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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HellP Desk

헬프 데스크 Ep.8

by 김경훈


'망치'는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파동'은 '상품'일뿐, '화음'이 아니다. 'G#' 삑사리가 나는 그들의 손에 3천만 원짜리 '예술'을 맡기는 것은 로로 피아나 캐시미어 코트를 공업용 세탁기에 돌리는 것과 같은 '야만'이다.


그리고 나는 방금, 내 톰 포드 재킷을 잃었다. 더 이상의 '야만'은 용납할 수 없다.


- 영적 균형 학회 4대 석학, 김경훈.

「조율과 축출에 관한 소고 - 개정판 서문」 (자가 출판, 2025년) 19쪽 (긴급 증보판).



에피소드 8. 한우 오마카세와 3천만 원의 상관관계


1.


쾅!


차승목이 'G# 삑사리'를 내지르며 사무실을 뛰쳐나간 직후였다.


"...... 망했다. 3억 날아간 것도 모자라서, 이제 걸어 다니는 '망치'한테 '버그'까지 들켰어..."

황 소장이 프라다(Prada) 백을 쥔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화려한 금발 웨이브가 절망으로 축 처졌다.


[팀장님... 어떡해요... '관리국'에서 알면... 저 '삭제'당해요...]

샛노란 니트를 입은 탱고가 울먹였다.


"괜찮습니다."


김경훈이 로로 피아나(Loro Piana) 황금색 코트 깃을 여미며 '검은 침묵'의 키를 챙겨 들었다. 그의 아이자켓 너머, 입꼬리가 날카롭게 올라가 있었다.


"그는 '버그'가 뭔지 모릅니다. 그냥 '시끄러운 환자'일뿐이죠. 황 보."

"... 왜."

"3천만 원짜리 '아이돌' 건. 지금 당장 가야겠습니다."


김경훈의 입꼬리가 미소로 바뀌었다.


"그 '망치 환자'가 먼저 도착해서, 3천만 원짜리 '예술(F 마이너 환자)'을 망가뜨리기 전에."


김경훈의 테슬라 모델 X '검은 침묵'이 소리 없이 대구 도심을 미끄러지고 있었다. FSD(자율주행)가 완벽하게 차선을 유지하는 동안, 황 소장은 조수석에서 미친 듯이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버그'의 노출 따위는 잊은 듯, 오직 3천만 원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아, 대표님! 네, 네! 황 보입니다! 아이고, '다른 컨설턴트'요? 에이 그 사람 '망치'예요, 망치! 'G-Shop'인지 뭔지... 네? '축출' 전문? 그거 다 사기예요! 저희 '조율사'가... 아니, '수석 주치의'가 지금 갑니다! 3분! 아니, 1분이면 도착합니다! 절대, 절대 문 열어주지 마세요!"


황 소장이 전화를 끊고 까르띠에(Cartier) 시계를 확인했다.


"젠장! 차승목, 그 'G# 삑사리' 자식이 벌써 선수 쳤어! 김 팀장! '검은 침묵' 이거, 더 빨리 못 가? '루디크러스 모드'인가 뭔가 그거 틀어!"

"황 보. '조율'은 침착해야 합니다. 'FSD'는 저보다 침착하죠."


[팀장님.]

뒷좌석에서 샛노란 니트를 입은 탱고가 크림색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물었다.

[만약에요... 우리가 차승목 아저씨보다 먼저 '조율'에 성공하면요...]


"성공하면?"


[... 3천만 원이면... 혹시... '한우 오마카세' 같은 거... 먹을 수 있어요?]


황 소장이 탱고를 노려보려다, 3천만 원이라는 말에 표정을 풀었다.

"... 그래! '망치' 놈 이기고 3천만 원 받아오면, 내가 너... 그... 한우 오마카세고 뭐고, 그냥 소 한 마리를 통째로 사준다! 됐냐!"

[와! 소 한 마리!]


탱고의 모자 속에서 숨겨둔 '귀'가 기쁨으로 쫑긋 튀어나왔다.

김경훈이 이어폰 너머로 나직이 말했다.


"가자, 탱고. '예술'과... '소고기'를 구하러."



2.


대구 동성로 한복판의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빌딩.

'검은 침묵'이 소리 없이 지하 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황 소장의 지미 추(Jimmy Choo) 힐이 '또각, 또각' 초조한 템포로 복도를 울렸다.


우리를 맞이한 것은 'A&R 총괄'이라는 직함을 가진, 목소리부터 피곤에 찌든 남자였다.

그는 김경훈의 선글라스와 로로 피아나 코트, 그리고 탱고의 샛노란 니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 황 소장님이 보낸 분들... 맞으시죠?"

"헬프 데스크 수석 영적 조율사, 김경훈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제 어시스턴트, 탱고입니다."

"안녕하세요! 소고기! 아니, 조율 좋아해요!"

"......"


남자의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파동이 느껴졌다.


