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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지식에 '주소'를 붙이는 일

'정보 조직'은 어떻게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가

by 김경훈


인류가 생산하는 정보는 본질적으로 혼란스럽습니다. 수십억 개의 웹페이지, 수천만 권의 책, 수백만 편의 논문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다면, 그것은 '정보'가 아니라 '소음'에 가깝습니다.


문헌정보학의 가장 오래되고 핵심적인 임무는 바로 이 혼돈(Chaos)에 '질서(Cosmos)'를 부여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틀어 '정보 조직(Information Organization)'이라 부르며, 이는 '분류'와 '목록'이라는 두 개의 강력한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분류 (Classification): 지식의 '지도'를 그리다


'분류'는 단순히 책을 '주제별로 모아두는' 기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계의 지식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선언'입니다.


DDC (듀이 십진분류법): 우리가 도서관에서 흔히 보는 '813' (미국 문학)이나 '510' (수학) 같은 숫자들입니다. 멜빌 듀이는 1876년, 세상의 모든 지식을 10개의 대주제(000~900)로 나눌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철학(100)'에서 시작해 '역사(900)'로 끝나는 이 체계는 19세기 서구의 세계관을 강력하게 반영합니다.

KDC (한국 십진분류법): DDC를 기반으로 하되, 한국의 특수성을 반영했습니다. '동양 철학(150)'이나 '한국 역사(911)'처럼 우리에게 중요한 주제에 고유한 자리를 부여합니다.


'분류'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이용자에게 지식의 '맥락'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분류 체계는 이용자가 "내가 지금 지식의 지도 어디쯤에 서 있는지"를 알게 해 주며, '딸기 따기 모델'처럼 관련 주제들 사이를 헤엄칠 수 있도록 돕는 '탐색의 나침반'이 됩니다.



2. 목록 (Cataloging): 정보에 '신분증'을 만들다


분류가 책의 '주제적 주소'를 정하는 일이라면, '목록(Cataloging)'은 그 책 하나하나에 고유한 '신분증'을 만들어주는 일입니다.


이전 칼럼에서 문헌정보학의 '메타데이터'는 '사람을 위한 정보'라고 했습니다. '목록'은 바로 그 메타데이터를 만드는 구체적인 '규칙(Rule)'입니다.


저자명은 어떻게 쓸 것인가? (예: "J. K. 롤링"인가, "롤링, 조앤 K."인가?)

제목은 어디까지 쓸 것인가? (부제도 포함할 것인가?)

이 책은 무엇에 대한 책인가? (주제어 부여)


이 모든 규칙을 표준화한 것이 바로 MARC(기계가독목록)나 최신의 RDA(자원 기술과 접근)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엄격하게 규칙을 정할까요?


'정보의 발견' 때문입니다. 이용자가 어떤 형태("J. K. 롤링"이든 "조앤 롤링"이든)로 검색하든, 시스템이 '같은 저자'로 인식하여 단 하나의 누락도 없이 모든 관련 자료를 찾아주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컴퓨터공학의 '기계 처리'를 위한 메타데이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의 탐색'을 위한 배려입니다.


결국 '정보 조직'은 문헌정보학의 '언어'입니다.


'분류'라는 '문법'을 통해 세상의 지식을 체계화하고, '목록'이라는 '어휘'를 통해 개별 정보에 정확한 이름을 붙여줍니다. 이 정교한 언어 체계가 있기에, 우리는 비로소 혼란스러운 소음 속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발견하고 '지식'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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