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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HellP Desk

헬프 데스크 Ep.5

by 김경훈


'축출'이 '망치'라면, '구마(Exorcism)'는 '사이렌'이다.


그들은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맹렬한 소음(라틴어, 기도문, 성수)을 울려대며, '고객'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이웃'을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고객'은 그 소음이 무서워서 도망갈 뿐, '조율'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김없이 '헌금'이라는 이름으로 '조율비'보다 더 비싼 금액을 요구한다. 심지어 부가세도 떼지 않는다.


- 영적 균형 학회 4대 석학, 김경훈.

「조율과 축출에 관한 소고 - 개정판 서문」 (자가 출판, 2025년) 15쪽.



## 에피소드 5. 성수(Holy Water)와 톰 포드(Tom Ford)의 불협화음


1.


"3억 날아간 건 3억이고, 이건 500이야!"


[황 보 부동산 컨설팅] 사무실.

지난밤 '버그'의 충격(에피소드 4)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황 소장이 다시 '자본주의' 모드로 복귀해 있었다. 그녀의 화려한 금발 웨이브는 오늘따라 더욱 맹렬하게 컬이 잡혀 있었다.


"김 팀장! 3억 날아간 거 메꾸려면 '서양 고객'도 받아야겠어! '조율'에 국경이 어딨어? 안 그래?"


"황 보."


소파에 앉아 있던 김경훈이 아이자켓 너머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오늘, 톰 포드(Tom Ford) 스웨이드 재킷을 완벽한 핏으로 걸치고 있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냉방병 예방'도 '결계'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였다.)


"그건 '조율'이 아니라 '영업'입니다. 그리고 제 '자가 출판' 서문 15쪽에도 나와있듯, '서양 고객'들은 '망치'가 아니라 '사이렌'을 선호합니다. 아주... 시끄럽죠. 제 뱅앤올룹슨 이어폰 성능을 시험하게 될 겁니다."


"시끄럽든 말든! 500만 원짜리야! 대구 시내 오래된 양옥집인데,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래! 3억에 비하면 껌이지만, 이게 어디야! 탱고! 너도 '관찰자' 티 내지 말고, '인턴'인 척해! 그 니트, 구기지 말고!"


[네... 팀장님... '폴터가이스트'면... 서양 고객이잖아요...]

샛노란 니트를 입은 탱고가 크림색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물었다.

[... 혹시... '비프 웰링턴' 같은 거 먹을 수 있어요?]


"가자, 탱고. 오늘은 '사이렌' 환자분이 얼마나 시끄러운 G# 삑사리인지 '관찰'해 보지."

김경훈의 입꼬리가 '흥미로운 환자'를 만난 듯, 괴짜 의사처럼 올라갔다.



2.


김경훈의 '검은 침묵', 테슬라 모델 X가 낡은 양옥집 앞에 소리 없이 멈춰 섰다. '슈우욱-' 팔콘 윙 도어가 열렸다.


[팀장님! 냄새! 이상한 냄새나요! 곰팡이 냄새... 아니고, 향초? 냄새?]

"그래. '유향(Incense)' 냄새로군. 아이고, '환자'분이 이미 도착했어."


아니나 다를까, 낡은 양옥집 현관문 앞에서 30대 초반의 한 여성이 서 있었다.

화려한 황 소장이나, 값비싼 '결계'를 두른 김경훈과는 정반대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식 하나 없는 검은색 수녀복(Habit). 화장기 없는 차가운 얼굴. 얼음장 같은 '파동'을 가진 여자.


대구 대교구 소속 구마 사제, 채 안젤라 수녀였다.


"......"


채 안젤라 수녀는 톰 포드 스웨이드 재킷을 입은 김경훈과, 지미 추(Jimmy Choo) 힐을 신은 황 소장, 그리고 샛노란 니트를 입은 탱고를 보고, 아무 말 없이 십자가를 그었다. 그녀의 눈은 '이교도' 혹은 '사기꾼'을 보는 눈이었다.


"어머! 수녀님! 먼저 와 계셨네요!"

황 소장은 이 '종교적 불협화음' 따위엔 1%도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자본주의' 미소를 지으며 프라다(Prada) 백에서 명함을 꺼냈다.

