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격차'의 이면을 파고드는 문헌정보학 이론들
우리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덕분에 누구나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기 쉽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문헌정보학은 이 '정보 접근의 공평성'이라는 신화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정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이 정보로부터 체계적으로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문헌정보학은 정보 격차를 단순한 기술 접근성의 문제를 넘어, 복잡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분석합니다.
1. 보이지 않는 벽: '정보 빈곤'과 '틀 안의 삶'
이 분야의 가장 독보적인 연구자인 엘프레다 채트먼(Elfreda Chatman)은 소외 계층의 정보 행태를 심층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그녀는 '정보 빈곤(Information Poverty)'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이는 단순히 정보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보의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정보가 필요하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며, 정보원에 접근할 수단과 신뢰가 모두 차단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채트먼은 이 현상이 '틀 안에서의 삶(Life in the Round)'이라는 개념으로 더욱 공고해진다고 설명합니다. 특정 소외 집단(예: 저소득층, 이민자 커뮤니티 등)은 자신들만의 좁고 폐쇄적인 '틀' 안에서 살아갑니다. 이들은 내부 구성원들 간의 정보(일상적이고 구전되는)는 강하게 신뢰하지만, '외부 세계'의 정보(공공기관, 언론 등)는 불신하거나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깁니다.
이 '틀'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어막이 됨과 동시에, 새로운 기회나 필수적인 정보를 차단하는 '정보의 감옥'이 됩니다.
2. 정보 흐름의 통제: '게이트키핑'과 '상징적 폭력'
이러한 정보 소외는 어떻게 유지될까요? 카린 바질라이-나혼(Karine Barzilai-Nahon)의 '네트워크 게이트키핑(Network Gatekeeping)' 이론은 정보의 흐름이 누군가에 의해 '통제'된다고 봅니다.
과거에는 언론사나 사서가 이 '게이트키퍼(문지기)'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포털의 알고리즘, 플랫폼 정책, 혹은 정부의 검열 등이 보이지 않는 게이트키퍼로 작동합니다. 이들은 특정 정보는 통과시키고(Salience), 다른 정보는 걸러내거나(Filtering), 심지어 존재 자체를 숨깁니다(Hiding). 이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에게 필요한 정보가 차단될 수 있습니다.
스티븐 조이스(Steven Joyce)가 인용한 부르디외의 '상징적 폭력(Symbolic Violence)'은 이 문제를 더욱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정보 시스템이나 도서관이 사용하는 전문 용어, 복잡한 분류 체계, 심지어 위압적인 공간 분위기 자체가 특정 계층에게 "이곳은 네가 올 곳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는 물리적 폭력이 아닌 '상징'을 통한 폭력으로, 이들 스스로 정보 접근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3. 관계의 자본: '사회자본'과 '정보 마당'
그렇다면 정보 격차를 해소할 통로는 어디에 있을까요? 문헌정보학은 그 해답을 '관계'와 '맥락'에서 찾습니다.
린(Nan Lin)의 '사회자본론(Social Capital)'은 정보 획득이 '사회적 관계'라는 자본에 크게 의존함을 보여줍니다. 내가 직접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무엇을 아는 '누군가'를 알고 있다면 정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보 빈곤' 상태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회적 자본마저 빈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안이 등장합니다. 캐런 피셔(Karen E. Fisher)의 '정보 마당(Information Grounds)' 이론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정보를 찾으려고' 모인 곳이 아니라, 다른 목적(예: 진료 대기, 미용실, 버스 정류장, 동네 사랑방)으로 모였다가 '우연히' 정보를 주고받는 '사회적 공간'을 의미합니다.
이 '정보 마당'에서는 공식적인 정보 채널을 불신하는 사람들도, 신뢰하는 이웃이나 동료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핵심 정보를(예: 육아, 복지, 구직 정보) 공유하고 획득합니다.
결국 문헌정보학의 이 이론들은 정보 격차가 '컴퓨터 보급' 같은 기술적 처방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음을 역설합니다. 정보에서 소외된 이들의 삶의 '틀'을 이해하고, 그들의 '사회자본'을 존중하며, 일상 속에 스며든 '정보 마당'을 발견하고 지원하는 것. 이것이 문헌정보학이 제시하는 진정한 정보 복지(Information Welfare)의 청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