뻔했다고요."
"닥쳐! 3억이 눈앞인데 튜닝이 문제야? 당장 '검은 침묵' 시동 걸어!"
황 소장이 자신의 프라다(Prada) 갤러리아 백을 움켜쥐었다.
"대구 시내 재개발 구역, '신세계 빌라' 한 동 전체가 '조율' 대상이야! 집주인이 건물 통째로 리모델링해서 팔아 치우려는데, '고객님'들 때문에 공사가 진행이 안 된대! 이번에 성공하면, 내가 너... 그... 로로 피아나 코트, 겨울용으로 한 벌 더 사줄게!"
"...'베이비 캐시미어'로 말입니까?"
"그래, 인마! 가자!"
김경훈의 입꼬리가 '석학'의 미소로 올라갔다.
"황 보. 그건 '망치'가 아니라 '조율'입니다. '영적 균형 학회 4대 석학'의 사명입니다."
"그래, 사명이고 나발이고, 가서 3억 받아 와!"
2.
김경훈의 '검은 침묵', 테슬라 모델 X가 낡은 '신세계 빌라' 앞에 소리 없이 멈춰 섰다.
'슈우욱-'
우아한 '도(C)' 음을 내며 팔콘 윙 도어가 열렸다.
[팀장님! 3억이면... 소고기가 몇 마리예요?]
샛노란 니트를 입은 탱고가 '소년'의 모습으로 뛰어내렸다. 덮수룩한 크림색 머리카락이 신나게 흔들렸다.
"탱고, 넌 소고기 생각뿐이군. 훌륭한 '멍멍'이다."
"시끄럽고! 집중해!"
황 소장의 '지미 추' 힐이 낡은 빌라의 콘크리트 바닥을 '또각' 하고 울렸다. 그녀의 화려한 금발과 프라다 백은 이 퀴퀴한 곰팡이 냄새나는 F 마이너 풍경과 지독한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었다.
"빌라 전체가 이 모양이야. 1301호가 제일 심하다니까, 거길 '조율'하면 나머지도 조용해진대."
1301호 현관문은 낡은 철문이었다.
김경훈이 튜닝 로드(흰 지팡이)로 철문을 '탁' 쳤다. '퍽'. 젖은 나무토막 소리가 났다.
"흠. '파동'이 엉망이군요. F 마이너 스케일입니다. 아주 우울한 코드예요."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선 순간, 축축한 냉기가 톰 포드 스웨이드 재킷을 파고들었다.
"어...? 뭐야?"
황 소장이 실망한 듯 중얼거렸다.
"3억짜리라더니... 그냥 춥기만 하잖아? G# 삑사리도 없고, 뭐 날아다니는 것도 없고..."
[팀장님. 파동이... 아주 약해요. 어제 사무실에서 만난 E-Class '미도 여관' 고객님보다 약한데요?]
탱고가 샛노란 니트 소매로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알고 있어."
김경훈이 '블레이드'(소리굽쇠)를 꺼내 들었다.
"고객님. A/S 접수됐습니다. 뭐가 불만이십니까? 보일러가 고장 났습니까? 아니면 '조율'이 아니라 '인테리어'가 필요하신 겁니까?"
그가 '블레이드'를 튕기려던 순간이었다.
어둠 속, 가장 곰팡이가 심하게 핀 안방 벽 쪽에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분노'나 '슬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경악'과 '공포'의 파동이었다.
'... 안 돼... 안 돼...!'
"고객님?"
'... 오면 안 돼... '관찰자'가... '수습 요원'이 여기 오면 안 돼...!'
"관찰자?"
김경훈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고객'의 공포에 질린 파동이 정확히 한 방향을 향했다.
김경훈도, 황 소장도 아닌.
"... 저기... 노란... 노란 옷...!"
"네?"
탱고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샛노란 니트.
"저... 저요?"
'... 맞아! '저승 관리국 이탈 영혼 관리 담당'! '보호 관찰관'! 저승사자다!'
3.
순간, 1301호의 모든 '파동'이 탱고에게로 집중되었다.
"뭐? 저승사자? 탱고가?"
황 소장이 기가 막힌다는 듯, 자신의 까르띠에 시계와 탱고의 순진한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김 팀장, 쟤(고객)가 지금 헛소리하는 거지? 우리 탱고는 그냥... 소고기 좋아하는 앤 데?"
하지만 김경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의 선글라스 아래, 입꼬리가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의 이어폰으로, 탱고의 심장이 미친 듯이 '쿵쿵'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티, 팀장님...! 쟤, 쟤... 저를 알아봐요! 어떡해요! 이거 '규정 위반'이에요!]
탱고가 당황한 나머지, 머리에 쓴 모자(강아지 귀를 숨기기 위한)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그 바람에, 모자 뒤편으로 숨겨져 있던 크림색 강아지 귀 한쪽이 '쫑긋' 하고 튀어나왔다.
"......"
황 소장이 그 '귀'를 보고 눈을 비볐다.
"탱고."
김경훈이 '블레이드'를 내리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석학'의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저 고객님 말씀... '규정 위반'이라고?"
'... 그, 그래!'
'고객'의 목소리가 공포에 질려 외쳤다.
'저놈은 '관찰자'야! 이 구역을 망가뜨린 '버그(Bug)'를 감시하러 온 놈이라고!'
"버그?"
황 소장이 되물었다.
'그래! 14살 때 '시스템 오류'로 돌아온 놈! '반(半) 영적 존재'! 너!'
'고객'의 파동이 이번에는 탱고가 아닌 김경훈을 정확히 겨누었다.
"......"
김경훈의 14살 사후체험(NDE). 후천적 시각장애.
저승에 갔다가 시스템 오류로 '반(半) 영적 존재'가 되어 돌아온 것.
그것이 '버그'였다.
'네놈이 '버그'를 일으켜서 이승과 저승의 '주파수'가 엉망이 됐어! 그래서 나 같은 '고객'들이 '문'을 못 찾고 있다고! 그런데 '관찰자'(탱고)까지 나타났으니... 우린 다 죽었어! 저놈이 우릴 '수습'하러 온 거야! '축출'보다 더 무서운 '삭제'야!'
'고객'은 자기가 한 말에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끄아악!' 하는 비명과 함께 F 마이너 파동을 터트리며 1301호에서 도망치듯 사라졌다.
... 뚝.
3억짜리 빌라 한 동을 울리던 '불협화음'이 그 '고객'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적이 찾아왔다. 3만 원짜리 E-Class 현장보다 더 깨끗하게 '조율'되어 버렸다.
"... 뭐야?"
황 소장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 3억... 날아간 거야?"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샛노란 니트 차림으로 덜덜 떨고 있는 탱고를 바라보았다. 강아지 귀는 이미 모자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어... 팀장님. 그게... 소고기...]
탱고가 울먹이며 말했다.
김경훈은 대답이 없었다.
그는 톰 포드 스웨이드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오클리 선글라스 너머로 탱고가 서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의 이어폰에서 '삑-' 하는 '고객'과의 연결이 끊겼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김경훈의 입꼬리가 평소의 익살스러운 미소가 아닌, 차갑고 날카로운 '석학'의 미소로 올라갔다.
"탱고."
"......"
"저승 관리국 이탈 영혼 관리 담당."
"......"
"나의 14살 '버그'를 위한 '보호 관찰관'."
김경훈이 '블레이드'를 탱고의 샛노란 니트 앞에 가볍게 겨누었다.
"자, '조율' 한번 해볼까. 우리 '파트너'?"
(에피소드 3.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