"저희는 '황 보 부동산'... 아, '헬프 데스크'입니다! 이쪽은 저희 '수석 조율사'..."


"필요 없습니다."


안젤라 수녀가 명함을 밀어냈다. 그녀의 목소리는 F 마이너보다 더 낮고 차가운 D 마이너(Dm)였다.


"이곳은 '조율'이나 '상담'이 필요한 곳이 아닙니다. '정화(Purification)'가 필요한, '악(Evil)'의 현장입니다."


"아... '악'요...?"

황 소장이 '악'과 '500만 원' 사이의 연관 관계를 따분하다는 듯 계산하고 있을 때였다.


—콰당!—


2층 창문에서 화분이 저절로 떨어져 박살이 났다!


"아, 진짜!"

황 소장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격렬하게 '짜증'을 냈다.

"저거! 저거 유리창 깨지면 500만 원에서 깐다, 김 팀장!"


안젤라 수녀는 황 소장의 '극사실주의' 반응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성수통을 쥐었다.

"보십시오. '악'이 반응하고 있습니다."


김경훈이 선글라스 너머로 '소리'가 난 2층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영적 미소로 올라갔다.


"아이고, '사이렌' 환자님. 그게 아닙니다. 방금 저 '고객님(폴터가이스트)' 파동은 '분노'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짜증'에 가까운 G# 삑사리였죠."


"뭐라고요?"


"저 '고객님'은... 수녀님의 저 'D 마이너' 파동이 너무 시끄럽고 '불협화음'이라서 '짜증'이 나신 겁니다. '조용히 좀 하라'는 민원이죠."


"궤변!"


안젤라 수녀는 김경훈을 '악마의 협력자'로 판단한 듯, 그를 '정화'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2층이 아닌, 김경훈을 향해 성수통을 맹렬하게 뿌렸다.


"Exorcizamus te, omnis immundus spiritus!" (우리는 너, 모든 더러운 영을...)


"아!"

황 소장이 소리쳤다. "아니, 저 수녀님이...!"


... 촤악!


성수가... 김경훈의 얼굴이 아닌, 그의 톰 포드 스웨이드 재킷 정중앙을 강타했다.



3.


"......"


순간.

안젤라 수녀의 '사이렌'도, 2층의 '폴터가이스트'도, 탱고의 '소고기' 생각도... 모든 것이 멎었다.


김경훈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보이지' 않았지만, 완벽하게 '느껴졌다'.


따뜻하고 부드러워야 할 톰 포드 스웨이드 가죽이 축축하고 차가운 '성수'에 젖어... 딱딱하게 굳어가는 '파동'.


[티... 팀장님... 냄새가... '양가죽' 젖은 냄새... 나요...]

탱고가 울먹이며 속삭였다.


"어머, 수녀님."


이 정적을 깬 것은 황 소장의 '극사실주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김경훈의 '파동' 따위엔 관심도 없었다.


"저 재킷... 톰 포드 스웨이드. 못해도 100만 원은 할 텐데."

황 소장이 까르띠에(Cartier)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따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성수'... 혹시... '보험' 처리 돼요?"


"황 보."


김경훈의 목소리는 D 마이너보다 더 낮은 심해와 같은 'B 플랫 마이너(B♭m)'였다.


"네, 네...?"


"500만 원짜리 '진료'에... 100만 원짜리 '기물 파손'이 추가됐네요."


김경훈이 선글라스 너머로, 안젤라 수녀가 서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익살'도, '분노'도 아닌, '환자'를 진찰하는 차가운 '의사'의 미소로 올라갔다.


"아이고, '사이렌' 환자님. '진찰'도 전에 제 '주사기(재킷)'를 망가뜨리시면 어떡합니까."


김경훈이 '블레이드'를 튕겼다.


피이이이이잉—.


평소보다 반음 정도 높고, 날카로운 A# (A-Sharp)이었다.


"자, 2층 '고객님' A/S 전에... '사이렌' 환자분부터 '긴급 조율(비타민 주사)' 들어갑니다."



(에피소드 5.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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