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내용: 황 소장이 3,900만 원짜리 계약서로 차승목을 제압했다. 김경훈은 이 '집단 상담' 현장에서 'F 마이너 환자(고객)'의 '조율'을 선언했다.)
## 에피소드 10. 3천9백만 원짜리 '프로듀싱' (feat. A-440Hz)
1.
"자, '망치' 환자님."
김경훈이 바닥에 주저앉은 차승목을 향해 '블레이드'(소리굽쇠)를 겨누었다. 그의 아이자켓 너머, 입꼬리가 '환자'를 다루는 의사처럼 즐겁게 올라갔다.
"황 '간호사'와의 '상담'은 끝나셨습니까? 1,500만 원 '정보 이용료'로 '합의' 보시겠어요, 아니면 3,900만 원 '손해배상' 청구서 받으시겠어요?"
"간... 간호사...?"
황 소장이 김경훈을 째려봤지만, 그녀 역시 차승목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
차승목은 기름진 포마드 머리가 땀에 젖은 채, '3,900만 원'의 공포와 '1,500만 원'의 굴욕, 그리고 '버그(Bug)'의 미스터리 사이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1,500... 내지! 낼게! 그... '버그'는... 잊어줄 테니까..."
"어머, 현명하시네."
황 소장이 따분하다는 표정으로 프라다(Prada) 백에서 카드 단말기(휴대용)를 꺼냈다.
"일시불이죠? 'G-Shop' 사업자 카드로."
차승목이 울며 겨자 먹기로 카드를 긁는 동안, '삑-' 하는 G# 삑사리 대신 '승인되었습니다'라는 'C 메이저'의 맑은 소리가 울렸다.
"자, '망치' 환자님. '진료' 끝났으니 퇴원하시죠."
김경훈이 튜닝 로드(흰 지팡이)로 문을 가리켰다.
"아, 그리고 'G# 삑사리' 파동, 조만간 'A-440Hz 주사' 맞으러 다시 오세요. '자가 출판 서문' 17쪽을 보니, 당신은 '만성 불협화음'입니다."
"이... 이 장님 전파사...!"
차승목은 1,500만 원과 3천만 원짜리 '상품'을 모두 잃고, '환자' 취급까지 받으며 연습실에서 쫓겨났다.
2.
쾅!
문이 닫히자, 연습실에는 다시 F 마이너(Fm)의 우울한 파동만 남았다.
"휴..."
황 소장이 한숨을 내쉬며 계산기를 다시 두드렸다.
"1,500은 벌었고... 이제 남은 2,400(3,900 - 1,500)만 '조율'하면 되겠네. 김 팀장?"
"물론이죠, 황 '간호사'님."
김경훈이 로로 피아나(Loro Piana) 코트 깃을 바로잡으며, 드디어 '진짜 환자'들을 마주했다.
구석에서 울고 있는 이나 양(환자 2호), 그리고 거울 속에서 당황과 분노의 'Fm' 파동을 내뿜는 '고객'(환자 1호).
"자, 'F 마이너' 환자님."
김경훈이 거울을 향해 '블레이드'를 겨누었다.
"방금 'G# 삑사리(차승목)'는 갔으니 안심하시고... '저작권 분쟁', 마저 상담해야죠."
'... 내... 노래... 훔쳤어...'
"아니에요! 제가 쓴 곡이란 말이에요!"
이나 양이 울먹이며 반박했다.
"아이고, 두 분 다 '파동'이 엉망이시네."
김경훈이 '블레이드'를 손바닥에 가볍게 튕겼다.
피이이이이잉—.
A-440Hz. 표준음 '라(A)'의 맑고 청아한 소리가 두 '환자'의 불협화음을 비집고 연습실에 울려 퍼졌다. 거울 속의 소음과 이나 양의 울음소리가 동시에 멈칫했다.
"이나 양. 그리고 거울 속 '환자 1호'님. 두 분 다 틀렸습니다."
"네?!"
이나 양이 되물었다.
"이건 '표절'이나 '빙의'가 아닙니다. 이건... '듀엣'입니다."
'... 듀... 엣...?'
"네. 음악을 너무 사랑했던 두 사람이 서로 '키(Key)'가 안 맞는 파트너를 만난 것뿐이라고요."
김경훈이 '블레이드'를 지휘봉처럼 고쳐 잡았다.
"그래서 2천4백만 원짜리 프로듀싱,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자, '환자 1호'님." 그가 거울을 향해 말했다. "당신은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음정이 반음 낮아요. 완벽한 '알토' 파트입니다. 그리고 이나 양은 맑은 '소프라노' 파트고요."
"당신은 이나 양이 '미(E)'를 부를 때 '미 플랫(E♭)'으로 방해하지 말고, '도(C)'를 불러 화음을 넣었어야죠. '영적 균형 학회'의 기본 이론도 모르십니까!"
