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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가 만든다

'정보 행태'를 해부하는 문헌정보학 이론들

by 김경훈


지금까지 우리는 정보를 찾는 '개인'의 심리, 그가 처한 '사회'와 '상황', 그리고 그가 마주하는 '시스템'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문헌정보학의 가장 현대적인 조류는 여기서 질문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킵니다. "과연 '정보'나 '지식'이라는 것이 개인의 머릿속에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아니요"라고 답하는 흐름이 바로 '사회적 인식론(Social Epistemology)'이며, 이는 비거 효르랜드(Birger Hjorland)의 '사회적 인지 이론'과 '범주 분석'으로 구체화됩니다.



1. 관점의 전환: '사회적 인지 이론'과 '범주 분석'


효르랜드는 문헌정보학이 심리학처럼 '개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인지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지식'이란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산물이라고 봅니다.



'범주 분석(Domain Analytic Approach)'은 이 사상의 핵심입니다.

핵심 주장: 정보 행태는 보편적이지 않으며, 특정 '범주(Domain)'(예: 학문 분야, 직업)에 따라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시: 물리학자가 정보를 찾는 방식과 역사학자가 정보를 찾는 방식은 완전히 다릅니다.

물리학자: 최신성(Preprint), 정확성, 데이터를 중시하며, 동료 집단 내의 검증(Peer-review)을 '권위'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역사학자: 1차 사료(Archival), 맥락, 해석을 중시하며, 사료의 진본성(Authenticity)을 '권위'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시사점: '모두를 위한 완벽한 단 하나의' 정보 시스템은 환상일 수 있습니다. 정보 시스템은 각 '범주'의 고유한 지식 구조와 가치관을 반영하여 설계되어야 합니다.



2. 지식의 현장: '실천 공동체 (CoP)'


그렇다면 이 '범주'는 어떻게 유지되고 지식은 어떻게 공유될까요? 여기서 레이브(Lave)와 웽거(Wenger)가 제시하고 문헌정보학이 받아들인 '실천 공동체(Communities of Practice, CoP)' 개념이 등장합니다.



개념: CoP는 '공통의 관심사나 전문성(Domain)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인 상호작용(Community)을 통해 지식과 기술(Practice)을 발전시키는 집단'을 의미합니다. (예: 특정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자 포럼, 병원의 간호사 집단, 중세 역사학회)

지식의 공유: 이 공동체에서 지식은 공식적인 매뉴얼이나 데이터베이스를 통해서만 전달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공식적 대화, 멘토링,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암묵적으로 공유되고 창조됩니다.

시사점: 문헌정보학 전문가는 단순히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넘어, 이 '공동체'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돕는 촉진자(facilitator) 역할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어디서 막히는지(ASK), 어떤 맥락에서 정보를 필요로 하는지(업무) 파악하여, 그들의 '실천' 현장에 필요한 정보를 연결해야 합니다.



결국 이 '사회적-집단적' 접근 방식은 문헌정보학의 정체성을 명확히 합니다. 문헌정보학은 단순히 정보를 '관리'하는 학문이 아니라, 각각의 전문 '공동체'가 어떻게 지식을 '구성'하고 '공유'하며 '실천'하는지를 연구하고 지원하는 학문입니다.


이 관점은 우리가 앞서 다룬 모든 개별 이론들(권위, 질의, 탐색, 맥락)이 왜 보편적이지 않고 '특정 집단'의 맥락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지를 설명해 주는 가장 포괄적인 상위 이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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