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의 가장 어려운 점은 대상이 '고객(영혼)'이 아닐 때 발생한다.
파동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나, 인간(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은 거짓말을 한다. '불협화음'의 근원이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을 때, 튜너(Tuner)는 자신의 '블레이드'를 스스로에게 겨눠야 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 물론, 나는 그런 적 없다. 나는 완벽하니까.
- 영적 균형 학회 4대 석학, 김경훈.
「조율과 축출에 관한 소고 - 개정판 서문」 (자가 출판, 2025년) 31쪽.
## 에피소드 4. 3억 원짜리 '버그' A/S
1.
김경훈의 '검은 침묵', 테슬라 모델 X가 칠흑 같은 정적 속을 미끄러지듯 달렸다.
평소라면 황 소장의 'G# 삑사리'(잔소리)나 탱고의 '소고기' 타령으로 시끄러웠을 내부는, 그 이름(검은 침묵) 그대로였다.
황 소장은 조수석에 앉아, 프라다(Prada) 갤러리아 백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톱만 물어뜯고 있었다. 그녀의 화려한 금발 웨이브는 아까의 충격으로 평소의 완벽한 컬을 잃고 헝클어져 있었다. 그녀의 지미 추(Jimmy Choo) 힐이 1초에 세 번씩 바닥을 '타-타-탁' 두드리는 소리만이, 그녀의 패닉을 증명했다.
김경훈은 운전석(물론 FSD가 운전 중이지만)에 앉아, 아이자켓을 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뱅앤올룹슨(Bang & Olufsen) 이어폰에서는 평소처럼 A-440Hz의 표준음이 재생되고 있었다. 3억짜리 '버그' 파동으로 오염된 귀를 '조율'하는 중이었다. 그의 입꼬리는 굳게 닫혀 있었다.
뒷좌석.
탱고는 '소년'의 모습 그대로였다. 황 소장이 사준 샛노란 니트를 입고, 덮수룩한 크림색 머리카락이 축 처진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는 감히 소리 내어 숨도 쉬지 못했다.
사무실 지하 주차장에 '검은 침묵'이 멈췄다.
'슈우욱-'
우아한 '도(C)' 음을 내며 팔콘 윙 도어가 열렸지만, 아무도 감탄하지 않았다.
"..."
"..."
"..."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황 소장이었다.
그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비틀거리며 주차장 기둥을 붙잡았다.
"3억..."
그녀의 목소리는 F 마이너보다 더 우울했다.
"3억... 날아갔어..."
2.
[황 보 부동산 컨설팅] 사무실.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사무실에 세 사람이 들어섰다.
황 소장이 사무실 중앙에 주저앉듯 스르륵 무너졌다.
"3억... 내 3억..."
"황 소장님."
김경훈이 톰 포드 스웨이드 재킷을 벗어 소파에 던지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A-440Hz의 표준음처럼 차갑고 건조했다.
"지금은 '손익계산'이 아니라 'A/S'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사무실 입구에서 꼼짝도 못 하고 서 있는 탱고를 '바라보았다'.
"탱고."
"... [네, 팀장님.]"
탱고의 목소리는 이어폰이 아니라, 떨리는 육성으로 들려왔다.
"앉아."
김경훈이 소파 건너편 의자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탱고는 마치 '앉아' 훈련을 받은 개처럼, 샛노란 니트 차림으로 쭈뼛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뭐, 뭐 하는 거야, 김 팀장..."
황 소장이 넋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3억 날아갔는데... 쟤... 쟤 '츄르' 예산 삭감하는 거야? 그걸로 되겠어?"
김경훈은 황 소장의 말을 무시했다. 그는 '블레이드'(소리굽쇠)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튕기지는 않았다. 그는 '블레이드'의 뾰족한 끝을 탱고의 샛노란 니트, 정확히는 심장이 뛰고 있는 곳을 향해 겨누었다.
"자."
김경훈의 선글라스 아래, 입꼬리가 차갑게 올라갔다.
"긴급 A/S 접수한다. '고객명', 탱고. 직함, '저승 관리국 이탈 영혼 관리 담당' 겸... 나의 '보호 관찰관'."
"[...]"
탱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크림색 머리카락 아래로, 모자 속의 '귀'가 공포로 쫑긋 튀어나올 뻔했다.
"첫 번째 민원. 나의 14살 '버그'. 그게 정확히 뭐지?"
"[... 팀장님... 그건... '관리국 규정'상...]"
"규정?"
김경훈이 '블레이드'를 한 뼘 더 다가갔다.
"'자가 출판 서문 31쪽'. '파동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나, 인간(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은 거짓말을 한다'. 네 '파동'은 지금 '공포'로 F 마이너 스케일을 연주하고 있어, 탱고. 똑바로 말해."
"[... 그, 그냥... 시스템 오류였어요! 팀장님이 14살 때 저승 게이트를 통과했는데... '반품' 처리 과정에서 '배송 오류'가 났어요! 그래서...]"