'... 화... 음...?'
"네! '영적 조율' 이전에 '음악적 조율'이 시급합니다! 자, 이나 양! '미(E)' 음 준비!"
"네? 네!"
"환자 1호님! '도(C)' 음 준비! 제가 '라(A)'로 기준 잡아드립니다! A-440Hz! 제 '비타민 주사' 소리에 맞추세요!"
나는 다시 한번 소리굽쇠를 튕겼다.
"탱고! 넌 박자!"
[네? 저 박치... 아, 알겠습니다! 쿵, 쿵, 짝!]
샛노란 니트 차림의 탱고가 엉터리 비트박스를 입으로 흉내 내기 시작했다.
"자, 갑니다! '원, 투, 쓰리, 포!'"
내 사인이 떨어지자, 이나 양이 공포를 이겨내고 맑은 '미(E)' 음을 뽑아냈다.
"아름다웠던..."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거울 속에서 '지직'거리는 소음이 아닌, 낮고 허스키하지만 정확한 '도(C)' 음의 화음이 흘러나왔다.
'... 우... 리...'
두 개의 목소리. 맑은 소프라노(E)와 허스키한 알토(C).
'미'와 '도'가 만나, 완벽한 '장 3도' 화음을 만들어냈다.
연습실을 가득 채웠던 F 마이너의 우울한 '불협화음'과 축축한 냉기, '그르르륵'거리던 분노의 파동이... 눈 녹듯 사라졌다. 방음재가 숨을 쉬기 시작했다.
황 소장마저, '따분한' 표정을 멈추고 이 기묘한 '듀엣'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
이나 양은 울고 있었지만,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거울을 보며, 거울 속 파트너와 함께 노래를 이어갔다.
"... 우리..." (E)
'... 사랑...' (C)
거울에서 '지직'거리는 소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다만, 만족스러운 한숨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내 노래... 아니... 우리... 노래...'
거울을 '퍽' 하고 치던 젖은 나무토막 같던 소리가 맑은 '쨍-' 소리로 돌아왔다.
'환자'의 '진료'가 완벽하게 끝난 순간이었다.
3.
"수고하셨습니다. '환자'분들, '진료' 끝났습니다."
나는 '블레이드'를 백팩에 집어넣으며, 엉망이 된 로로 피아나 코트 깃을 바로잡았다.
"저... 조율사님... 방금 그건...?"
"전형적인 '음악적 견해 차이'로 인한 불협화음이었습니다. 이제 그분은 '퇴원'하셨으니, 이나 양은 이 '듀엣' 버전으로 데뷔하시면 됩니다. 2천4백만 원짜리 곡입니다."
그때, 밖에서 기다리던 총괄 팀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 이게 다 무슨... 스피커가! 이나야, 너 괜찮...!"
그는 박살 난 스피커(600만 원)를 보고 경악했지만, 이내 이나 양의 평온하고 빛나는 얼굴을 보고 더 크게 놀랐다.
"이나야... 너...?"
"팀장님... 저... 곡... 곡 쓴 것 같아요. 완벽한... 듀엣곡이요!"
"뭐?!"
"자."
황 소장이 '따분한' 표정으로 총괄 팀장에게 다가갔다.
"A/S 완료됐습니다. '고객님'은 조율 완료. 기본 조율비 3천만 원에, 아까 그 '망치' 환자분이 망가뜨린 스피커 파손비 900만 원."
"네?! 9... 900이요?!"
"아, 1,500은 그 '망치'한테 받았으니, 2,400만 원 입금해 주시면 됩니다."
"......"
총괄 팀장은 이 '극사실주의' 계산서를 이해하려 애썼지만, 이나 양의 빛나는 얼굴을 보고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아, 잠깐."
김경훈이 황 소장을 막아섰다.
"방금 그 곡, '프로듀서' 비용은 별도입니다. '영적 균형 학회 4대 석학'의 프로듀싱 비용, 3천만 원 추가입니다."
"... 네?!"
"총 5,400만 원. 입금... 아, 잠깐."
황 소장이 김경훈을 째려봤다.
"김 팀장! 아까 차승목한테 1,500 뜯어냈잖아! 3천9백으로 퉁쳐! 얼른!"
"쯧. '예술'을 모르는 '간호사'로군요."
[팀장님.]
내 옆에서 샛노란 니트 차림의 탱고가 내 코트자락을 잡아당겼다.
그의 크림색 머리카락 아래, 순진한 눈이 반짝였다.
[그래서... 아까 그 소 한 마리... 마저 먹으러 가요?]
나는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3천9백만 원짜리 한숨을 내쉬었다. '조율'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에피소드 10.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