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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증 한 장까지 '관리'하는 이유

'기록관리'는 왜 기억만큼 '파기'를 중시하는가

by 김경훈


우리는 매일 기록을 만듭니다. 이메일을 보내고, 영수증을 받고, 회의록을 작성합니다. 이 기록들은 왜 중요할까요? 만약 분쟁이 생겼을 때, "내가 이메일 보냈잖아요"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이메일' 자체가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문헌정보학의 한 축인 기록관리학(Records Management)은 바로 이 '증거'로서의 가치를 다룹니다.



1. '기록'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다


이전 칼럼에서 문헌정보학이 '이용자' 중심에서 '정보'를 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기록관리학에서 '기록(Record)'은 조금 다릅니다.


정보 (Information):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데이터나 지식. (예: "오늘 기온은 10도")

기록 (Record): 특정 '업무'나 '행위'의 '증거'로서 생산되거나 접수된 정보. (예: 기상청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오늘 자 기온 공문')


모든 정보가 기록인 것은 아니며, 모든 기록이 영원히 보존될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록관리학은 이 '증거'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학문입니다.



2. '보존'이 아닌 '관리'의 핵심: 기록의 생애 주기


많은 사람이 '기록관리'를 '오래된 문서를 창고에 보관하는 일(Archiving)'과 혼동합니다. 하지만 둘은 목적이 다릅니다.


아카이빙 (Archiving): '영구적' 가치가 있는 소수의 기록을 선별하여 '영구 보존'하는 것입니다. (이전 '디지털 보존' 칼럼 참고)

기록관리 (Records Management): 모든 기록(활성/비활성)이 생성되는 순간부터 폐기되는 순간까지, 그 '전 생애'를 관리합니다.


기록관리학은 '기록의 생애 주기(Records Lifecycle)'라는 핵심 모델을 따릅니다.


1) 생산/접수 (Creation/Receipt): 기록이 만들어집니다. (예: 계약서 작성)


2) 활용 (Use): 업무에 활발하게 사용됩니다. (예: 계약 이행)


3) 보관 (Maintenance): 사용 빈도는 낮아졌지만, 법적/행정적 이유로 보관합니다. (예: 계약 만료 후 보관)


4) 처분 (Disposition): 이것이 핵심입니다. 보존 기간이 만료된 기록을 '평가'하여, 가치가 없으면 '폐기'하고, 영구적 가치가 있으면 '아카이브(보존소)'로 이관합니다.



3. 왜 '폐기'가 중요한가? (투명성과 효율성)


기록관리학이 '보존'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폐기'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1) 효율성 (Efficiency):

모든 것을 보관하는 것은 재앙입니다. 필요한 기록을 찾기 위해 수백만 건의 불필요한 기록(예: 10년 전 점심 메뉴 조사 이메일)을 뒤져야 한다면, 그 조직은 마비될 것입니다. '잘 버리는 것'이 '잘 찾는 것'의 시작입니다.


2) 투명성 및 책임성 (Accountability):

이것이 기록관리의 본질입니다. 왜 공공기관은 회의록을 남겨야 할까요? 왜 기업은 재무 기록을 일정 기간 보관해야 할까요?

"필요한 기록을 남겼는가?" (생산의 의무)

"불필요한 기록을 적법하게 폐기했는가?" (폐기의 절차)

"남겨야 할 기록을 몰래 폐기하거나, 폐기해야 할 기록을 몰래 갖고 있지는 않은가?" (불법 폐기 및 보유 금지)



조직이 투명하게 운영되었다는 '증거'가 바로 이 '기록관리' 절차 그 자체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절차대로 남기고, 절차대로 폐기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결국 기록관리학은 '기억'의 학문인 동시에 '망각(폐기)'의 학문입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을지 '과학적'이고 '법적'인 절차를 설계하는 일입니다.

이는 단순히 서류함을 정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한 조직과 사회의 '투명성'과 '책임성'이라는 뼈대를 세우는 문헌정보학의 가장 엄격하고 중요한 실천 영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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