"그래서?"
"[... 저승의 '파동' 일부를 '다운로드'한 채로 이승에 '재설치'되셨어요! 그게 '버그'예요!]"
"하."
김경훈이 냉소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기가 막힌 'A/S'로군. 그럼 난... '불량품'인가?"
"아니! 잠깐만!"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황 소장이, 이 말도 안 되는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녀의 '자본주의' 뇌가 뒤늦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잠깐, 김 팀장! 너, 너... '버그'라고? '불량품'? 혹시... 그거... 14살 때 그 의료사고! 그거 저승 관리국 걔네가 한 짓이야? '배송 오류'? 이거... '보험금'... 보험금 더 받을 수 있어?!"
"황 소장님. 지금 '보험금'이 문제가 아닙니다."
"왜 아니야! 3억이 날아갔는데! 야! 너, 멍멍이! 아니, 관찰자!"
황 소장이 탱고에게 소리쳤다.
"너네 '관리국' 대표 전화번호 뭐야! 당장 연결해! 3억짜리 '정신적 피해보상' 청구할 거니까!"
"[히익!]"
탱고가 황 소장의 기세에 눌려 의자 뒤로 넘어갈 뻔했다.
3.
"황 보."
김경훈의 목소리가 사무실의 공기를 얼렸다.
그는 처음으로 황 소장을 '소장님'이 아닌, '황 보'라고 불렀다.
"......"
황 소장의 '하이 C' 옥타브가 순간 멎었다.
"두 번째 민원이다, 탱고."
김경훈이 황 소장을 무시하고 다시 '블레이드'를 탱고에게 겨누었다.
"그 '버그' 때문에, 내가 '영적 조율'을 할 수 있게 된 건가?"
"[...]"
"대답해. 나의 '조율(Tuning)'... 내가 '영적 균형 학회 4대 석학'으로서 쌓아 올린 이 모든 기술... 이것도 '버그'의 일부인가?"
이것이 김경훈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의 자존심. 그의 '결계'. 그의 '존재 이유'였다.
탱고는 '블레이드'의 뾰족한 끝과, 선글라스 너머의 차가운 분노 사이에서 덜덜 떨었다. 샛노란 니트가 땀으로 축축해지는 것 같았다.
"[... 아, 아니요!]"
탱고가 겁에 질려 외쳤다.
"['조율'은... '조율'은 팀장님 고유의 '버그'예요!]"
"뭐라고?"
"[원래 이승엔 없는 기술이라고요! '축출(망치)' 아니면 '방치'밖에 없는데... 팀장님이 '버그'로 저승의 '표준 주파수(A-440Hz)'를 훔쳐 와서... 멋대로 '고객'들을 '조율'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그게 원래대로라면 시스템을 더 망가뜨리는 '초대형 버그'인데...!]"
"그런데?"
탱고가 울먹이며 말했다.
"[... 근데... '조율'이... 효과가 너무 좋았어요... '망치'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민원'을 처리했어요... 그래서 '관리국'에서도... '이 버그는 일단 지켜보자'고... 그래서 제가 '관찰자'로 파견된 거예요! 팀장님이 '버그'로 저승 시스템까지 망가뜨릴까 봐... 감시하러...]"
... 뚝.
정적이 흘렀다.
김경훈이 '블레이드'를 천천히 내렸다.
그의 '조율'은 불량품이 아니었다.
그의 '조율'은 '버그'가 맞지만, 기존 시스템을 뛰어넘는... '초대형 혁신'이었다.
김경훈의 입꼬리가, '석학'의 차가운 미소가 아닌... 평소의 '익살스러운' 미소로 천천히 돌아왔다.
"하."
그가 톰 포드 재킷을 다시 입으며 말했다.
"'고유의 버그'라. '혁신'이라고 불러주지, 탱고. 역시... 나는 '4대 석학'이 맞았어."
"[네...?]"
"아, 몰라!"
그때, 상황 파악을 끝낸 황 소장이 바닥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자본주의' 뇌가 다시 풀가동되기 시작했다.
"3억 날아간 건 날아간 거고! 야! 탱고! 너, '저승 관리국' 직원이라며?"
"[네, 네!]"
"그럼 너네 '관리국', 부동산 필요 없어? 이승 지부 같은 거! 이 사무실 어때? 월세 300에 50! 아니, 너네한텐 500에 50! 내가 '저승' 물가로 특별히 맞춰줄게! 계약서 가져와!"
황 소장이 자신의 프라다 백에서 주섬주섬 계약서를 꺼내기 시작했다.
김경훈이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조율'의 길은 멀고도 험하군."
[팀장님...]
탱고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 그래서... 제 츄르 예산 삭감은... 아니죠...?]
김경훈이 탱고의 덮수룩한 크림색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가자, 탱고. 3억은 날아갔지만... 3천만 원짜리 '예술'이 아직 우릴 기다리고 있다."
(에피소드 4.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