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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HellP Desk

헬프 데스크 Ep.12

by 김경훈


'조율'의 기본은 '듣는 것'이다. '고객'의 '불협화음'을 듣고, 그 '파동'의 근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가장 듣기 힘든 '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완벽한 '정적(靜寂)'이다.


그 '정적'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모든 '소음'을 집어삼킬 듯한 '완벽한 화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영적 균형 학회 4대 석학, 김경훈.

「조율과 축출에 관한 소고 - 개정판 서문」 (자가 출판, 2025년) 2쪽 (스승에 대한 유일한 언급).



에피소드 12. 4대 석학과 '정적(靜寂)'의 마에스트로


1.


[황 보 부동산 컨설팅] 사무실.

김경훈이 없었다.


그는 '채 안젤라(사이렌)'의 '성수 테러(Ep.6)'를 당한 톰 포드(Tom Ford) 스웨이드 재킷의 '긴급 복원'을 위해, KTX 특실을 끊어 서울 청담동으로 'A/S 출장'을 떠난 참이었다. '17살 충주 기숙사'의 '가난' 트라우마를 겪은 그에게, 100만 원짜리 '결계'의 손상은 '영업 손실' 이전에 '자아'의 붕괴였다.


"하암..."


'수석 조율사'이자 '4대 석학'이자 '3천9백만 원짜리 핵심 자산'이 사라진 사무실은 황 소장에게 '지미 추(Jimmy Choo)' 힐 한 짝을 잃어버린 것보다 더 따분했다.


그녀는 샤넬(Chanel) 트위드 재킷을 의자에 걸쳐두고, 타이트한 실크 블라우스 차림으로 책상에 엎드렸다. 그녀의 화려한 금발 웨이브가 고야드(Goyard) 서류 가방 위로 쏟아져내렸다.


"'신세계 빌라(Ep.4)' 3억 날리고, '아이돌(Ep.10)' 3천9백 벌고... 100만 원짜리 재킷 값 빼면... 아, 몰라. 시끄러워."

그녀는 '자본주의'의 현자 타임에 빠져, 따분한 표정으로 까르띠에(Cartier) 탱크 프랑세즈 시계의 초침만 바라보고 있었다.


[팀장님... 언제 와요...?]


김경훈의 소파를 차지한 탱고가 '소년'의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샛노란 니트를 입고, 김경훈의 책상 위에 놓인 아스텔 앤 컨(Astell&Kern) SP3000 플레이어를 만지작거렸다.


[팀장님 없으니까... '관찰'할 것도 없고... '소고기(Ep.11)'도 없고... 심심해요...]


"시끄러워, 탱고. 너도 그냥 '개' 폼으로 돌아가서 에르메스(Hermès) 하네스나 차고 잠이나 자. 그게 네 '본체'잖아."


바로 그 순간이었다.


... 스윽.


사무실 문이 열렸다.

'딸랑-' 하는 풍경 소리도, 'G# 삑사리(차승목)'의 '불협화음'도, 'F 마이너(고객)'의 '냉기'도 없었다.

소리도 없이 그저 '열렸다'.



2.


황 소장이 짜증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뭐야? 부동산 보러 오셨..."


그녀의 말이 멎었다.


사무실 입구에는 한 노인이 서 있었다.

'G# 삑사리(차승목)'의 기름진 포마드와 달리, 희끗희끗한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노인이었다.

'톰 포드(김경훈)'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낡았지만 손끝의 '촉감'만으로도 최고급 원단(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나 그 이상) 임을 알 수 있는 짙은 갈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그는 '고객'이 아니었다. '파동 이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그 반대였다.


[...!!]


탱고가 소파에서 튀어 올랐다. 그의 크림색 머리카락이 곤두섰고, 모자 속의 '강아지 귀'가 공포로 쫑긋 튀어나왔다.


[티, 팀장님...! (패닉) 팀장님이... 아니에요! 파동이... 파동이 없어요! 아니... 너무... 너무 완벽해요! 이건... '관리국'...?! 아니... '관리국'보다 더...!]


탱고의 '저승 관리국' 서버가 '감당(Handle)'할 수 없는 '파동'이었다.

그것은 '불협화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적(靜寂)'.

김경훈의 'A-440Hz'가 '흉내' 내고자 했던, '태평요술'의 '원본 코드' 그 자체였다.


"뭐... 뭐야... 당신..."

황 소장은 3억을 날렸을 때보다 더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꼈다.


노인은 황 소장의 '자본주의' 파동은 가볍게 무시하고, 사무실을 둘러봤다.

그의 시선이 김경훈의 책상, 마크 레빈슨(Mark Levinson) 헤드폰 앰프와 JH 오디오(JH Audio) 커스텀 이어폰 케이스에 잠시 머물렀다.


"허."

노인의 입에서, '자가 출판 서문' 2쪽에서나 들릴 법한, 맑지만 서늘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충주 기숙사'에서는 라디오도 없던 녀석이... 장비는 요란하군."

그가 14살 김경훈이 아닌, 17살의 '트라우마'를 정확히 짚어냈다.


"'듣는 법'을 가르쳤더니, '사는 법'을 배웠어."


노인이 고개를 돌려, 패닉에 빠진 탱고를 바라보았다.

"관찰자. 샛노란 옷이라. 튀는군."


"......!"

탱고는 자신의 정체를 한눈에 꿰뚫어 본 노인 앞에서 숨도 쉬지 못했다.


"그리고... 당신이로군."

노인이 이번에는 황 소장을 바라보았다.

"그 '3억짜리 버그'를 3천9백만 원으로 '계산'해내는... '황 보'. '자본주의 간호사' 역할인가."


"다, 당신... 우리를 어떻게...!"


노인은 황 소장의 고야드(Goyard) 가방을 지나쳐, 김경훈의 책상 위에 흩어져 있던 서류 뭉치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그중 한 장, '자가 출판 서문(Ep.1)'의 교정지를 집어 들었다.


"'영적 균형 학회 4대 석학'... '물론, 이따금 망치가 더 빠를 때도 있긴 하다'..."


노인이 종이를 내려놓고, 'G# 삑사리(차승목)'나 '사이렌(안젤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완벽한 '정적'의 파동으로 사무실 전체를 짓눌렀다.


"이 '버그(태평요술)' 녀석. 아주 시끄러워졌어."

노인의 입꼬리가 김경훈과 닮았지만 훨씬 더 서늘하게 올라갔다.


"'정적'을 가르쳤더니, '볼륨(A#)'을 높여놨군. 이러니 '윗집'에서 '경보'가 울리지."



3.


"다... 당신, 대체 누구야!"

황 소장이 지미 추 힐을 신은 채 뒷걸음질 쳤다.


노인은 대답 대신, 김경훈의 책상에서 몽블랑(Montblanc) 만년필(김경훈의 허세용 '결계' 중 하나)을 꺼내 들었다.

그는 '자가 출판 서문 1쪽'을 펼치더니, '망치가 더 빠를 때도 있긴 하다'라는 문장 위에 붉은 잉크로 가로줄을 '찍-' 그었다.


"......!"


그리고 그 옆에, 맑지만 서늘한 필기체로 '교정'을 보았다.


'망치는 망치일 뿐. 조율사는 집게를 든다.'


노인이 만년필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4대 석학에게 전하게."

노인이 '검은 침묵'이 주차된 지하 주차장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가 출판 2쇄 '교정' 보러, '스승'이 다녀갔다고."



(에피소드 12.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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