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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시스템의 만남, 그 '접점'의 과학

'정보 행태'를 해부하는 문헌정보학 이론들

by 김경훈


우리가 '검색한다'고 말하는 행위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모호한 '생각'을 시스템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고, 시스템이 제시한 '결과'를 다시 인간이 해석하는 끊임없는 '대화'의 과정입니다. 문헌정보학은 이 '대화'의 본질을 파헤칩니다.



1. 생각의 번역: '질의-협상 이론'


우리는 머릿속에 떠오른 '필요'를 검색창에 그대로 입력하지 못합니다. 로버트 테일러(Robert Taylor)의 고전적이면서도 강력한 '질의-협상 이론(Question-Negotiation)'은 이 '번역'의 과정을 4단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1) 내면적 요구 (Q1 - Visceral Need): "뭔가 답답하고 불안한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이전 칼럼의 'ASK'와 유사한, 표현되지 않은 정보 요구)


2) 의식적 요구 (Q2 - Conscious Need): "아, 내일 발표 자료에 쓸 통계가 부족해서 불안한 거구나." (머릿속으로 인지된, 모호한 주제)


3) 공식적 요구 (Q3 - Formalized Need): "최근 3년간 국내 1인 가구 통계 자료." (타인이나 시스템에 말할 수 있도록 다듬어진 질문)


4) 타협적 요구 (Q4 - Compromised Need): "1인 가구 통계." (검색 엔진이나 시스템이 '이해할 수 있도록' 변형하고 타협한, 실제 입력 키워드)



테일러가 주목한 것은 정보 탐색의 실패가 Q4(검색 키워드) 수준이 아니라, 사용자의 Q2(진짜 의도)와 시스템의 Q4(입력값) 사이의 '협상' 실패에서 비롯된다는 점입니다. 사서(혹은 현대의 검색 알고리즘)의 역할은 사용자의 Q4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Q2(진짜 의도)에 도달하도록 '협상'을 돕는 것입니다.



2. 동적(Dynamic) 대화: '상호작용의 정보검색 프레임워크'


검색은 '질문 -> 정답'의 1회성 이벤트가 아닙니다. 피터 잉워센(Peter Ingwersen)의 '상호작용의 정보검색을 위한 통합 프레임워크'는 이 과정을 훨씬 더 역동적으로 바라봅니다.


이 이론은 '검색'을 [사용자의 인지 공간]과 [시스템의 정보 공간]이 '인터페이스'라는 접점을 통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으로 봅니다.


사용자는 자신의 지식, 과업, 의도(Q2)를 가지고 검색(Q4)을 시도합니다.

시스템은 알고리즘과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해 결과를 제시합니다.

사용자는 이 결과를 보고 자신의 '인지 공간'을 수정합니다. (예: "아, '1인 가구'가 아니라 '단독 가구'가 공식 용어구나.")

그리고 수정된 이해를 바탕으로 다시 검색어를 바꾸어(Q4') 시스템과 상호작용합니다.


좋은 검색 시스템(혹은 좋은 사서)은 정답을 바로 주는 것이 아니라, 이 상호작용을 촉진하여 사용자가 스스로 자신의 Q2를 명확히 하고 Q4를 발전시키도록 돕는 시스템입니다.



3. 시스템의 철학: '가치 중심 디자인'과 '동기 부여'


그렇다면 이 '접점'(인터페이스)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까요? 문헌정보학은 이 기술적 영역에 '윤리'와 '심리'를 불어넣습니다.


바티야 프리드먼(Batya Friedman) 등이 제안한 '가치 중심 디자인(Value Sensitive Design, VSD)'은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고 선언합니다. 모든 시스템에는 설계자의 '가치관'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 검색 엔진은 '정확성'을 중시하는가 '광고 수익'을 중시하는가?

이 도서관 시스템은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가 '데이터 수집'을 중시하는가?

'접근성(Accessibility)'이 핵심 가치인가 부가 기능인가?


VSD는 이러한 인간의 보편적 가치(프라이버시, 공정성, 접근성 등)를 시스템 설계의 '맨 처음' 단계부터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캐롤린 워터스(Carolyn Watters) 등은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위한 동기 요인'을 연구하며, 사용자가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만드는 심리적 요인(예: 유용성, 제어감, 흥미)을 인터페이스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문헌정보학이 바라보는 '검색창'은 단순한 입력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용자의 모호한 의도가 번역되는 '협상의 장'(테일러)이자, 사용자와 시스템이 함께 지식을 구성해 나가는 '대화의 장'(잉워센)이며, 설계자의 철학과 가치가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하는 '윤리의 장'(VSD)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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