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아닌 '사람'을 보는 학문
'정보(Information)'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각 학문은 자신의 세계관을 투영하여 답합니다.
의학은 정보를 생명 유지를 위한 '신경'의 전기적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컴퓨터공학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해야 할 '알고리즘'의 재료로 봅니다.
철학은 정보를 인간이 사유하고 인식하는 '지식(Knowledge)'의 단계로 파악합니다.
그렇다면 문헌정보학에서 '정보'란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문헌정보학이 바라보는 정보의 정의는 '데이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정보를 필요로 하는 '이용자(User)'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1. '이용자'가 정의하는 정보
문헌정보학의 관점에서 책장에 꽂힌 책이나 서버에 저장된 데이터는 그 자체로 '정보'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잠재적 정보'일뿐입니다.
이 '데이터' 덩어리가 특정 '맥락' 속의 '인간'을 만나고, 그 사람의 '지식의 이상 상태(ASK)'를 해소하거나 '의미를 형성(Sense-Making)'하는 데 기여할 때, 비로소 '정보'가 됩니다. 즉, 이용자의 필요와 해석에 의해 '정보'가 활성화되는 것입니다.
문헌정보학은 100만 건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기술이 아니라, 그 100만 건 중에서 '단 한 사람'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단 하나의' 정보를 정확히 찾아주는 과정에 더 깊은 관심을 갖습니다.
2. 문헌정보학과 컴퓨터공학은 무엇이 다른가?
이 지점에서 문헌정보학은 '데이터'를 다룬다는 점에서 가장 유사해 보이는 컴퓨터공학과 명확한 갈림길에 섭니다.
1) 컴퓨터공학 (Computer Science)
관점: 시스템 중심 (System-centric)
목표: 데이터의 효율적 처리, 저장, 전송 및 시스템 구축에 중점을 둡니다. '어떻게 하면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더 많이'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지가 핵심입니다.
주요 질문: "이 알고리즘은 얼마나 빠른가?", "이 시스템은 얼마나 안정적인가?"
2) 문헌정보학 (Library & Information Science)
관점: 인간 중심 (Human-centric)
목표: 정보와 인간의 상호작용 그 자체를 탐구합니다. 정보가 '어떻게' 인간에게 발견되고, 이해되며, 활용되어 삶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중점을 둡니다.
주요 질문: "사람들은 왜 이 정보를 찾는가?", "이 정보는 찾기 쉽게 조직되어 있는가?", "이 정보는 이용자에게 어떤 의미인가?"
비유하자면, 컴퓨터공학이 더 빠르고 튼튼한 '고속도로'를 짓는 일이라면, 문헌정보학은 그 도로 위에서 모든 운전자(이용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표지판'을 세우고, '지도'를 그리며, '운전법(정보 리터러시)'을 가르치는 일에 가깝습니다.
3. 결정적 차이: '메타데이터'를 보는 두 개의 시선
이 극명한 관점의 차이는 두 학문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메타데이터(Metadata)'라는 용어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1) 컴퓨터공학의 메타데이터: "기계를 위한 정보"
목적: 시스템이 이 파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관리'할지 알려주는 기술적 정보입니다.
예시: 파일 크기, 파일 형식(jpg, mp4), 해상도(1920x1080), 생성 일시, 접근 권한, 데이터의 위치.
주요 소비자: 기계, 시스템, 알고리즘.
2) 문헌정보학의 메타데이터: "사람을 위한 정보"
목적: 이용자가 이 정보를 '발견(Find)'하고, 이것이 원하는 자료인지 '식별(Identify)'하며, '선택(Select)'하고 '획득(Obtain)'하도록 돕는 서술적 정보입니다.
예시: 저자명('누가 썼는가?'), 주제어('무엇에 대한 것인가?'), 초록('내게 유용한가?'), 출판사('믿을 만한가?').
주요 소비자: 사람, 이용자, 연구자.
결국 문헌정보학의 정체성은 정보 그 자체가 아니라, '정보를 필요로 하고, 탐색하며, 이용하는 인간'에 대한 끈질긴 관심에서 나옵니다.
인공지능이 눈부시게 정보를 '생산'하고 '처리'하는 시대가 될수록, 그 정보의 '맥락'을 묻고, '가치'를 판단하며, '윤리'를 고민하고, '인간'을 중심에 두는 문헌정보학의 역할은 역설적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