"방금... 'G-Shop'인지 뭔지 하는 분도 전화가 왔..."

"사기꾼입니다."

"사기꾼입니다!"


김경훈과 황 소장의 목소리가 완벽한 '화음'으로 겹쳤다.

총괄 팀장이 기에 눌린 듯 입을 다물고 우리를 7번 연습실로 안내했다.


'끼익-'


문이 열리자, 안쪽에서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땀 냄새가 섞여 나왔다.


[팀장님.]

"그래."

[G# 삑사리 정도가 아니군요. 이건... F 마이너(Fm) 스케일입니다. 아주 우울한 코드예요.]


나는 튜닝 로드(흰 지팡이)로 바닥을 짚으며 들어섰다. '툭, 툭.' 소리가 울리지 않고 바닥에 박혔다.

"방음재가 과하군요. 소리가 숨을 못 쉽니다."


방 한가운데, 19살쯤으로 보이는 소녀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녀의 심장이 '쿵쿵' 울리는 소리가 내 귀에는 선명했다.


"인사드려, 이나야. 이분들이... 도와주실 분들이다."

"아... 안녕하세요. 김이나입니다."

"김경훈입니다."


총괄 팀장이 울상으로 말했다.

"저희 데뷔조 메인 보컬입니다. 근데... 이나가 녹음만 하면, 꼭... 다른 목소리가 같이 들립니다. 기계가 터지고요. 저기... 박살 난 스피커 보이시죠?"


김경훈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300만 원짜리 스튜디오 모니터로군요. 안타깝습니다."


"총괄 팀장님, 잠시 나가 계시죠. '환자'와의 1대 1 상담 시간입니다."

"네? 환자...?"

"3천만 원짜리 '진료'입니다."


총괄 팀장이 입을 다물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고, 방 안에는 나와 탱고, 그리고 이나 양, 셋만 남았다. 아니, 넷이었다.



3.


"좋습니다." 나는 백팩에서 '블레이드'(소리굽쇠)를 꺼냈다. "자, 이나 '환자'님. 그 문제의 노래. 한번 불러보시죠."


"지, 지금요? 여기서요?"

"네. 제가 '청진'을 해야 '조율'을 하죠. 탱고. 녹음 준비."

[네? 팀장님, 저 아이폰 녹음 앱 어떻게 켜는지 모르는데...]

"그냥 들어!"


이나 양이 심호흡을 했다. '후우-'

그리고 그녀가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


"아름다웠던... 우리..."


"멈춰요."

내가 즉시 제지했다.


"네? 왜... 왜요?"

"음정이 틀렸습니다."

"네?!"

"아니, 이나 양 말고요."


나는 연습실 구석, 전신 거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튜닝 로드로 거울을 '탁' 쳤다.

'쨍-'

맑아야 할 유리 소리가 '퍽' 하고 젖은 나무토막 소리를 냈다.


"거기, 거울 속에 계신 '환자 1호'님. 방금 이나 '환자 2호'님이 '미(E)' 음을 낼 때, 정확히 반음 낮은 '미 플랫(E♭)'으로 훼방을 놓으셨습니다. 덕분에 완벽한 불협화음이 됐군요. 의도한 겁니까?"


"...!"


이나 양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탱고가 내 뒤로 바싹 붙었다.


거울에서 '지직...' 하는 소리가 났다. 마치 고장 난 마이크 소리 같았다.

'... 내... 노래...'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형적인 저작권 분쟁이군요."

"네? 저작권이요?" 이나 양이 되물었다.


"이봐요, '환자 1호'님." 내가 거울을 향해 말했다. "그 노래가 당신 거라고 주장하시는 겁니까? 혹시 작곡가 협회에 등록은 하셨고요?"


'... 내... 노래야... 그... 계집애... 훔쳤어...'


[팀장님! 거울! 거울에서 손이!]

탱고가 내 로로 피아나 코트를 잡아당겼다.


나는 튜닝 로드를 고쳐 잡았다.

"이나 양. 이 노래, 혹시... 표절입니까?"

"아, 아니에요! 제가... 제가 쓴 곡이란 말이에요!"


'거짓말!'


—콰아아앙!—


거울 반대편 벽에 있던 대형 모니터 스피커(이미 박살 난 것 말고, 남은 한 쪽)가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그대로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팀장님!"

탱고가 샛노란 니트 차림으로 나를 밀치고 앞으로 나섰다.


"이런! 300만 원 추가 손해! '비타민 주사'가 시급하..."


쾅—!


탱고가 주먹으로 스피커를 받아치려던 순간이었다.

연습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어이쿠! '장님 전파사'! 3천만 원짜리 '상품'은 '망치'로 다스려야지, '소리굽쇠'로 간지럼 태우면 쓰나!"


기름진 포마드, 베르사체 셔츠, 그리고 'G# 삑사리' 향수.

'망치' 차승목이 김경훈보다 한발 늦게, 그리고 최악의 타이밍에 도착했다.



(에피소드 8.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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